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서울은 가치투자자의 무덤인가
사업재편안 발표 후 시끌
재무구조개선 목표 좋지만
합병비율 놓고 주주반발 커
가치투자위한 제도개선 필요
지난주 두산그룹 사업 재편안의 3대 축은 에너지·스마트머신·반도체와 첨단소재다. 두산에너빌리티(DE)를 DE1(에너지·퓨얼셀)과 DE2(두산밥캣(DBC) 및 일부 채무)로 인적분할하고, DE2는 주식 교환으로 두산로보틱스(DRT)에 흡수된 후 상장폐지된다. DBC 주주들은 주당 DRT 0.63주를 받거나 5만459원(발표 전 7월 10일 종가 5만1000원)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DBC의 2023년 말 주당 장부가치는 5만9457원이다. 주주 요구수익률 10% 가정 시 최소 주당이익은 5946원이어야 한다. 2024년 예상 주당순이익 8597원을 감안하면 초과 이익은 2651원(=8597원-5946원)이다.
무성장, 무배당의 보수적 가정 아래 DBC의 이론적 가치는 장부가치에 초과 이익을 할인한 것을 더해 8만5970원이다. DRT는 매출액이 DBC의 183분의 1인 4년 연속 적자 회사지만, 시가총액은 6조원을 상회해 DBC보다 크다. 성장 전망이 큰 신생 기업의 가치는 기본가치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시장의 기대와 추측의 영역이다.
주가는 1년간 3만2150원에서 12만4500원 사이를 오갔다.
실적 무관 널뛰기 주가에 로봇 테마주로 혹평하는 투자자가 있는가 하면, 미래·흐름·상황에 베팅할 줄 모르냐며 억울하면 지금이라도 사라고 비아냥대는 투자자도 있다.
두산그룹은 이번 사업 재편으로 DBC와 DRT가 북미·유럽 네트워크와 신성장동력, 안정성과 성장성을 결합해 시너지를 창출한다고 한다. 기대와 추측의 영역이다. 팩트는 이번 딜로 두산그룹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지배주주는 현금흐름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평가도 제각각이다. 기술 혁신과 시장 확대를 통한 기대감 표출과, 시장은 복합기업보다 순수영업회사를 선호한다는 부정적 의견이 충돌한다.
일부 거버넌스 전문가들은 지배주주 일가가 캐시카우인 DBC를 장악하고자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 비율 조항을 악용한 사례라고 비난한다.
'밸류업을 한다면서 뭐하는 거냐'고 금융당국을 비난하지만, 이 모든 거래는 합법이다. 시가는 합리적이며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이 자본시장법의 논리다. 위 DBC, DRT 사례처럼 시가는 조작할 수 없을지 몰라도, 항상 합리적이진 않다. 그래서 지배주주가 시점 선택을 통해 불공정한 합병 비율을 추구한다는 비판과 연구보고서가 나온다. 미국은 법으로 합병 비율을 정하지 않고 공정한(fair) 가격을 산정하고, 이사회는 설명 의무를 진다. 그러나 우리는 신뢰 문제와 갑을 관계로 평가기관의 산정액도 불신한다.
모든 투자자는 제각각의 스타일을 가진다. 세계 어디든 정보 매매, 시세 추종, 미래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테마와 수급, 사건이 시세를 움직인다. 시장가격은 장기적·평균적으로 합리적일 것이나, 그 모습은 파도치는 바다다. 그럼에도 선진국 우상향 주가의 동력은 지속가능성, 기본가치에 기반을 둔 장기 투자자들이다. 그러나 안정성에 방점을 두고 5만원이 8만원 되기를 기다리며 DBC에 투자한 우리나라의 가치투자자는 어느 날 날벼락처럼 로봇회사의 주주가 되든지 5만원 받고 떠나라는 통지에 분통을 터뜨린다.
시너지로 회사에 이익이 가능하니 이사진은 상법상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 시가를 따라 합병 비율을 구했으니 자본시장법 위반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거래는 미국과 같은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거래라는 것을.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개정하자, 합병 비율의 시가 평가를 보완하자고 외치지만 제도 개선은 너무 느리다. 그래서 서울의 가치투자자는 (한)국장을 떠나 미(국)장으로 향한다. 그러니 가치투자자를 전제로 하는 밸류업은 대한민국에서 허무하게 스러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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