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온천에 몸 담근 진성여왕, 천연두 싹 나았다는데…

글=김태훈 PD 2024. 7. 1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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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엘레지 <3> 부산온천뎐


- 맑은 물에서 다리 고친 학 본 뒤
- 노파 다리도 고쳤다는 동래온천
- 전국서 몰려든 한센병 환자들
- 밤마다 달맞이언덕 온천서 목욕

- 신비한 효험수에 대한 전설·비화
- 동국여지승람 등에도 기록 남아
- 지금도 치병 목적으로 많이 방문

- 백화점 공사중 ‘축복’ 터졌단 ‘썰’
- 사실은 온천시설 입점 염두 두고
- 온천공 2곳 뚫어 조성한 게 ‘진실’

“백화점 공사하다가 온천수가 터져서 부랴부랴 목욕탕을 지었다 카더라”.

2009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내에 건립된 ‘스파랜드’에 얽힌 유명한 ‘썰’이다. 부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이 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일까?

신세계 측의 설명에 따르면, 공사 중 온천수가 터져나온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는 우연이 아닌 신세계 측이 의도했던 결과다. 백화점을 세울 당시 경영진은 부산 이외 지역의 고객을 끌어들일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해운대온천’을 떠올렸다. 당초부터 쇼핑·엔터테인먼트·문화 공간의 결합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견은 백화점 내 온천시설 입점으로 모아졌다. 온천수가 터져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부지 2곳을 선정해 온천공을 파기 시작했다. 그 결과 2번의 굴착공사에서 각각 ‘탄산천’과 ‘식염천’ 2종류의 온천수를 얻을 수 있었다.

스파랜드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는 하나 더 있다.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부산을 찾았다.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수영비행장에 도착한 교황은 경의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서 땅에 입을 맞추었는데, 시간이 흘러 옛 수영비행장 부지에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게 됐다. 이후 온천 개발 과정에서 10곳의 공을 뚫어도 나오기 힘들다는 온천수가 2번의 굴착공사에서 모두 터져 나오자, ‘신의 축복’이 내렸다는 이야기가 생겨났다.

이렇게 생겨난 스파랜드는 2300여 평의 면적에 18개의 온천욕탕과 13개의 찜질시설을 갖췄다. 스파랜드는 개관 이래 꾸준히 50만~60만 명의 고객이 찾으며 해운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1920년대 초 동래구 한 목욕탕(왼쪽 사진)과 1930년대 해운대구 해운대온천풀 모습. 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


▮학과 사슴이 쉬어가던 온천

1000년이 넘는 유구한 세월 동안 사랑받아 왔기에 부산 온천지에는 다양한 전설과 비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동래온천 ‘백학 전설’이다. 신라시대 동래 고을 외진 마을에 악성 관절염으로 한 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노파가 있었다. 어느 날 노파의 집 근처에 다리를 절룩거리는 백학이 한 마리 날아왔다. 이를 불쌍히 여긴 노파는 학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는데 사흘째 되던 날 별안간 학이 멀쩡한 다리를 한 채 날아올랐다. 이를 괴이하게 여겨 학이 있던 자리로 가보니 맑은 웅덩이가 있었고, 노파 역시 그 물에 다리를 담궜더니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다.

‘백록전설’도 존재한다. 어느 해 겨울 유난히 많은 눈이 내리던 밤, 금정산 숲속에서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추위에 떨던 사슴은 눈 덮인 들판 한 곳에 몸을 뉘고서 하룻밤을 보낸 뒤 숲으로 돌아갔다. 이후 사슴은 겨울 내내 그 자리를 찾아와 잠을 자고 돌아갔다. 눈이 그친 뒤 사람들은 사슴이 머물렀던 자리를 살폈다. 얼어붙은 주변 땅과 달리 사슴이 누웠던 자리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고 그 부근에서는 동래온천이 발견됐다.

두 전설에는 온천이 품은 신비한 효험을 향한 옛 사람들의 믿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동래구 온천장에서 ‘금천파크온천(금천탕을 전신으로 해 2004년 개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온천협회 김성국 협회장은 “예전에는 목욕 오신 어르신들이 온천물 서너 잔을 떠서 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위궤양·소화불량 등 위장병을 치료한다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1967년부터 동래온천에 자리한 ‘만수온천’의 2대 사장인 이기희(62) 대표 역시 “피부병을 앓고 있는 경우는 물론 다리를 절거나 투석액 주머니를 차고 있는 환자 등 다양한 손님이 온천탕에 몸을 담그러 오곤 했다”고 설명했다.

