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 휴가비?… 중소기업에 그런게 어디 있나요” [뉴스+]

채명준 2024. 7.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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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만큼 휴식도 양극화
여름 휴가 제공 중기 10곳 중 2곳… 평균 3.6일
응답 기업 62.3% 휴가비 지급 계획 없어
300인 이상 기업 57.6%, 5일 넘는 여름휴가 지급
휴가비 지급 계획 기업도 중소기업의 두 배 육박

“여름 휴가요? 그런 거는 기대도 안 해요. 연차라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천 남동공단에서 8년째 근무 중이라는 김모(34)씨는 휴가 이야기에 쓴 웃음을 지었다. 김씨가 재직 중인 기업은 중소 규모의 제조업체로 사장이 정해준 휴가 기간에 맞춰서 단체로 휴가를 써야만 한다. 그마저도 개인 연차를 소진하는 것이라 동료들 불만이 상당하다. 심지어 개인 연차 사용도 눈치를 봐야 한다. 김씨는 “연차를 쓰려면 사유서를 내야 하는데 불가피한 일이 아닐 경우 ‘주말 처리해라’라는 식이라 지난해에도 못 쓴 연차가 10일”이라며 “휴가, 휴가비는 기대도 안 하고 연차라도 제대로 쓰고 싶다”고 토로했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 가운데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이 외국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는 탑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인천공항=이제원 선임기자
갈수록 심화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만큼 ‘휴식 격차’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일 이상의 유급 휴가에 휴가비까지 챙겨주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 10곳 중 2곳가량만 연차 외 휴가를 지급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마저도 3일 정도에 불과했고 휴가비 지급 의사가 있는 곳도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저출생, 높은 자살률 등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현재,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기 10곳중 2곳만 휴가 제공…3.6일      

11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여름휴가 계획 조사’에 따르면 올해 여름휴가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의 비율은 92.8%였다. 다만 이 중 연차 외 별도로 휴가를 제공하겠다는 기업은 23.5%에 불과했으며 제공되는 휴가일은 평균 3.6일이었다. 중소기업 대부분이 직원들에게 개인 연차를 휴가로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답한 셈이다. 이는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3년 하계휴가 실태 및 경기 전망 조사’와 동일한 결과다. 

휴가비와 관련해서는 응답 기업의 62.3%가 휴가비 지급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지급 계획이 있는 기업(37.7%)의 별도 휴가비는 평균 56만3000원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경총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의 절반 이상(57.6%)이 여름 휴가를 5일 이상 지급하겠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보다 1.4일 이상 높은 수치다. 아울러 300인 이상 기업의 69.1%가 휴가비를 지급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 또한 중소기업의 두 배에 육박한다.

이러한 ‘휴식 격차’는 출산휴가, 연차 등에서도 나타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인 미만 기업 근무자 중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7.5%로 공공기관(16.1%)과 대기업(23.0%)보다 3∼4배가량 높았다.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출산휴가의 기회도 줄어드는 셈이다.

연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5인 미만 기업 근무자의 67.9%가 ‘1년 동안 연차휴가를 6일 미만으로 사용했다’고 응답한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 근무자는 16.1%에 불과했다. 4배 이상의 차이다.   

이와 관련해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출산휴가 미부여 시 2년 이하의 징역(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육아휴직 미부여 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 연차 사용 권리 침해 시 2년 이하의 징역(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등의 처벌 규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법에 따라 처벌되는 사례는 대단히 드문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복지의 양극화’…저출생 악화시켜”     

직장갑질119 소속 박성우 노무사는 “관련해 처벌 규정이 존재하긴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업계로 빠질 생각이 아니라면 권리를 요구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임금을 체불해도 3개월 버티다 돈 주면 아무 불이익이 없는데 하물며 연차 관련 신고는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박 노무사는 또 “근로기준법 위반 관련 법원 판결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낮다”며 “관련해서 처벌을 강하게 내리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정착돼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비롯되는 휴가, 휴가비 등 ‘복지의 양극화’ 심화가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저출생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4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되지 말아야 할 영역에서 월드 챔피언이 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휴가든 연차든 결국 돈에서 비롯된다”며 “원청인 대기업이 하청인 중소기업을 쥐어짜서 남는 수익으로 여유 있는 인력을 뽑아 더 많은 휴가와 휴가비를 챙겨주니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85%가량이 중소기업인 상황에서 이처럼 소수인 대기업에만 ‘워라밸’이 몰리면 저출생이 나아지길 기대할 수 없다”며 “근로자에 대한 최소 복지 기준을 강화하고 동시에 원·하청 간 공정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양방향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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