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에요”…마음 어루만지는 서귀포의 분홍 ‘우체통’

박미라 기자 2024. 7. 1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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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상담 우체통’ 서귀포시서 3곳 운영
코로나19 당시 우울한 여성 위해 시작
2022년 서귀포시 전 시민 대상 확대
각종 고민 익명으로 무료 전문 상담
서귀포시 새섬 공원 입구에 놓인 고민상담 우체통. 박미라 기자

제주 서귀포시 새섬공원 입구에는 새섬의 초록 숲과 대비를 이루는 진분홍 우체통이 놓여있다. 익명의 무료 상담을 통해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고민 상담 우체통’이다. 우체통에는 ‘말 못할 고민, 엽서에 가득 담아 주세요’라는 안내가 있다. 우체통 옆면에는 현장에서 사연을 적을 수 있도록 엽서도 준비돼 있다.

11일 서귀포시에 따르면 고민 상담 우체통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때 한시적으로 여성들을 상대로 시행했으나 현재는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육아 부담이 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울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늘어나자 서귀포시는 2021년 시범사업으로 3곳의 장소에 우체통을 설치하고 8월부터 10월까지 여성들의 고민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사업을 주도한 서귀포시 여성가족과는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당시 여성과장을 지낸 강현수 서귀포시 복지위생국장은 “말없이 고민을 받아주는 우체통이 삭막한 도시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따뜻한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누가 사연을 넣을까 싶었던 우체통에는 3개월여간 15건의 고민이 쌓였고, 서귀포시는 이에 대한 답변을 제공했다. 고민 상담 우체통이 호응을 얻으면서 서귀포시는 이듬해인 2022년부터는 여성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으로 상담 대상을 확대했다.

현재 고민 상담 우체통은 서귀포시 새섬공원과 솔오름, 칠십리 공원 입구 등 3곳에 있다. 비밀스러운 고민 상담인 만큼 철저히 익명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엽서에는 상담자 이름이나 주소, 연락처, 생년월일 등 별도의 개인정보를 쓰지 않아도 된다. 고민에 따른 전문가의 답변은 이메일이나 문자, 전화, 엽서 등 원하는 방식으로 받아볼 수 있다.

우체통 내 엽서는 서귀포시여성단체협의회 소속 단체가 자원봉사로 수거한다. 엽서는 사연에 따라 서귀포시가족센터, 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등 전문 상담 기관에 전달된다.

“원하는 만큼 되지 않아도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에요”
서귀포시 새섬 공원 입구에 놓인 고민상담 우체통. 박미라 기자

2021년 하반기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엽서 상담은 116건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는 상반기에만 31건의 상담이 들어왔다.

고민 유형은 배우자·가족 문제, 청소년의 진로·성적 고민, 심리적 불안 호소, 육아 부담 등이 주를 이룬다. 관광을 위해 찾았다가 고민을 적어 넣은 다른 지역민의 사연도 종종 발견된다.

특히 이 사업은 별도의 예산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시민들의 마음 건강을 챙긴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자원봉사와 기존 상담 기관과의 협업으로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초기 우체통과 엽서제작 비용 이외에는 별도의 예산이 투입되지 않는다”면서 “익명의 비대면 무료 상담 창구인 만큼 누구든지 부담 없이 분홍 우체통을 이용해 고민을 털어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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