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이면 청춘으로 돌아가는 무대…“친구도 사귀니 여기가 최고”
- ‘콜라텍 성지’ 도시철 부전역 앞
- 한껏 치장해 모여드는 어르신
- 대낮 사교춤으로 운동효과까지
- 스트레스 풀고 외로움도 달래
- 부전시장~서면 일대 커피숍들
- 또래들 모임 사랑방으로 ‘북적’
국제신문 77번 버스의 이번 행선지는 ‘부산 콜라텍 메카’ 부전역 일대다. 2030대만 어두운 조명 아래 춤 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노인도 화려한 네온사인과 밴드의 음악 소리에 맞춰 흥겹게 지르박 탱고 블루스를 즐긴다. 다만 젊은이처럼 한밤중은 아니다. 벌건 대낮이 콜라텍의 피크 타임이다. 서면역 인근에 즐비한 ‘노인친화적 커피숍’도 저렴한 가격에 친구·연인과 수다 떨기 안성맞춤인 장소다. 부전역 일대 콜라텍과 커피숍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어르신으로 북적였다.
▮1000원에 즐기는 클럽문화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전역 앞의 한 대형 콜라텍. 이곳은 부산에서 춤 좀 춘다는 노인에게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날카롭게 뻗은 뾰족구두에 딱 달라붙는 찢어진 청바지, 말끔한 재킷까지 차려 입고 한껏 멋을 낸 할아버지가 콜라텍 입구로 향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노인을 위한 손잡이가 설치돼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손잡이를 잡지 않고 날쌘 걸음으로 지하로 내려갔다. 카운터에서는 입장료를 받는 정장 차림의 할아버지 2명이 서 있었다. 입장료는 단돈 1000원. 멋쟁이 할아버지답게 재킷에서 장지갑을 꺼내 빳빳한 1000원권 1장을 내밀었다. 돈을 낸 할아버지는 카운터 옆 짐 보관 장소에 짐을 맡겼고, 이내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어둠 속의 무대로 사라졌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 콜라텍 직원 할아버지는 친절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일대 콜라텍 입장료는 대부분 1000원이야. 노인은 500원, 1000원도 아깝게 여기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손님이 쫙 빠져. 그래서 콜라텍 입장료는 웬만해서 잘 안 올라”라며 웃었다. 할아버지는 “여기는 점심시간 후 오후 2시30분이 피크 타임이지. 안에 들어가면 스테이지에서 춤도 출 수 있고, 커피숍도 있고, 식당도 있어”라고 설명했다.
▮나의 외로움을 없애는 곳
콜라텍 입구에는 통로 곳곳에 소파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춤을 추다가 지친 노인이 잠시 앉아서 휴식을 하기 위한 장소다. 무대 위에서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스테이지에는 수백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짝을 지어 사교댄스를 추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술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과 간단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커피숍도 있었다.
이곳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는 이모(76) 할아버지는 콜라텍 예찬을 늘어놨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니 놀기에 콜라텍이 최고야. 여자 친구 만나고, 술 한잔하기에도 이만한 데가 없지. 여기 다니면서 벌써 여자친구 여럿 사귀었지. 학교 선생, 공무원, 기업인, 종교인 별별 사람이 다 모여. 젊은이만 노는지 아는데 노인도 똑같이 놀아”라고 웃었다.
김모(86) 할머니는 8년째 콜라텍을 다녔다. 김 할머니는 부전시장에 장 보러 왔다가 필요한 거도 사고 콜라텍도 온다. “한 달에 3만 원 정도 내면 지르박 탱고 블루스 등 모든 춤을 다 배울 수 있어서 좋아. 춤을 추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좀 젊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여기서는 제일 나이가 많은 편인데도 할아버지들이 놀자고 하더라고. 남자 친구도 수도 없이 만들지.” 김 할머니에게는 이곳이 외로움을 달래는 곳이다.
“10년 전 남편을 여의고, 이곳을 처음 찾았지. 지금도 혼자 사는데 자식도 출가하고, 남편도 저 세상가고. 세상이 나 혼자인 것 같았다고. 그래서 친구따라 처음 콜라텍에 왔는데 아주 만족해. 이곳에서는 외로움이 없어지거든.”
▮달달한 커피에 수다 삼매경
콜라텍이 아니라도 부전시장에서 서면교차로로 이어지는 커피숍도 저렴하게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곳이다. 오후 3시께 취재진이 방문한 A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테이블 총 11개 중 9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노인이 많았다. 이 커피숍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지만 노인에 특화해 매장을 구성했다.
커피숍 사장은 “커피숍이 1층에 있고, 아메리카노 가격이 2000원(테이크아웃 1500원)으로 저렴한 점심시간 전후로 노인이 정말 많이 온다. 노인이 많다 보니까 처음 문을 열었을 때와 비교해 커피숍 운영을 많이 바꿨다”며 “우선 컵을 떨어뜨리는 노인이 많아 유리잔을 싹 치우고 모두 플라스틱 컵으로 교체했다. 또 처음엔 스틱에 든 설탕을 썼는데 도저히 양이 감당이 안 돼 따로 설탕 용기와 스푼을 마련했다. 노인에게 아무래도 아메리카노는 쓴 편이라 설탕을 많이 넣어 드시는 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커피숍을 찾은 이모(78) 할아버지는 “이제 날씨도 더워지는데 밖에서 만나기 힘들 때 커피숍을 찾는다. 시원하고 달달한 커피도 맛있다”며 “가격도 부담이 없는 편이고 무엇보다 눈치를 안 줘서 시간 보내기도 좋다”고 말했다. 다른 테이블에 있던 박모(71) 할머니는 “부전시장에 장 보러 나왔다. 서면까지 걸으면 금방이라 여기서 친구랑 만나기로 했다”며 “지하철이 1호선 2호선 다 있어 서면역 근처 커피숍에서 친구랑 주로 만난다. 늙은 사람이 편하게 앉아서 시간 보내기는 커피숍이 제일 낫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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