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하다? 붓질 대신 물체질로 정제돼 나온 감각적인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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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무슨 도구를 써서 그릴까.
표면에 점착되는 성질이 있는 미디엄 재료와 아크릴 물감을 섞은 안료액을 그림의 화폭 틀(캔버스)에 골고루 펴듯이 붓는다.
붓질 대신 색물에 가하는 일종의 물체질로 정제되어 나온 그의 그림은 색으로 발현된 몸의 추상화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과정과 형식이 독특한 그의 작품과 조응하는 것이 그림자 같은 '납작데기' 인물상으로 잘 알려진 이환권 조각가의 착시적인 인간 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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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무슨 도구를 써서 그릴까.
사람들은 당연히 붓이나 연필, 펜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그리는 화가들 가운데는 그렇게 작업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그리지만 붓 같은 도구에 기대지 않는다. 오직 몸 자체의 힘과 감각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대구에서 작업해온 소장 화가 윤종주씨는 붓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가장 투철한 시각예술가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의 3인 작가(윤종주·이환권·박현주) 기획전 ‘미묘’(美妙)에 참여한 그의 출품작 ‘시간을 머금다’ 연작은 철저히 몸과 중력이 빚어낸 그림들이다. 작가는 그림 틀에 밀착된 몸을 여기저기 뒤흔들어서 빛과 그늘을 아련하게 품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우선 캔버스를 뉘어놓고 표면을 반들반들하게 사포로 갈아낸다. 표면에 점착되는 성질이 있는 미디엄 재료와 아크릴 물감을 섞은 안료액을 그림의 화폭 틀(캔버스)에 골고루 펴듯이 붓는다. 그 뒤 화폭 틀을 양쪽에서 부여잡고 몸을 이리저리 기울이고 흔들면 표면에 색조가 퍼져나가면서 점차 색들의 층위가 형성된다.
화폭을 든 손힘의 강약에 따른 기울기의 변화, 전체 몸의 움직임 등에 맞춰 화폭 위에 흐르면서 퍼져나가는 안료액의 점착 정도가 달라지면서 그림의 미묘한 색조가 만들어진다. 이런 과정을 적게는 20차례, 많게는 30차례 이상을 되풀이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격자형 혹은 원형의 화폭들이 단독 혹은 군집을 이룬 연작으로 전시장 2, 3층 벽에 붙어 있다.
‘시간을 머금다’란 제목에 걸맞게 손과 몸의 힘이 가해진 무수한 흔적이 안료의 색면으로 그대로 반영되면서 은은한 빛과 음영을 머금은 독특한 화면 효과를 발산한다. 붓질 대신 색물에 가하는 일종의 물체질로 정제되어 나온 그의 그림은 색으로 발현된 몸의 추상화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과정과 형식이 독특한 그의 작품과 조응하는 것이 그림자 같은 ‘납작데기’ 인물상으로 잘 알려진 이환권 조각가의 착시적인 인간 군상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택배 배달원이나 지하철 좌석에 앉은 도시인의 모습을 담은 납작한 그림자 군상들은 윤 작가의 색면 회화들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역시 이 작가의 조각상이 함께 어울린 박현주 작가의 색면 회화는 검정이나 푸른빛 안료를 입힌 아사천 화폭 위에 차츰 명도를 높인 물감층을 올려나가면서 마치 별들의 은은한 광채가 삐져나오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의 화면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미지의 재현과 재연, 존재의 현상과 이면 등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감각파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이다. 20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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