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은 과연 운동권을 모욕했나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박경수 작가의 《돌풍》은 여러모로 문제작이다. 넷플릭스여서 가능했을 과격함을 가진 이 작품은 왜 한국에서 정치 드라마를 시도하는 것이 어려운가를 에둘러 설명해 준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은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와 대통령 장일준(김홍파)의 설전으로 문을 연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장일준과 검사 출신 국무총리 박동호는 정치적 동지였다. 하지만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박동호가 장일준 대통령의 재벌과의 결탁을 발견하고 그 비리를 파헤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갈라진다. 오히려 누명까지 쓰게 된 박동호는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장일준을 시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 결국 대통령이 쓰러지고 대신 그 공백을 직무대행하게 된 국무총리 박동호는 비리로 얼룩진 정치를 쓸어버리기 위해 전면에 나선다. 그러자 역시 과거 박동호와 장일준의 정치적 동지였던 정수진(김희애) 경제부총리가 자신의 비리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박동호와 대결한다.
현실정치를 믹스매치한 정치 드라마
장일준과 박동호의 대결로 문을 열고, 장일준이 무너지자 이제 정수진이 등판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돌풍》의 서사는 과거 박경수 작가의 《펀치》를 닮았다. 한쪽에서 치면 반대쪽에서 반격하고, 한쪽에서 궁지로 몰아넣으면 반대쪽에서 새로운 패를 들고 상대를 위협하는 걸 끝없이 반복하는 치열한 대결의 서사다. 그래서일까. 넷플릭스 시리즈치고는 꽤 긴 호흡을 가진 12부작 드라마지만, 《돌풍》은 제목 그대로 돌풍 같은 속도감으로 시청자들을 빨아들인다. 한마디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를 일단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기막힌 몰입감을 준다.
게다가 박동호와 정수진의 치열한 권력투쟁 속에는 우리가 현실정치에서 많이 봐왔던 소재가 무수히 등장한다. 탄핵, 헌법재판소, 태극기부대, 북풍, 야합 등등. 소재들만 떼놓고 보면 대한민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드라마 한 편 안에 모두 채워넣은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들은 드라마 속에서 완전히 재구성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인물을 보고 현실 정치인들을 떠올리지만, 보다 보면 한 인물 속에 여러 현실 정치인이 겹쳐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장일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로 등장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은 현실과 너무나 다르다. 마찬가지로 박동호는 그가 하는 대사들부터 마지막 파국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에게도 역시 여러 인물이 겹쳐져 있다. 《돌풍》은 현실정치의 인물들과 일련의 사건들을 드라마 속으로 가져와 '믹스매치'함으로써 완전히 현실을 재구성한 정치 드라마를 시도한다.
하지만 현실정치를 믹스매치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도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정치 드라마를 시도하려던 의도는 박동호와 정수진의 복마전에 가까운 치열한 대결구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치고받는 복수극 형태로 변화한다.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냐. 더 큰 거짓이지" "선을 넘은 자에게 한계는 없어" "당신이 만든 미래가 역사가 되면 안 되니까" "높아지세요. 올라가 보세요. 당신이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내가 더 위에 설 겁니다. 웃어, 곧 울게 될 테니까" 등 박동호는 끊임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에 대한 주장들을 대사로 쏟아낸다. 이에 맞서 정수진도 만만찮은 응수를 하지만 그런 대사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전개는 녹취 등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잡아 무너뜨리는 과정들의 연속이 된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그래서 점점 과도해지고, 인물 자체가 하는 이야기를 벗어나 작가의 목소리를 띄우기 시작한다. 치고받는 과정이 점점 복수극 형태가 되어간다.
이렇게 된 건 박경수 작가가 가진 현실정치에 대한 허무주의가 드라마에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상을 뒤엎는다'는 이 작품의 기세는 사실상 부정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던 한때 운동권 출신들마저 권력을 쥔 후 저들과 똑같아지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에서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항간에서 나오는 '운동권을 모욕했다'는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돌풍》에는 과거 공안 출신의 정치인이나 때마다 당적을 옮겨가며 살아남은 철새 정치인 같은 보수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물론 그들에게 고문까지 당했던 경험을 가진 정수진 같은 인물마저 부패해 버린 모습을 통해 운동권 출신 진보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쪽도 대안이나 희망을 바라기 어려운 현실정치에 대한 절망감과 분노를 《돌풍》처럼 제 한 몸을 내던지는 박동호라는 인물을 통해 허구 속에서나마 쓸어버리려는 욕망을 그려낸 것이다.
대통령 시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가져왔고, 현실정치에서 벌어졌던 무수한 사건을 드라마 속에 믹스매치했지만 《돌풍》은 역시 정치 드라마가 어려운 그 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친한 사이에는 꺼내지 말라는 말이 있듯 어느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정치 이야기는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다. 즉 《돌풍》은 보수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자신들을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진보 정치인들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보게 된다. 또 진보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몇몇 부패한 정치인 때문에 한때 운동권 출신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이들 모두를 폄하한 건 아닌가 하는 불편함을 갖게 된다. 어느 쪽으로 보든 속 시원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한 여러 인물과 사건들을 믹스매치하는 것으로 현실과 거리를 두려 한 것들도 심지어 진보와 보수조차 겹쳐 보이는 양상을 띠면서 불편한 지점을 만든다. 이건 보수나 진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작가의 허무주의가 만들어낸 겹침이지만, 이를 분리해 어느 한쪽을 선택해온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혼돈을 주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재배치는 본격 정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의도된 선택이다.
파격적인 《돌풍》마저 넘지 못한 난제들
우리에게 정치 드라마는 늘 현실정치와 연결되는 무거움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서혜림(고현정)이라는 평범한 아나운서가 남편을 잃고 정치에 뛰어들어 여성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그린 《대물》 같은 작품은 방영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이 닮았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작품 속에서 선거 유세 중 테러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다가 의식을 회복하고는 "유세장은요?"라고 묻는 대사는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했다는 "대전은요?"라는 말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두 인물의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처럼 현실과 거리를 두려 해도 오히려 정치권이 나서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작품을 논평에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돌풍》은 이걸 벗어나기 위해 과감한 믹스매치 방식을 썼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시청자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본격 정치 드라마가 어려운 건 현실정치가 갖고 있는 드라마틱함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뤄진 민주주의 과정을 우리는 단 몇십 년 만에 겪고 있는 셈이라 더더욱 그렇다. 《돌풍》은 그래서 더 드라마틱한 대결구도를 가져왔지만, 그 결과는 정치 드라마의 선을 넘는 복수극 같은 '핑퐁게임'이었다. 여러모로 《돌풍》이 남긴 아쉬움은 정치 드라마가 어려운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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