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직설적인 정치 드라마는 없었다…‘돌풍’이 돌풍 일으킨 이유
넷플릭스의 한국 정치 드라마 <돌풍>이 ‘돌풍’을 일으켰다. 공개 직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입소문을 타며 한국 넷플릭스 TV쇼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검색 플랫폼 키노라이츠가 집계한 콘텐츠 순위에서도 애니메이션 대작 <인사이드 아웃 2>까지 밀어내며 1위를 차지했다. <돌풍>이 ‘K-정치 드라마’로 불리며 비상한 인기를 모은 이유는 무엇일까.
<돌풍>은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가 정치권의 부패를 몰아내려 대통령 장일준(김홍파)을 시해하고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과 대결하는 이야기다. <돌풍>이 기존 정치 드라마와 차별되는 점은 민주화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을 부패한 악역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주로 정의로운 주인공의 설정이었던 ‘민주화 운동권’을 “괴물”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한다. 각본을 쓴 박경수 작가는 박동호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그들은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돼 버렸습니다. 세상의 불의에는 분노하지만 자신의 불의에는 한없이 관대한 괴물!”
통상 한국 정치 드라마들은 논란을 의식해 현실과 연결되지 않도록 모호한 정치적 입장을 취해왔다. <돌풍>만큼 적극적으로 현실을 끌어들이며 뚜렷한 정치적 의식을 드러낸 작품은 흔치 않았다. 박동호와 정수진은 현실의 ‘진보개혁’ 성향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정수진은 ‘경제 개혁’ ‘한반도 평화’를 명분으로 ‘우리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비리와 보복을 정당화한다. 그러자 박동호는 정수진에게 “왜 독재에 반대했지? 그들도 산업화를 이뤄냈는데. 왜 쿠데타에 저항했지? 그들도 가난한 조국을 발전시키겠다는 명분이 있었어”라고 쏘아붙인다.
<돌풍>이 그리는 ‘운동권 악역 서사’를 두고 민주화 운동을 모욕했다며 반발하는 반응도 있으나 신선하다는 호응이 큰 이유는 민주화 운동 경력을 자랑하는 ‘586 세대’(80년대 학번인 60년대생)가 기득권이라는 대중적 인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KBS의 2021년 ‘세대인식 집중조사’를 보면 청년(20~34세)의 79.7%가, 50대(50~59세)의 73.8%도 ‘586 세대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라고 응답했다.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박경수 작가의 전작들인 ‘권력 3부작’(<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처럼 반전을 거듭하며 빠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속도감이 강조되다보니 개연성은 부족하고 지나치게 작위적인 부분도 눈에 띈다. 하지만 실제 인물과 사건을 변주하면서 현실 문제까지 후벼파는 부분은 흥미롭다. 정수진은 친노(노무현)·친문(문재인)계 정치인들을, 장일준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종합한 캐릭터로 보인다. 여러 장면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아들 홍일·홍업·홍걸의 뇌물 비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죽음,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 파격 승진과 ‘적폐청산’ 수사, 서초동 촛불집회와 광화문 태극기 집회 등이 연상된다.
보수 우파 세력은 운동권 세력 이상의 악당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선 비중이 주변부로 밀려나 있으며 집중도도 떨어진다. 야당 대표인 조상천(장광)은 사법살인을 저지른 공안검사 출신이자 ‘태극기 부대의 정신적 지주’로 불린다. 대북라인을 움직여 북한에 사는 아버지와 이복동생을 처형시키는 모습에선 1997년의 ‘총풍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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