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기 3등판’ 전주고 사상 첫 청룡기 결승 이끈 ‘숨은 에이스’ 이호민

목동 야구장/배준용 기자 2024. 7. 1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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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기 준결승전] 위기마다 마운드 올라 역투...”롤 모델은 삼성 원태인”

“결승전에서도 던지고 싶었지만, 준결승을 이겨야 결승에 가는 거니까요. 최선을 다했습니다.”

14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전주고와 강릉고의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왕중왕전 준결승. 전주고가 강릉고에 4-5로 앞선 8회초 2사 1,2루 강릉고 공격. 동점 위기에 처한 전주고의 마운드에 1루수를 보던 3학년 이호민(18)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 경기 세번째 등판이었다. 타석에는 5회 전주고 에이스 정우주를 상대로 적시타를 때려낸 강릉고 2번 타자 이건중이 섰다.

2볼 1스트라이크에서 이호민이 던진 4구를 이건중이 받아쳤다.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전주고 우익수 최성음이 타구를 잡아 전력으로 홈에 던졌다. 전주고 포수가 공을 잡아 홈에 들어오는 강릉고 2루 주자를 태그했지만 심판 판정은 세이프. 강릉고 더그아웃에선 환호성이 터졌고, 전주고 더그아웃은 곧바로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1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 및 주말리그 왕중왕전 4강전 강릉고와 전주고 경기. 선발 투구하는 전주고 이호민.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나온 비디오 판독 결과는 세이프가 아닌 아웃. 극적으로 역전 위기를 막아낸 전주고 덕아웃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어진 9회초 강릉고의 마지막 공격. 이호민이 8회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투구수는 62개. 고교야구 투구수 제한 규정상 전주고가 16일 열리는 결승에 가더라도 2일을 쉬어야 하는 이호민은 결승전 마운드에 오를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이호민은 끝까지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고, 세타자를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5대4 전주고의 극적인 결승행을 확정지었다. 이호민이 선 마운드에 전주고 선수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환호했다.

1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 및 주말리그 왕중왕전 4강전 강릉고와 전주고 경기. 전주고가 강릉고에 5대 4 승리했다.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전주고 선수들.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이날 이호민은 고교 야구에서만 볼 수 있는 1경기 3등판에서 호투하며 전주고의 창단 첫 청룡기 결승행을 이끌었다.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와 5회초 1사에서 팀내 에이스인 정우주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1루수로 옮겼다. 하지만 정우주가 흔들리며 1점을 내주며 1-2 1점차로 좁혀진 상황에서 볼넷을 주며 2사 1,2루 위기를 맞자 다시 정우주와 자리를 바꿔 마운드에 올랐다. 2루수 땅볼을 잡아 3아웃을 만들며 동점 위기를 넘겼다. 투구수 58개. 60개를 넘지 않으면 결승전에도 등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6회초 다시 정우주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1루에 간 이호민은 8회초 정우주에 이어 마운드를 넘겨받은 김영빈이 흔들리자 결국 다시 마운드에 섰고, 팀의 수호신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경기 후 이호민은 “1루수와 투수를 오가느라 힘들었지만 이번 청룡기를 우승하러 왔기 때문에 최대한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던졌다”고 말했다.

5-4 1점차로 추격당하는 순간 비디오 판독으로 극적인 3아웃을 잡아낸 8회초 상황에 대해 이호민은 “비디오 판독하는 동안 정말 엄청 떨렸다. 그래도 무조건 아웃이라고 생각했고 결과를 보고 안도했다”며 웃었다.

이날 경기에서 이호민은 타석에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1루수로 교체된 후 팀이 1-2로 뒤져있던 5회말 무사 1,2루에서 타석에 선 이호민이 희생번트를 실패하면서 1,3루 병살타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후속 타자들이 적시타와 3루타, 스퀴즈번트를 성공하며 3점을 몰아내 4-2 역전을 만들었다. 이호민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감독님께 자신있게 희생번트 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병살이 되어버렸다”며 “벤치로 돌아왔는데 동료들이나 감독님이 혼내시진 않았다. 그래도 흘러가는대로 선수들이 집중하다보니 점수를 더 많이 뽑은 거 같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1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 및 주말리그 왕중왕전 4강전 강릉고와 전주고 경기. 선발 투구하는 전주고 이호민.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이날 이호민은 3번의 등판에서 총 6이닝 동안 4피안타 1사사구 1실점 3탈삼진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고비마다 던진 체인지업에 강릉고 타자들이 속수무책 당했다. 이호민은 “강릉고 타자들이 초구를 잘 안치는 듯 해서 과감하게 볼 카운트를 빨리빨리 잡으며 승부를 보는데 집중했다”며 “체인지업은 2학년 땐 좀 미숙했었는데 3학년 올라오면서 완벽하게 익혀졌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내내 전국구 에이스인 팀 동료 정우주가 주목받는 동안에도 이호민은 묵묵히 5경기(2승)에서 17이닝 동안 13피안타 6볼넷 14탈삼진 5실점(4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2.12으로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팀 내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가장 많은 공(투구수 251개)을 던지며 사실상 마운드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정우주에게 자신의 활약이 다소 가려진 게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호민은 “섭섭한 건 전혀없다. 우주도 워낙 잘하는 투수고 저는 또 제 장점이 있고 제 할 것만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84cm 85kg의 다부진 체격의 이호민은 올해 고교주말리그에서 최고 구속 147km를 기록했다. 뛰어난 제구력과 여러 구종을 갖춘 투수로 평가된다. 이호민은 “롤 모델은 삼성 원태인 투수”라며 “원태인 투수처럼 볼 카운트를 잘잡고 확실한 체인지업을 던지는 걸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고 투수 이호민이 14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청룡기 준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인터뷰하는 모습. /배준용 기자

이호민은 “이번 대회에 꼭 우승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왔다. 비록 저는 결승전에 투구수 제한으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할 듯 하지만 저희 팀 모두가 우승하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전주고는 무조건 우승할 거 같다”고 말했다.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 대해서는 “1라운드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빨리 지명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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