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검사’ 전제로 검찰개혁 설계해야 [아침햇발]

박용현 기자 2024. 7. 1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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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전경. 김혜윤 기자

박용현 | 논설위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저토록 활개 치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대통령 부인이 수사 대상에 오른 중대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1심 재판부는 그가 김건희 여사의 계좌를 운용했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이 계속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김 여사에게 불리한 정황이다. 그런데도 이 전 대표는 ‘브이아이피’(VIP)를 버젓이 입에 올리며 김 여사를 뒷배로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를 비롯해 온갖 국정에 관여하는 듯한 언행을 보였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 사건으로 엄정한 수사를 받는(혹은 받을) 상황에서도 이게 가능했을까? 이 전 대표의 언행에는 검찰이 김 여사를 절대 수사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사실 검찰이 김 여사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를 두고 검찰이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공범들의 1심 유죄 판결이 난 게 언젠데, 김 여사를 소환조사할지 여부조차 정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검찰이다.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게 야권 수사다. 말 그대로 ‘탈탈 터는’ 수사가 2년 넘게 이어지며,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수사 착수 소식이 전해진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미 4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최근 검찰은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관련해 이 전 대표 부부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소환 통보는 민주당이 검사 4명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뒤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가뜩이나 한쪽으로 기운 수사에 ‘보복성’이라는 감정적 색채까지 더해졌다.

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야당에 대한 검찰의 격렬한 반발도 균형감을 잃었기는 마찬가지다. 김건희 여사 수사 지휘라인을 일거에 교체해버린 지난 5월 인사에 대해선 끽소리도 못하던 검찰이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선 움츠리고 야당·비판세력에게는 이빨을 드러내는 수사 행태 그대로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은 특정 정치세력과 아예 동일체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정과 중립을 잃은 검찰에 쏟아지는 야유와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이 정당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신뢰다. 그러나 지금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생명처럼 여기기는커녕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민주적 정당성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고 있다.

검찰개혁 요구가 분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독재정권 심판’을 내걸고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은 저마다 검찰개혁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검찰의 폐해가 절정에 이른 지금이야말로 검찰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 조지타운대 로스쿨 애비 스미스 교수는 ‘당신은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좋은 검사일 수 있을까’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을 썼다. 그는 검찰 업무의 특성, 조직문화, 위계질서 등 여러 조건상 검사는 정의·인권이라는 원칙을 버리고 편파적 검찰권 행사에 익숙해지며 사건 실체와 무관하게 무조건 유죄 판결을 받아내려는 위험한 경향에 기울게 된다고 분석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검찰에 들어가 ‘좋은 검사’가 되기는 어렵다는 그의 결론은 검찰개혁의 방향을 잘 가리키고 있다.(☞‘검찰을 묻다’ 연재 참고)

검찰이 타락할 위험성은 검찰 제도에 내재하는 것이며 이는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극단적 형태로 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의 검찰공화국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검찰개혁은 ‘선량한 검사’가 아닌 ‘최악의 검사’를 전제로 출발해야 한다. 검찰은 애초 불공정하고 정치적이며 부패하기 쉽고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최악의 검찰조차 검찰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영미법계 나라에서 기소 여부를 시민들이 결정하는 대배심제도를 고안한 이유도 “검사가 정치적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괴롭힐”(‘미국의 사법제도’, 미국 국무부 펴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최악의 권력자를 상정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보편적인 조직 원리다. 삼권분립을 비롯한 견제와 균형 원리는 특정 개인·집단에 권력이 집중될 경우 반드시 부패하고 전횡하게 돼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로크, 몽테스키외 등 근대 정치철학자들이 인간과 사회의 속성을 제대로 통찰한 결과다. 가장 위험한 권력이 가장 집중돼 있으면서 견제와 통제에서 가장 비켜나 있는 지금 이곳의 검찰이야말로 이 원리가 가장 필요한 곳이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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