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문화시점] 연극연출가 13인이 저마다 재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

김미주 기자 2024. 7. 1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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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나는연출이다

- 2년간 쉬고 올해 12번째 무대
- 각각 주어진 공연시간 10분내
- 셰익스피어 불후의 명작 각색

일상이 지겨운 유튜브 크리에이터 줄리엣은 어떤 일을 감행할까. 또 다른 작품에서는 줄리엣이 달에 홀로 착륙한다. 로미오가 사랑을 맹세했던 바로 그 달이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지난 13일 ‘2024 나는 연출이다’에서 공연한 창작집단 문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연출 배문수) 리허설 장면. 청춘나비 제공


강렬한 사랑과 비극적 죽음의 대명사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13명 연출가에 의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가로세로 2m짜리 무대에서 재탄생했다. 지난 13일 오후 부산 남구 경성대 앞 문화골목 용천소극장에는 한 평짜리 무대를 둘러싼 80석 넘는 객석이 가득 찼다. 10분짜리 단막극 13작품, 인터미션 20분, 연출가와 관객 간 대화 30여 분, 총 러닝타임 3시간30분인 ‘2024 나는 연출이다’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이었다. 지난 13일 13인 연출가의 13색 무대를 직관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첫눈에 반한 젊은 남녀가 강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가문 간 갈등으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 비극적 죽음을 맞는 내용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남긴 위대한 희곡 가운데 한 편으로 초연 이후 400년 넘게 전 세계에서 영화 뮤지컬 연극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며, 연인 간 강렬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줄기로 등장하는 단골 로맨스 소재이며 이야기 원천이다.

10분의 공연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연출가들은 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과 그 에너지에 주목했다. 일본 M.M.S.T 모모세 토모히데 연출가는 ‘Harness <R&J TYPE>’를 통해 기타 소리와 배우가 대화하는 실험적 방식을 선보였다. 발코니에서 엇갈린 운명에 괴로워하는 줄리엣의 절규에 로미오 역의 기타리스트가 선율로 조화를 이뤘다. 줄리엣의 드레스에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극단 살도델꾼토의 ‘함께 한 날’(연출 문성운) 리허설 장면. 청춘나비 제공


익숙한 스토리에서 벗어난 작품은 신선함을 줬다. 극단 살도델꾼토(부산) 문성운 연출가는 먼 훗날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듣고 그때를 추억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먹먹한 감동(‘함께 한 날’)을 선사했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 같다”는 재치 있는 관객 평도 잇따랐다. 창작집단 문(부산) 배문수 연출가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죽음으로 내몬 가문 갈등이 실은 사소한 다툼에서 출발했다는 상상력(‘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대로 올렸다.

짧은 시간임에도 연출가들이 관객에게 던진 메시지는 또렷했다. PERFORMANCE PROCESSING TODAY(부산) 강태욱 연출가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400년 넘게 세계 모든 공연에 출연한다는 가상의 설정(‘죽음의 일상으로부터 427년’)으로 사랑과 죽음을 반복하는 그들의 일상 속에서 삶의 가치에 관한 화두를 유쾌·진지하게 되물었다.

극단 따뜻한 사람(부산) 허석민 연출가는 위기에 놓인 두 사람의 각기 다른 대응 방식을 섬세히 드러내며 세상을 살면서 위기에 직면할 것인지 마주 볼 것인지에 대해 질문(‘마주보다’)을 던졌다. J(줄리엣)가 죽은 로미오의 유골과 함께 한때 그들이 사랑을 맹세한 달에 영원히 착륙하는 ‘IDO’(대구 극단 헛짓 이하미) 역시 긴 여운을 남겼다.

2011년 출발한 ‘나는 연출이다’는 2년간의 휴식을 마치고 올해 12회째 행사를 치렀다. 6명 연출가가 20분씩 연출하던 데서 올해 13명 연출가가 10분씩 공연하는 것으로 형식을 크게 바꿨다. 각기 다른 미션과 주제로 13·14일 이틀간 공연했고, 지난 12일에는 연극인들이 현안을 논의하는 콘퍼런스도 열었다.

‘나는 연출이다’는 소품과 조명 활용, 연출 방식이 작품과 무대를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연극인에게는 훌륭한 ‘워크숍’ 역할을 하고, 관객에게는 연극의 묘미를 직접 느끼게 해 지역 공연 발전의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시도이다. 이 공연을 제작한 청춘나비 강원재 프로듀서는 “연출가에게 자율성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모든 현실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연출가들이 토해내는 연극으로 그들의 색깔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느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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