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아웃도어 외길 인생 … 세계 곳곳 '섬유도시' 키울것

김금이 기자(gold2@mk.co.kr) 2024. 7. 1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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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든든한 재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를 이뤄내야 합니다. 우리 집안의 가르침인 경근일신(敬勤日新)의 자세로 회사를 경영해오고 있습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77)은 최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성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영원무역을 창업해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성 회장은 77세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해외 생산현장과 판매시장을 돌아다니는 현장경영을 실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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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 맞이한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대담=김대영 국차장(컨슈머마켓부장)
27세에 창업해 굴지 대기업으로 키워내
노스페이스 연매출 1조 넘는 국민브랜드로
좌우명은 근로 존중과 혁신하는 '경근일신'
인도·케냐 등 해외 생산기지에 적극투자
성남 지식산업센터서 K패션 세계화 지원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영원무역 명동 사옥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기업은 든든한 재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를 이뤄내야 합니다. 우리 집안의 가르침인 경근일신(敬勤日新)의 자세로 회사를 경영해오고 있습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77)은 최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원무역은 1974년 외국 브랜드 의류를 제조·수출하기 시작해 스포츠·아웃도어 전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재 연간 매출 4조원(지난해 기준)에 육박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성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영원무역을 창업해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원으로 활동하는 등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성 회장은 1997년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국내에 들여와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국민 브랜드'로 일궈냈다.

영원무역은 글로벌 시장에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주요 생산기지인 방글라데시에서 '섬유특화도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대규모 개발센터를 완공했으며, 인도와 케냐 등 새로운 시장도 개척 중이다. 또 과거 영원무역의 의류 제조공장이 자리하던 성남 용지를 미래 패션산업을 위한 복합 개발센터 기지로 재탄생시켰다.

성 회장은 77세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해외 생산현장과 판매시장을 돌아다니는 현장경영을 실천해오고 있다. 회사를 키워온 비결로 주저하지 않고 현장경영을 꼽았다. 경영을 승계한 둘째 딸인 성래은 영원무역 부회장에게도 어릴 적부터 공장을 견학시키며 현장의 중요성을 체험하도록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원무역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는데 소회가 어떤지.

▷감회에 젖어 있을 만큼 한가한 순간이 없었다. 창업 이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서 벌써 50년이 됐다. 부친께서 생전에 나는 한 가지 일을 못하는 산만한 성격이라고 걱정하셨다. 그런데 한 회사를 지금껏 경영하고 있으니 이제 그런 걱정 안 하셔도 괜찮을 것 같다.

―경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1991년 방글라데시 동부의 거점도시인 치타공에 위치한 영원무역 신축 지역에 사이클론(태풍)과 해일이 덮쳐서 공장이 침수됐다. 동요하는 현장 직원들부터 다독이고 진정시켰다. 한국에서 원단을 긴급하게 조달했으며 기존 직원 800명에 더해 700명을 새로 모집해 총력 생산체제로 공장을 풀가동했다. 바이어들에게 도착 납기가 한 달 늦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바이어들은 우리가 약속을 지킨 것에 크게 감명받았고 다음번에 엄청난 양의 일감을 우리에게 줬다. 신뢰를 최우선적으로 지킨 덕분에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현장경영 원칙을 고수하는 배경은.

▷사업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현장을 안 챙긴다는 것은 고객 신뢰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장에 가면 어떻게든 모든 생산라인에 가서 완성품을 보는 게 내 원칙이고 즐거움이다. 문제가 있으면 서로 즉시 개선하도록 협의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좌우명은.

▷'경근일신'이다. 이는 선조 대대로 이어온 고택 경근당과 일신당의 가르침이다. '근로를 존중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라'는 뜻이다. 잘나가는 제품 하나만 믿으면 어느 날 갑자기 경쟁력이 없어질 수 있고 사람이 게을러지기 마련이니 이를 경계해야 한다.

―지난해 6번째 해외 생산기지로 인도 투자를 시작했는데, 향후 계획은.

▷인도 정부의 요청으로 텔랑가나주 와랑갈시의 섬유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조성하는 공단에 핵심 기업으로 들어가게 됐다. 인도는 인구 증가율이 높고 중산층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고급 의류제품도 잘 팔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양산체제를 갖추기 위해 5000만달러 정도 투자를 추진 중이다.

―방글라데시 등 해외 생산기지에서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방글라데시 내 한국수출가공공단(KEPZ)에서 섬유특화도시를 강력히 추진해 왔으며 10년 로드맵의 구체적 결실로 여기에 7개 이상의 대규모 개발센터를 완공해서 현재 인력을 채용 중이다. 추가로 규모와 깊이는 다르지만 인도, 케냐 및 중미에도 이러한 섬유 특화 전략을 추진할 것이다.

―국내 연구개발(R&D) 시설에도 변화가 있었나.

▷성남에 대규모 지식산업센터를 올해 초에 완공했다. 한국 및 세계 시장에 필요한 제품의 신속한 디자인 및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장소는 1976년 영원무역의 첫 공장이 있던 곳으로, 1996년에 문을 닫았다가 지식산업센터로 재탄생해 의미가 크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훈민정음에 관심이 많다. 노스페이스에서 최근 훈민정음 글자에 기반한 '노스페이스 한글 티셔츠'를 내놨는데,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사업과 별개로 학계의 훈민정음 연구에도 도움을 드리고 싶다.

―향후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은.

▷우리가 업종 내에서는 탁월한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린 아직 중소기업이다. 성래은 부회장이 앞으로 혁신적 경영에 최선을 다해 성과가 있었으면 한다.

성기학 회장

△1947년 서울 출생 △1965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1970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1972~1973년 서울통상 근무 △1974년 영원무역 설립 △1984년 영원무역 대표이사·회장 △1992년 골드윈코리아(현 영원아웃도어) 설립 △2014~2020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2018~2020년 국제섬유생산자연맹 회장

[김금이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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