▮천연두와 나병을 씻긴 온천

해운대온천에는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릴 적부터 천연두를 앓았던 진성여왕이 해운대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며 병을 깨끗이 치료했다고 한다.

‘문둥이골짝’ 전설도 빼놓을 수 없다. 해운대온천에서 목욕을 하면 나병(한센병)이 낫는다고 알려지며 전국의 나병환자들이 해운대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와우산(현 달맞이언덕)에 모여 살면서 밤이 되면 온천에 몸을 담궜고, 이들이 살던 마을에 문둥이골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는 것이다.

2006년 문을 연 ‘해운대온천센터’의 전신은 ‘할매탕’이다. 해운대온천 최초의 대중목욕탕인 이곳은 유독 할머니들이 많이 찾아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온천수의 치유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돌자, 할머니들이 아픈 부위만 탕에 담그는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해운대구의 한 온천업체 역시 “대상포진·관절염 등을 앓는 환자로부터 해운대온천수로 목욕을 한 뒤 병세가 호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치병을 목적으로 온천을 찾은 이야기는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병자들이 줄 지어 동래온천을 방문해 병을 치료했다는 내용이 서술돼 있는가 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백성부터 왕족에 이르는 이들이 요양을 위해 온천지를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용객이 늘어나는 만큼 시설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했다. 해운대온천의 명성이 알려지며 조선시대에는 나병 환자와 대마도의 일본 사람들까지 몰려 들었다. 온천욕을 하러 온 경상 좌수영 관원들이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잦았다. 결국 인근 마을주민들이 홍수가 난 것을 핑계로 해운대온천의 탕을 폐쇄해 버렸다고 한다.

동래온천의 경우 영조 42년(1766년) 동래부사 강필리가 막힌 온천탕과 시설을 수리하고 9칸짜리 건물을 새로 짓는 등 대대적인 정비를 했다. 이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동래구 온천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온정개건비’다. 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14호로 지정됐다.

동래온천에는 백학이 온천욕으로 다친 다리를 치료했다는 백학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김진철 PD


▮언제나 ‘핫플’이었던 부산온천

부산온천의 인기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예로부터 그 명성을 접한 일본인들은 바다를 건너와 몸을 담그기를 소망할 정도였다. 1898년 조선과 일본간 동래온천 임차계약이 체결되자 기다렸다는 듯 일본식 온천 여관이 속속 들어섰다.

해운대온천 역시 1934년 ‘동해남부선’ 개통에 힘입어 휴양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특히 이듬해 건립된 해운대온천풀은 대온천장·오락실·동물원·2000평 상당의 정원 등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그 흔적이 현 해운대구청 앞 연못으로 남아있어 당시의 위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전국적 관광지로 거듭난 두 온천은 방문객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1930년대 초반 연간 온천이용객은 동래온천 16만여 명, 해운대온천 4만여 명에 달했다. 당시 두 지역에 거주하던 인구의 각각 90배와 30배가 넘는 수치로, 당대 ‘핫플레이스’였던 두 곳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9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 열기는 여전했다. 2019년은 연간 온천 이용객이 집계 이래 최고치인 6381만 명을 기록했다. 부산 온천을 이용한 인원은 1045만 명으로 17개 시·도 중 경북에 이어 2번째로 많았다. 1991년 문을 연 동래구 온천장의 허심청에는 팬데믹 직전까지 매년 90만~100만 명의 이용객이 방문했다. 잘 나가던 때에는 목욕 손님을 씻길 목욕물이 부족할 정도였다. 모자란 온천수를 수급하기 위해 호텔농심은 2014년 한 블록 떨어진 골목에 위치한 ‘현대온천(1989년 개업)’을 사들이기도 했다.

한편 코로나19 확산으로 온천이용객 은 ▷2020년 4219만 명 ▷2021년 3435만 명으로 급락했다. 팬데믹 이후 2022년에는 4120만 명으로 회복세를 보이며, 한숨을 돌리는 모양새다. 신세계 관계자는 “영업을 재개한 지난해 연간 방문객 수 63만 명을 기록했다”며 “올해 상반기는 전년 동기 대비 이용객 수가 약 9% 늘었다. 방문률이 지속된다면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방문객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허심청 이용객 중 외국인은 8~9% 수준으로 엔데믹과 함께 서서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스파랜드는 20% 수준에 머무르던 외국인 비중이 최근 30%까지 급증했다. 특히 일본의 황금연휴인 ‘골든위크’에는 고객 3명 중 1명이 외국인일 정도다. 조선시대부터 일본인이 즐겨 찾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산의 온천은 외국인에게도 100년이 넘도록 사랑받아온 셈이다.

영상= 김태훈 김진철 김채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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