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신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조선의 백자호, 일명 달항아리의 둥근 모양을 보면 넉넉해지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든다. 사실 달항아리는 커다란 사발 두 개를 아래위로 붙여 만들기 때문에 이음새의 흔적이 남아 가운데 배부분이 살짝 이지러진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정확한 기하학적 원이 아니라 둥그스레한 항아리가 되는데, 이 인간미 넘치는 자연스러운 곡선에 매료된 이가 많다. 그중에는 도상봉, 김환기, 구본창, 강익중 등 유명한 미술가도 있다. 하늘의 달을 닮아 언제 봐도 지겹지 않은, 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싶고 손길이 닿는 곳에 두고 싶어지는 달항아리의 정겨운 느낌이 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나 있다.
지금 소개하는 김용진 작가도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담았는데, 그의 작품을 눈여겨보게 된 이유는 어울리지 않는 재료 때문이다. 철사라는 재료와 달항아리라는 소재는 낯선 조합이다. 만인이 달항아리에서 기대하는 ‘어루만져 보고 싶은’ 곡선과 매끄러운 도자기 표면을 어떻게 캔버스 위에 빼곡하게 꽂은 따끔따끔한 철사 침들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해부대 위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이라는, 백여 년 전에 초현실주의자가 알려 준 데페이즈망(낯선 사물들의 만남을 통해 다른 차원의 의미를 드러내는 기법)을 시도했다고 봐야 할까. 무던하고 소박한 달항아리의 상징성을 뒤엎고, 알고 보니 까칠하고 예민하더라는 반전의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가장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재료가 철사인데, 그런데 또 하필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 달항아리라면? 김용진이 그랬을 것이다. 철사라는 재료를 자신의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후, 그는 철사를 자르고 단위를 만들어 표면에 심는 몇 개의 행위로 자신의 작업을 단순화했다. 미술 행위라고 해서 처음부터 의미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용진처럼 하찮은 듯 여겨지는 작은 것에서 미술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도의 아룬다티 로이가 쓴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서는 ‘작은 것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사람들은 지켜야 하는 커다란 틀은 항시 신경 쓰지만, 그 바람에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작은 느낌은 곧잘 무시된다. 이혼 후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여자 주인공은 자기 아이들을 돌봐주는 남자에게 끌리는데, 그는 사랑해서는 안 될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은 어느 날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쁨에만 집중해 보기로 한다. 비록 커다란 틀에서는 애초부터 어긋나 있기에 영영 맺어질 수 없는 사이라 해도, 작은 경험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서로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아니 소설가가 상상하는 신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는 외팔이인 듯하다. 조그만 것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신은 큰 것에 관여할 수가 없다.
김용진도 철사와 달항아리를 동시에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막연한 상태로 달항아리에 접근하는 대신, 자신 있는 철사 손질에 정성을 모아보기로 한다. 작은 것은 언젠가 큰 것을 품게 될 의미심장한 씨앗일 테니까. 김용진의 작업방식은 우리가 하루하루 세월을 보내는 인생살이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도 삶도 결국엔, 무엇으로 시간을 채웠는가로 말해지지 않겠는가.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뿐 쌓이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쏘아 올려진 화살 또는 흐르는 강물에 비유되어 왔다. 나 역시 어떤 시간이 매듭지어지면 다음 국면으로 넘어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시간의 궤도를 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보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글을 몇 자 끄적였는데, 어제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다. 항상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며 궤도 위에 있는 한 지점을 날마다 통과하고 있었다. 그 지점에 내가 마신 수천 잔의 커피와 수만장의 글자들이, 시작할 땐 뭐가 될지 모르는 자그마한 눈송이였을 뿐인데 어느덧 육중한 눈덩이로, 심지어 어떤 형태로, 축적되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소한 루틴들이 내 삶의 궤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에 대한 해답도 궤도 상에 루틴을 하나 빼거나 끼워 넣는 식의 작은 조정과 변화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근무할 때 잠을 쫓으려고 허겁지겁 종이컵에 커피를 마셔대던 내 지인은 컵이 쌓여 탑을 이룬 것을 보고 루틴을 바꾸기로 했단다. 아무리 바빠도 근사한 찻잔에 부어 우아하게 즐기기로. 큰 행복 설계도 중요하지만, 자잘한 행복을 발굴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곰돌이 푸가 말하듯,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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