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수호 최후 보루가 집권세력 공격 수단으로 전락” [심층기획-탄핵 남발의 시대]

배민영 2024. 7. 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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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법조계 분석
탄핵의 취지는 견제·균형 통한 공공선
정치권 대화·타협 대신 탄핵 공방 일상
野 집권해도 반대 진영 되풀이 가능성
정략적인 탄핵 남용은 국민 불신 가중
협치 노력 안보인 與·대통령실도 책임
검사 탄핵, 힘 있는 사람 수사 못하게 해
결과적으로 범죄자에겐 천국이 될 것
한국정치가 탄핵의 수렁에 갇혔다. 여야가 정치력이 요구되는 대화와 타협 대신 극단화한 진영논리에 터 잡고서는 ‘전쟁 같은 정치’를 일삼는 사이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수단인 탄핵 제도가 정치 공세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병폐인 진영논리 해소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탄핵 공방을 일상적으로 벌이며 진영논리의 진앙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여당 의원 책상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관련 문서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14일 학계와 법조계는 탄핵 공세를 남발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야권도, 꽉 막힌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집권 여당과 대통령실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야 2당(더불어민주·조국혁신)이 야권 인사 수사를 계기로 검사 탄핵과 ‘검찰청 폐지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는 “‘방탄 입법’이자 힘 있는 사람 수사를 더욱 힘들게 하자는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국회의 입법권 남용을 견제할 제도 마련 필요성도 제기됐다.

◆“野, 법대로 하는 것 아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즉각 발의해달라는 국회 국민청원에 동의한 인원이 이날 기준 140만명을 돌파했다. 소관 상임위원회 회부 기준(5만명 이상)을 뛰어넘자 민주당은 청원의 타당성을 따져보는 청문회를 19, 26일 야권 주도로 열 계획이다. 현직 검사 4명(강백신·엄희준·박상용·김영철) 탄핵안도 발의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했다. 헌법과 국회법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법대로’하는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이를 두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장영수 교수는 “민주당 논리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라면서도 “법적인 권한을 과연 법대로 행사하고 있는 게 맞느냐는 반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 교수는 “검사 탄핵안이든 대통령 탄핵안이든 장차 헌법재판소로 가면 탄핵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극히 낮다”며 “결국 검사들과 대통령을 파면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수사와 재판을 늦추려는 것 아닌가’, ‘이게 헌법상 탄핵 제도의 취지에 맞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고 했다.

국민대 이호선 교수(법학)도 “탄핵은 삼권분립의 균형이 깨졌을 때 취하는 예외적 조치”라며 “지금 민주당이 하는 일은 입법권 남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탄핵이 정략적으로 이용될 뿐 아니라 정치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 같은 탄핵 시도가 삼권분립상 견제와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의원 주민소환제를 통한 의원 탄핵 제도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공공선·민주주의 퇴행”

탄핵의 남용은 그 자체로 나쁜 전례가 될 뿐 아니라 정권 교체 때마다 탄핵 제도를 집권 세력을 공격하는 일상적 수단으로 전락시켜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인천대 이준한 교수(정치외교학)는 “윤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야권에서는 탄핵 얘기가 이어져 왔다”며 “정당 정치 전반에 대해 국민들이 굉장히 피로감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탄핵 남용은 양날의 칼이다. 지금 같은 제도 남용은 하나의 전례가 돼 민주당이 집권해서도 반대 진영에서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채진원 교수도 “탄핵 제도의 취지는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을 통한 공공선 추구”라며 “공공선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정략적 발상으로 제도를 운용하면 국민의 정치 불신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탄핵 남용은 협치하고 민생을 챙기라는 총선 민심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수당이지만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점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김의영 교수(〃)는 “지금 정국이 만들어진 것을 두고 한쪽만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여권도 진정한 협치 노력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 김 교수는 “야당이 총선에서 이겼기 때문에 일방적인 비판은 해법이 되기 어렵다”며 “국정 운영의 주체인 대통령과 여당이 충분한 협상안을 갖고 협치 노력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탄핵 남발 시대를 탄핵해야”

탄핵은 주장하는 쪽은 물론 국민들이 보기에도 정당하게 보여야 하지만 야권 인사 수사를 계기로 ‘검찰청 폐지’ 입법과 맞물려 진행되는 검사 탄핵을 두고선 “범죄자에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는 질타가 쏟아진다.
한국외대 로스쿨 이창현 교수는 “탄핵 소추 대상이 되는 공무원들이 업무를 소극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며 “검사 입장에선 수사를, 판사 입장에선 재판을 소극적으로 하게 돼 결과적으로 범죄자에겐 천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은 “검사들이 힘 있는 사람 수사를 못 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검사들 겁주겠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탄핵은 징계나 형사 처벌로는 부족할 때 쓰는 보충적인 기능인데 제도 취지에 맞지 않게 쓰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은 “야권의 최종적인 목표는 검찰 수사 무력화보다는 법원이라고 본다”며 “야권 인사 재판을 무력화하기 위한 전 단계다. 판사도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사들에게도 심리적 위축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헌재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얼마나 큰일인가”라며 “직무정지에 대한 가처분 제도를 마련하거나, 탄핵 소추 뒤 직무정지까지 가려면 또 다른 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탄핵의 남발 시대를 탄핵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희화화되고 있다. 법치주의가 탄핵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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