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주고받기식 최저임금 …"위원회 축소하고 정부 역할 강화를"
객관적 근거 없고 의견차 심해
36년간 합의 성공 단 7차례뿐
정부가 전문적인 통계 만들고
해외처럼 직접 결정 참여해야
최임위 인원 27명→15명 축소
전문위원회 기능 상시화 필요
내년도 최저임금이 사상 첫 1만원을 돌파한 가운데 올해도 최저임금위원회가 구태와 파행으로 얼룩지면서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동계·경영계·공익위원들이 사실상 명확한 근거 없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면서 노사 간 극심한 갈등만 부추기는 제도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주요국처럼 정부가 객관적인 관련 통계를 바탕으로 직접 정하거나 위원회를 소규모로 개편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은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다음해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고용부 장관이 매년 8월 5일 이를 고시한다. 최임위에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과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고용부 장관이 선임하는 공익위원이 9명씩 총 27명이 참여한다. 노사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익위원들이 중재자 역할을 한다.
다만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노사합의로 정해진 사례는 단 7차례에 불과할 정도여서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결정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상당수 해외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최임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을 분석한 결과 한국처럼 노사정위가 심의하고 정부가 결정하는 국가는 영국·스페인을 비롯해 8곳으로 집계됐다. 튀르키예처럼 노사정위가 직접 정하거나 노사정위에서 초안을 내면 지방 정부가 결정하는 일본 같은 사례를 더하면 14곳으로 절반이 넘는다.
그 외 국가들은 정부나 의회가 주체가 되거나 노사가 직접 합의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OECD 가입국 중 네덜란드·프랑스는 정부가 정하는 대표적 국가다. 미국·칠레는 의회가 결정한다. 벨기에와 독일은 노사가 중심이 돼 최저임금을 정한다.
다만 한국과 같이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한국은 1988년 제도 시행 이래 올해까지 최저임금안을 표결하는 과정에서 노사 중 한쪽이 퇴장·불참한 사례만 20차례가 넘는다. 심의가 노사협상을 통해 임금 수준 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노사 모두 최초 요구안부터 비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해온 여파라는 분석이다. 2000년 이후 노사가 최초로 요구한 인상률 차이가 20%포인트 이내인 적은 단 두 번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산출하는 근거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 생계비와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제시하고 있다. 최임위는 비혼 단신근로자 생계비와 임금실태 분석, 최저임금 적용 효과 실태조사 결과 등을 심의 기초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표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간 이견이 심해 서로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다.
최저임금 결정에 있어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은 노동에 대한 수요·공급이 일치하는 수준으로 산출되는 균형 임금이 아니라 정부가 정하는 정책"이라며 "공익위원 대신 정부 관계자가 최저임금 결정에 참여해 다음해 최저임금 수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표준안 제안에 사용하는 결정 산식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참여도를 높이기 어렵다면 최임위 구성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영국처럼 위원회 구성 인원을 9명으로 줄이고 사업장 현장 방문을 비롯해 판단 근거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노사가 '나눠 먹기' 식으로 각각 9명이나 참여하면서 오히려 원활한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올해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약 두 달 동안 최저임금 심의 절차에 참여하면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위원도 있다"며 "사회적 대화의 실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노사정 3명씩 9명으로 줄이되 위원들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공익위원에 대한 편향성 문제를 완화하려면 고용부가 추천권을 국회와 나누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며 "구성원을 노사정 5명씩 15명으로 개편하고 위원회 산하 임금연구회 등을 설치해 전문위원회 기능을 상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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