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하마스 지휘관 사살하겠다며 또 ‘안전지대’ 폭격···최소 90명 사망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지휘관을 사살하겠다며 피란민이 밀집한 이른바 ‘안전지대’를 폭격해 최소 90명이 죽고 30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폭격 지점은 이스라엘군이 ‘인도주의 구역’으로 설정하고 피란민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대피하라고 명령했던 곳이다.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남부 도시 칸유니스 서쪽 해안지역에 마련된 인도주의 구역인 알마와시에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작전이 하마스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의 지휘관 무함마드 데이프와 라파 살라메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마와시는 전쟁 초기부터 이스라엘군이 인도주의 구역으로 지정한 곳으로, 이스라엘군은 지난 4월 최남단 도시 라파에 지상전을 강행하면서 라파 일대 피란민들에게 이곳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으로 과거 황무지에 가까웠던 알마와시에는 피란민 8만여명이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스스로 설정한 인도주의 구역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알마와시는 인도주의 구역 지정 뒤에도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고, 지난 5월 말에는 피란민 텐트가 공격을 받아 일가족 21명이 사망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작전에 벙커버스터 등 대형 폭탄 5기와 미사일 5기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벙커버스터는 2000파운드급 초대형 폭탄으로, 콘크리트 구조물과 지하 벙커 등을 파괴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데, 이를 피란민들이 천막 치고 생활하는 난민촌에 퍼부은 것이다.
이번 공격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정작 작전 목표였던 하마스 지휘관들이 사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의 사망 여부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 특별보고관인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알자지라에 “‘안전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국제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하며, 이 지역에 군사 목표물이 있는 경우에도 군사행동은 군사적 이점에 비례해 이뤄져야 한다. 1~2명을 잡기 위해 90명을 죽이는 것은 비례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표적이 된 지휘관 2명은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기습 공격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이들이다. 이 가운데 이스라엘의 핵심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는 데이프의 경우 이스라엘 당국의 7차례에 걸친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아 도피를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테러리스트들이 민간인 사이에 숨어들었으며, 사망자 대다수가 하마스 대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으나 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하마스는 공격 표적이 된 지휘관들이 해당 지역에 있지도 않았다며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이스라엘군의 발표가 “끔찍한 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사상자가 이송된 병원과 구호단체는 사상자 대부분이 민간인이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도 어린이 상당수가 죽거나 크게 다친 채로 인근 병원에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북부 가자시티에서 이곳까지 피란을 온 주민 셰이크 유세프는 로이터통신에 “공습 이후 텐트가 모두 무너졌고, 시신과 신체 일부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며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과 조각조각 난 어린이들이 보였다”고 공습 당시 참혹한 상황을 전했다. 구조대원들은 이스라엘군이 부상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공습 지점으로 향하던 구급차조차 공격했다고 밝혔다.
알마와시 근처 야전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모하마드 수베흐는 “여전히 구조대원들이 사람들을 땅에서 파내고 있다”며 희생자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인명 피해에 가뜩이나 의약품이 부족한 인근 병원은 밀려드는 부상자로 포화 상태가 됐다. 칸유니스에서 유일하게 운영되고 있는 나세르병원의 아테트 알후트 병원장은 “부상자가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데 이들을 누일 침상조차 부족해 바닥에서 치료받는 상황”이라며 “의약품도 부족해 더 이상 병원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지고 있다”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 대변인인 루이스 워터리지는 나세르병원에서 “엄청난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병원 바닥의 피를 닦아내는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휴전 협상 와중 이뤄진 대규모 공습과 인명 피해에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이어졌다. 휴전 협상 중재국인 이집트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공격은 평화와 휴전을 위한 노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규탄했다.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다른 중동국가들도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비판했다. 이스라엘군은 민간인 사상자와 관련해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군 대령, ‘딸뻘’ 소위 강간미수···“유혹당했다” 2차 가해
- 윤 대통령 공천 개입 의혹, 처벌 가능한가?
- [스경X이슈] ‘흑백요리사’ 출연진, 연이은 사생활 폭로…빚투→여성편력까지
- 윤 “김영선 해줘라”…다른 통화선 명태균 “지 마누라가 ‘오빠, 대통령 자격 있어?’ 그러는
- [단독]“가장 경쟁력 있었다”는 김영선···공관위 관계자 “이런 사람들 의원 되나 생각”
- [단독] ‘응급실 뺑뺑이’ 당한 유족, 정부엔 ‘전화 뺑뺑이’ 당했다
- 윤 대통령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다” 공천개입 정황 육성…노무현 땐 탄핵소추
- [단독] 윤 대통령 “공관위서 들고 와” 멘트에 윤상현 “나는 들고 간 적 없다” 부인
- [단독]새마을지도자 자녀 100명 ‘소개팅’에 수천만원 예산 편성한 구미시[지자체는 중매 중]
- “선수들 생각, 다르지 않았다”···안세영 손 100% 들어준 문체부, 협회엔 김택규 회장 해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