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통’ 맛집에 서빙로봇…돼지고기 초벌구이는 AI 셰프 로봇이

이민아 기자 2024. 7. 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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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로봇·포스·테이블오더’ 도입 가맹점 2020년 400개→2023년 1만 개

지난 1일 경기 파주시의 한 장어집. 문 연지 50년이 넘은 이곳은 올해 초 세월의 흔적이 전혀 없는 신축 한옥으로 탈바꿈했다. 가게에 들어서자 널찍한 통로를 서빙로봇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날 만난 가게 직원은 “5월까지 가게 리모델링을 마치고 로봇이 지나다니기 쉬운 구조로 바꿨다”며 “매장에 로봇은 28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식당은 기존에는 널찍한 상에 모든 반찬과 식사를 옮겨 담고, 힘 좋은 장정들이 상을 들고 와서 손님들 앞에 놓아줬다. 서빙로봇 도입 후, 이제 이 식당은 네 개의 작은 선반에 음식을 나눠서 올리고 로봇에 이를 얹는다. 서빙로봇은 손님들 식탁까지 음식을 나른다. 서빙로봇이 나른 선반을 중년 여성 직원들이 손님 식탁으로 옮겨 놓는다. 서빙로봇 도입 후 힘 센 남성이 해야했던 일을 여성들도 가뿐하게 할 수 있게 됐다.

‘직원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서빙 로봇을 도입했나’라는 질문에 이 가게 직원은 “아니다. 사람이 구해지지 않아서 대안으로 서빙 로봇을 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무거운 상을 통째로 들고 나르는 것이 힘들어 일 하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가게는 각 테이블에도 주문을 받는 태블릿PC를 설치해 젓가락, 추가 반찬, 주문 등 일체의 요청을 무인화했다.

‘마이야르 점수’도 파악하는 고기 굽는 로봇… ‘태블릿 주문’ 티오더 매출 급증

9일 서울 관악구 고깃집 ‘정숙성’에 도입된 비욘드허니컴의 고기 굽는 로봇. 신원건 기자=laputa@donga.com
서빙과 주문 뿐 아니라 조리까지 로봇이 대체하는 식당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관악구 고깃집 ‘정숙성’ 주방에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비욘드허니컴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조리 로봇이 설치돼 있었다. 이 로봇은 음식의 실시간 조리 상태를 분자 단위로 수치화해 일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적용돼 있다. 사람이 로봇에 고기를 넣자 자동으로 고기는 철판 두개 사이에 고정됐다. 이후 적절한 온도에서 철판이 돌아가며 고기를 고루 익혔다.

기계 외부에는 ‘마이야르 점수’, ‘육즙 보존률’ 등 고기의 맛을 ‘수치화’해서 가늠할 수 있는 지표들이 표시됐다. 내부 조리 인력은 물론 손님들도 이를 볼 수 있었다. 약 10분 후 조리사가 초벌된 고기를 꺼내 손님들에게 내어줄 형태로 가공했다. 조리사 이모 씨는 “아르바이트생이 바뀔 때마다 고기 맛이 변할까봐 불안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조리 로봇 도입은 이제 일부 식당 만의 실험이 아니라 점차 확대되고 있다. 유명 삼겹살 프랜차이즈 하남돼지집은 비욘드허니컴과 손잡고 고기 초벌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정현기 비욘드허니컴 대표는 “하남돼지집의 요리 스타일을 적용한 조리 로봇을 만들어나가는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외식업계에 무인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태블릿 PC, 키오스크 등을 이용한 ‘비대면 주문’은 이제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분식집부터 고급 한우 식당까지 다양한 업소에서 비대면 주문이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대면 주문 방식이 오히려 어색하다”는 말도 나온다.

11일 오후 서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디타워점에서 서빙 로봇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관련 업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태블릿 주문 플랫폼 1위 업체인 티오더는 창업 첫해인 2019년 4억8000억 원이었던 연 매출이 2023년 600억 원으로 급증했다. 한 달에 티오더를 통해 이뤄지는 주문 건수는 2000만 건이 넘고, 결제액은 4500억 원에 이른다. 티오더 관계자는 “지금도 한 달에 평균 1만 건씩 도입 관련 문의가 들어오고 홈페이지 방문자 수가 월평균 50만 정도 되는 등 자영업자들이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티오더를 도입한 매장은 김밥, 라면 등을 판매하는 분식집 ‘보슬보슬’부터 한우 1인분(150g)을 7~8만 원선에 판매하는 고급 한우 식당 ‘우텐더’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국내 매장뿐 아니라 캐나다, 미국, 싱가포르, 일본 등 해외에서도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티오더 관계자는 “현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한인들이 한국에서 비대면 주문을 경험한 뒤 도입 방법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인건비가 높은 나라들을 중심으로 문의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티오더는 지난해 캐나다에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올해는 미국, 싱가포르에 법인을 추가로 세울 예정이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매장으로 변화시켜 운영하는 곳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경기 고양시의 한 PC방은 2년 전부터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미성년자가 출입할 수 없는 밤 10시가 넘으면 자체적으로 매장 문을 잠그고 기존에 인증받은 회원만 들어갈 수 있다. 사장인 박모 씨(43)는 “인건비 부담이 큰 데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도 어려웠다”며 “특히 야간 아르바이트는 주간보다 기본 급여를 더 많이 줘야해서 무인 시스템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인력난에 최저임금 인상 겹쳐 로봇 대체 가속화.. “20년 후 외식업 인력 3분의 1이 사라진다”

외식업계에서는 인력난이나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무인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 서비스로봇 공급사 브이디컴퍼니에 따르면 서빙로봇, 포스, 테이블오더 등 F&B 자동화 솔루션을 도입한 가맹점 수는 2020년 400여 개에서 2023년 1만여 개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꾸준한 인건비 상승은 무인화가 빨라지는 배경이다.농림축산식품부의 ‘외식업체 경영실태 조사’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었던 2020년 당시 평균 인건비는 162만1000원이었는데 2021년 171만3000원, 2022년 217만7000원, 2023년 218만5000원으로 올라갔다.

내년에는 최저임금이 처음으로 시간 당 1만 원을 넘기면서 인건비에 부담을 느낀 업장에서 무인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에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을 때 식당 아르바이트생이 서빙 로봇으로 대체됐고, 주유소는 ‘셀프 주유소’로 탈바꿈했었다”며 “1만 원에 주휴 수당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임금 부담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무인화 추세가 더 빨라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음식점과 주점업은 향후 인구 변화에 따라 근로 인력이 가장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경제연구원·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달 개최한 ‘인구감소의 노동시장 영향과 대응과제’ 세미나에서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향후 20년 동안 노동공급이 가장 많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는 산업 1위로 ‘음식점 및 주점업’을 꼽았다.

2022년 200만7011명이던 음식점 및 주점업 근로자는 꾸준히 감소해 20년 후인 2042년 66만9426명(33.4%)이 줄어든 133만7585명이 될 것으로 관측됐다. 이 교수는 “음식점과 주점업은 젊은 사람들이 새롭게 진입하지 않는 업종인 동시에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근로하는 산업”이라며 “나이가 든 근로자들이 노동 시장에서 퇴장하게 되면 인력 충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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