포퓰리스트 우파와 워크 좌파의 공모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극우 포퓰리즘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포퓰리스트 우파는 자신들이 좌파가 부과하는 억압적 강요에 맞서 ‘온건한 정상성’을 옹호하고 있다는 수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워크(woke: 각성한, 깨어 있는) 좌파의 ‘캔슬 컬처’(취소 문화)가 개인이 이성애자이거나 전통적인 견해를 갖는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갖게 하고, 어떤 말이나 행동이 갑자기 금지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도록 해, 숨 막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비난한다.
한 사례로, 최근 파시즘을 옹호하는 마이클 밀러먼이라는 우파 지식인이 “왜 정상적인 모든 것은 파시즘이라고 불리는가”라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모두 파시즘으로 몰아붙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달린 반응이 주목할 만하다. “누가 나를 파시스트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2차 대전 전에는 평범한 이들 모두가 파시스트였다. 가족과 조국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경계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정상적인 것이 파시즘이라면, 파시즘이야말로 정상적인 것이다.”
극우 포퓰리즘이 광범위한 호소력을 갖는 현상을 우파의 이데올로기 조작으로 분석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이들의 부상은 단순히 전통적 인종주의로는 환원되지 않는 깊은 불만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애국심은 그 자체로 파시스트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포퓰리스트 우파는 외국인이나 성소수자 등을 외부 위협으로 인식하게 해 분노와 적의의 대상이 되도록 애국심을 왜곡한다.
여기에 포퓰리스트 우파의 역설이 있다. 그들의 애국심은 과도하게 애국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불충분하게 애국적이다. 그것은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왜곡한 형태일 뿐이다. 포퓰리스트 우파는 자신들이 국가, 대기업, 언론과 같은 엘리트의 압력에 대항해 노동자 계급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억만장자들의 막대한 지원 아래 자본주의의 근본적 구조는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는다.
문제는 극우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이들 역시 모순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워크 좌파는 성적, 인종적, 경제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도, 매우 억압적인 초자아의 체계를 부과함으로써 어떤 사람이나 입장을 배제하는 것을 넘어 이를 둘러싼 토론의 가능성 자체를 없애 버린다. 겉으로는 다양성과 포용을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자신의 정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가차 없이 배제해 버린다. “우리 안에는 다양성과 포용성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람은 이미 모두 축출해 버렸으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식인종을 먹어 버렸다는 농담의 극단적 버전이다.
워크 좌파는 억압적 체계를 조성해 개인이 엄격한 이상에 완벽히 부합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느끼도록 만든다. 포퓰리스트는 이 틈을 파고들어 “긴장 풀고,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자랑스러워하라”고 속삭이며 해방적 기분을 선사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길 원하며 현실의 문제를 회피한다. 좌파 역시 입으로는 급진적 변화를 주장하지만, 그들이 그리는 변화는 진정한 변화 없이 기존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변화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포퓰리스트 우파는 충분히 애국적이지 않고, 워크 좌파는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 워크 좌파가 피억압자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자신들이 더 잘 아는 양 행동하며, 이들이 기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꾸짖을 때, 억압받는 이들은 “왜 내가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라며 멀어져 간다. 이렇듯 새로운 포퓰리스트 우파와 워크 좌파는 깊이 공모한다. 이들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들은 지금 직면한 뿌리 깊은 문제를 회피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에 새겨진 근본적인 적대를 무시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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