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당선인, 대미 ‘투트랙 외교’ 신호···“핵무기 추구 않는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이란 핵합의(JCPOA) 파기 등 관계 악화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서방의 대이란 외교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 보수 강경 일변도이던 이란의 대미 외교 정책이 ‘투트랙’ 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12일(현지시간) 보수계열 현지 영자신문인 테헤란타임스에 ‘새로운 세계에 보내는 나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기고 글에서 “우리는 2015년 선의로 JCPOA에 가입했고 의무를 완전히 이행했다. 그러나 미국은 순전히 국내 분쟁과 복수심으로 협정을 불법 탈퇴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역외에서 일방적인 제재를 부과해 이란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 파괴를 초래했다”고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핵합의 파기부터 이후 갈등 고조에 이르는 관계 파탄의 책임을 미국에 전면 돌린 것이다.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그러면서도 “이란의 국방 교리는 핵무기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싶다”며 “미국이 과거의 오판으로부터 배우고, 그것에 맞게 정책을 조정하길 촉구한다”며 대화의 문을 닫아두지는 않았다.
그는 “미국은 이란이 압력에 대응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대응하지 않으리란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관계 개선을 위해 대이란 강경 노선의 변화를 촉구했다. 글 서두에서 “우리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들을 환영하며 선의에 선의로 화답할 것”이라고도 했다. 유럽을 향해서도 “상호 존중 및 동등한 기반의 원칙을 바탕으로 우리의 관계를 올바른 경로로 돌려놓기 위한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길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중도·개혁 성향인 페제시키안 당선인의 개방적 외교 노선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그는 앞서 대선 기간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 이란 핵합의 복원 등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다만 그가 이같은 유화적 제스처를 집권 후 실제 외교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반응이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종교 최고지도자이자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외교를 포함한 주요 정책의 실질적 결정권을 지닌 ‘1인자’여서다. AP통신은 “(페제시키안은) 여전히 강경파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행정부와 상대하면서, 약속했던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대해선 이란의 기존 강경 노선을 재확인했다. 그는 정치적·외교적 모든 지렛대를 활용해 중동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가자지구 내 영구 휴전을 성사시키겠다며 “가해자(이스라엘)에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라는 보상을 줘선 안 된다”고도 했다. 역내 목표로는 이란의 패권이 아닌 ‘강한 지역’ 건설을 내세웠다.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미국 등 서방과 대척해온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해 “어려운 시기에도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었다”며 협력 강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등 러시아가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 반대하며 내세운 다자협력체를 일일이 언급하며 “러시아와의 양자 및 다자 협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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