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7070 누구 겁니까"‥11개월째 대통령실 문턱 왜 못 넘나 [국회M부스]
대통령 연루 의혹에 다시 등장한 "ㅇㅇㅇ는 누구 겁니까"
"그런데 02-800-7070은 누구 겁니까" 정치권에 익숙한 문구가 등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 10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직전 최고회의 때와 똑같은 말로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800-7070, 진짜 누구 겁니까"
지난 2017년, 유행어처럼 번졌던 "다스는 누구 겁니까"를 패러디한 겁니다. 당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를 두고 끊임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 차명 소유 의혹이 제기돼 왔습니다. 다스는 누구 거냐는 질문이 국민적 호응을 얻었고, 이후 검찰의 수사와 재판을 거쳐 지난 2020년 대법원은, 다스가 이 전 대통령 것이라는 사법적 판단을 내렸습니다. 비슷한 문구가 등장한 건, 이번에도 대통령이 등장하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유선 번호 '02-800-7070'은 대통령실 회선입니다. 작년 7월 31일, 이 번호로 대통령실의 누군가가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 14초 뒤 이 장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2시간 뒤로 예정됐던 수사결과 발표를 취소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윗선 개입 없이 스스로 수사결과 발표 취소를 결정했다는 이 전 장관의 해명과 배치되는 정황입니다. 앞서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렸고, 윤 대통령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혐의자로 포함됐다는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800-7070은 누구?"‥대통령실 "기밀 사항이라 말 못 해"
해당 통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난 3월 MBC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후 지난 5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죄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인 번호가 특정됐습니다. MBC 취재진이 역으로 전화를 걸자, 대통령실 직원이 받았지만 어떤 부서 소속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국가 기밀, 보안 사항"이라며 비서실 누구의 번호인지조차 함구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와 02-800-7070이 누구 전화인지가 모든 의혹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보실장은 "안보실 번호는 4자로 시작한다"라고 했고, 정진석 비서실장은 해당 번호를 "처음 듣는다"라고 답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의원은 "그러면 남은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라며 "아니면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받은 사람, 아주 가까운 측근들"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공수처 수사, 11개월째 대통령실 문턱 못 넘고 '답보'
의혹은 커지는데, 수사외압 의혹을 밝혀내야 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는 지지부진합니다. 공수처는 11개월 전인 작년 8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수사외압을 가한 혐의로 국방부 간부들을 고발하면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후 다섯 달 만인 지난 1월 국방부와 해병대 사령부 등 관련자들의 집과 사무실을 차례로 압수수색하면서 본격적인 강제수사에 돌입했습니다.
이후 포렌식 분석 등을 이유로 석 달을 흘려보냈습니다. 초대 처장과 차장은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서 수장자리는 공석이 됐습니다. 공수처는 4월 26일에서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피의자로 처음 소환해 조사했습니다. 주요 피의자들을 잇달아 불러 조사했지만, 윗선을 향한 추가 압수수색은 없었습니다.
국방부 내 최고 책임자인 이종섭 전 장관은, 1월 압수수색 영장에 공범으로 기재됐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참모들의 행동은 장관의 권한에 기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강제수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호주 대사로 임명돼 출국하기 전, 형식적으로 자진 출석해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제출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 대통령 최측근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기록 회수 등 채 상병 사건 처리 과정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통화기록도 대량으로 공개됐습니다.
흔히 검사들이 말하는 '골인', 신병 확보 역시 전무합니다. 인신 구속이 수사 성과의 한 지표처럼 여겨지는 건 지양해야 할 관행이지만, 판사가 영장을 발부할 만큼 수사기관이 유죄 입증 증거를 모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관련자들은 메시지 확보가 어려운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공개적으로 혐의를 부인해왔습니다. 취재 과정에선 사실 관계를 확인한다는 이유로, 사건 관련자가 다른 혐의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일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이 현 정부 초기, 문재인 청와대 인사들을 구속하며, 증거인멸 정황이라고 제시한 사유들입니다.
검찰은 어땠나? 사건 배당 이틀 만에 문재인 청와대 압수수색
공수처는 문제가 된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련자들의 통화기록을 작년 말 확보했습니다. 첫 압수수색 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대통령실에 대한 수사가 없다는 점은 통상적이지 않습니다. 검사 출신 민주당 의원들도 "고질적인 인력 부족을 고려하더라도, 수사 경험상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세 차례 압수수색을 당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비교해 봐도 그렇습니다. 2018년 12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주진우 부장검사)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습니다. 김태우 전 특감반원의 폭로로 알려진,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배당 받은 지 이틀만의 일이었습니다. 법원의 심사에 드는 시간이 필요하니, 사건 기록을 받자마자 압수수색 등 기록 확보 준비에 나섰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현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검찰에, 조국 민정수석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특감반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한 지 16일 만이기도 했습니다.
김태우 전 특감반원은 이듬해 2월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이 윗선 지시로 중단됐다며 서울동부지검에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고발인 조사 뒤 사건을 들고 있던 동부지검 형사6부(이정섭 부장검사)는 그해 10월 말 유착 의혹이 제기된 업체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강제수사에 돌입했습니다. 이후 12월, 대통령 비서실 압수수색에 나서기까지 한 달여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 채 상병 순직 1주기‥윤석열 대통령은 특검 거부
이달 들어 공수처는 수사 중간 점검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당분간 지금까지의 수사 내용을 검토하면서 보완 수사가 필요한 부분을 점검하겠다는 겁니다. '윗선' 수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 이 모 씨의 이른바 'VIP 구명로비설' 등의 주변 갈래로 수사가 퍼지는 모양새입니다. 채 상병 수사외압 사건 수사가 감사원 '표적 감사' 의혹 수사와 마찬가지로, 결론을 맺지 못한 채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공수처 수사4부, 1개 부서가 맡고 있습니다. 공수처는 작년 9월 감사원 압수수색으로 본격 공개 수사에 나섰고, 석 달 뒤 유병호 전 사무처장을 소환했지만 아직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는 19일이면 해병대 채 상병이 순직한 지 꼭 1년이 됩니다. 당초 야권은 1주기 전에 특검법을 통과시켜, 대규모 수사인력을 보유한 특검이 공수처 수사를 받아 진상 규명에 착수토록 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야당 단독 처리된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특검 출범은 현재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야당은 답보상태인 공수처 수사도, 특검 필요성을 더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특검법을 통한 특검이 어렵다면, 국회 의결만으로도 출범이 가능한 상설 특검안도 고려 중입니다.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TF 단장인 박주민 의원은 "특검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재 있는 법이라 대통령이 거부할 수 없는 상설특검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세웅 기자(salt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politics/article/6616953_364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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