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외교력도 결국 기록의 힘이죠"
강소국가 스웨덴서 일한 경험
퇴임후 3번째 저서로 출간
앞서 소말리아 해적협상 과정
대중국·대만외교 책도 펴내
"외교는 만나고 기록하는일
교섭의 기초도 여기서 시작
후학들과 경험 공유 원해"
1950년 9월, 스웨덴은 유엔의 지원 요청에 따라 총성이 오가던 한국에 의료지원 부대를 파견했다. 부산 야전병원에 파견된 1100여 명의 참전의료단은 전후까지 200만명의 환자를 돌봤다. 이후 1965년부터 17년간 스웨덴 국민 2000여 명은 한국전쟁 고아를 돕기 위해 매달 후원금을 모금했다. 양국은 수교 50주년이던 2009년,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한국전 참전 기념행사를 처음으로 공동 주최했다. 이렇듯 양국이 급속도로 밀착한 데에는 당시 주스웨덴 한국 대사로 재임했던 조희용 전 대사의 활약이 있었다. 1979년 외교부에 입부해 36년간 일본, 중화민국(대만), 미국 참사관 등을 거쳐 2008년 주스웨덴 대사와 라트비아 비상주 대사로 부임한 그가 외교관의 눈과 귀로 관찰한 스웨덴을 기록해 책을 냈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조 전 대사는 "스웨덴 국왕과 총리는 스스로를 '유럽 변방의 작은 국가'라고 칭하며, 그렇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인권·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보편적 복지, 투표율 80%, 여성 국회의원 비율 50%, 30대가 장관을 맡는 나라 스웨덴은 공직자가 출장지에서 식사 대접을 받으면 지원받은 식사비를 반납해야 할 만큼 사회 전반에 부정부패가 없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이러한 '스웨덴식 모델'을 배우고 싶어하지만 조 전 대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한 나라의 거버넌스는 그 나라의 지정학, 문화를 배경으로 국익을 위해 발전시켜온 것"이라며 "단순히 참고하고 이식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30년 직업 외교관의 종착역인 '특명전권대사'로 스웨덴에 부임한 후 그는 재임 기간 2년10개월간 190번의 관저 오만찬을 주최했다. 외교관은 '공사 구분이 없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그는 "만찬 자리야말로 각국의 대표자들이 '가드(보호대)'를 내리고 서로 싸우는 '보이지 않는 격투장'"이라며 "외교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상적 외교활동이 쌓여 그 국가의 소프트파워가 된다"고 설명했다.
조 전 대사의 부임 다음해인 2009년 대사로서 운이 좋게도 스웨덴·라트비아 모두와 각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같은 해 스웨덴이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으며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기반도 다질 수 있었다. 이후 양국 관계가 진전되며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기도 했다.
전통적 중립국인 스웨덴과 함께 개최한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 행사는 의미가 남달랐다. 준비 과정에서 생존이 확인된 141명의 참전용사에게 대통령 명의의 감사서한을 전달하며, 당시 스웨덴 사회에 처음 '베테랑'이라는 개념이 정착돼 예우하기 시작했다.
그는 재임 기간에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정보, 나눈 대화 내용까지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조 전 대사는 "외교관은 매일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직업으로, '기록'은 교섭의 기초"라며 "아는 것도 '건전한 의심'의 자세로 균형 있게 바라볼 때 변화의 틈을 포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동원호 피랍 사건 때 석방 협상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 당시 경험을 꼼꼼히 기록해 이후 '해적 협상 노트 2006: 동원호 피랍 사건 전모'라는 책을 출간했다. 후배 외교관들이 유사한 경험을 할 때 시행착오를 줄이길 바라며 자신의 기록을 공유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1990년부터 중화민국에서 3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겪은 일상도 기록해 '한·중화민국 단교 30년 회고'라는 책도 펴냈다. 대만 관계에는 물론, 대중국 외교를 비롯한 전반적인 외교에 참고가 되길 바랐다. 이 정도면 '인간 외교실록'으로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다. 일평생을 다양한 국가를 상대로 타협하고 조율해본 경험이 있는 그는 "협상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건 상대의 배경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라며 "승자와 패자가 명확한 합의는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 윈윈(win-win)하는 묘안을 찾아내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안수진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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