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에 ‘토마토 주스’ ‘볼링’ 선 넘는 조롱…도대체 왜 이럴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토마토 주스’ ‘볼링절(節)’ ‘악덕 은행 종업원’ ‘굿 다이(good die)’
최근 서울 시청역 인근 교통사고 희생자들을 두고 온오프라인에서 믿을 수 없는 조롱 표현들이 나왔다. 굳이 사고 현장까지 방문해 조롱하는 쪽지를 두고 가는가 하면,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고를 볼링에 빗대며 지나친 막말·비하가 이어졌다. 9명에 이르는 희생자들을 희화화한 표현들로 많은 사람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사회에 조롱과 경멸의 발언들이 이번에만 특별히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온라인 기사, 유튜브 영상,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게시글 등에 비아냥거리고 저주하는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보가 못된 일부만의 일탈로 보기엔 그 수가 상당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일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 공감 능력 결여…가학적 성향
남을 조롱하고 깎아 내리는 발언을 하는 이들의 이면에는 다양한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다. 악성 댓글 다는 사람들의 성격 특성을 살펴본 해외의 여러 연구에서는 이를 성격의 ‘어둠의 4요소(Dark tetrad)’ 차원에서 설명한다.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중증 상태는 아니지만, 일반인 중에서도 못되고 사악한 성격을 가진 이들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어둠의 4요소에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규범을 무시하는 사이코패스(Psychopath) △거만함이 특징인 나르시시즘(Narcissism) △남을 조종·착취하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anism)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디즘(Sadism) 성향이 포함된다. 그래서 사고 희생자를 조롱하는 이들을 향해 ‘공감 능력 없는 사이코패스 같다’는 일부 여론의 비난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기사 참고: “나는 조롱한다, 고로 존재한다” 악플러의 심리)
● 만성 분노…엉뚱한 곳에 화 풀어
이런 악한 성격적 특성 외에도 분노가 많은 게 원인이 될 수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특성 분노(trait anger)가 높은 사람일수록 남들에게 더 많이 비아냥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성 분노는 평소 작은 일에도 짜증스럽게 반응하고,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성향을 말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특성 분노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협소하고 편향된 인지 처리 △충동적 반응 △지나친 자기애 등의 특성을 보인다. 특히 이들은 긴가민가한 모호한 상황이라도 화낼 만한 상황으로 인지해 기어코 화를 낸다. 자기와 직접 상관없는 일이라도 누군가 자기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싶으면 곧바로 남에게 화살을 돌리며 비난한다. 이때 분노가 소극적인 형태의 공격성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조롱이다. 온라인 기사 등을 읽고 그 내용이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고 느껴지면 바로 조롱, 비하 댓글을 다는 식이다.
현실에서는 남의 기분을 살살 긁으면서 비꼬다가, 막상 남들이 뭐라고 하면 “장난인데 왜 정색하느냐”고 오히려 상대를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일상생활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면 대인관계에서 고립되기 쉽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주변 사람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면, 당연히 주변 사람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고립된 상황 때문에 더 화가 잘 나게 되고, 조롱하고 무시하는 태도는 더 심해진다.
● 특성 분노 수준이 높은 사람은?
성미가 급하다.
불같은 성질을 지녔다.
격해지기 쉬운 사람이다.
늦어지면 화가 난다.
인정받지 못하면 화난다.
쉽게 화를 낸다.
화가 나면 욕설한다.
비판을 받으면 격분한다.
뜻대로 안 되면 때려주고 싶다.
나쁜 평가를 받으면 격분한다.
-상태·특성 분노 표현 척도 일부-
● “내가 제일 똑똑해” 우월감·관심 확인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 생각하는 인식이 너무 강해도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관심을 받기 위해 타인을 조롱하고 공격할 수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진이 자기애와 공격성의 연관성을 살펴본 437건의 전 세계 연구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자신을 과도하게 소중하게 여기며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은 공격성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월감, 오만, 대담함이 특징인 과대형 나르시시스트(grandiose narcissist)가 그렇다. 이들은 자신이 우월해서 남들을 말로 조롱하며,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욕구가 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관심받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남을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난 후폭풍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기가 우월하기에 이 상황을 제어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자기가 한 말을 훌륭하게 생각할 거라고 여겨서다.
화가 많은 사람에게서 자기애 성향이 관찰된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화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나서서 화를 내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이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상황 통제력을 과신하는 것과 비슷하다.
심지어 이들은 자기가 실제보다 지능이 높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심리학과의 또 다른 연구진이 303명을 대상으로 특성 분노 수준과 실제 지능,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지능을 각각 측정했다. 그 결과 특성 분노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실제 지능보다 자기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들은 ‘난 똑똑하고, 당신은 멍청하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무력감·불만…남 무시해야 기분 좋아져
화가 많은 사람과 자기애 성향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조롱과 비하를 활용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보통 사람의 경우 상황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느끼는 무력감과 불만을 해소하고자 욕하고 조롱하는 행동이 나올 수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실험참가자 7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밤늦게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누군가가 술에 취해 난동 부리는 걸 목격한 상황을 상상하게 했다. 그리고 한 그룹에는 난동 부리는 사람이 친구였을 때, 나머지 한 그룹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 물어봤다.
두 그룹 모두 그 상황에 화가 난다고 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비난과 비하, 경멸, 공격성 정도는 상대가 친구일 때보다 모르는 사람일 때 훨씬 심했다. 연구진은 “난동 부리는 사람이 친구일 때 초반에는 화가 더 많이 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옅어졌다”며 “반면 낯선 사람일 때 그룹은 비난, 비하 강도가 시간이 가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다”고 했다.
이 핵심에는 친구는 내가 뜯어말려 상황을 통제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차이가 있다. 내가 상황을 바꾸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냥 상대방을 벌레 취급하며 경멸하고 깔아뭉개서 도저히 상종 못 할 존재처럼 무시해 버려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공격성은 욕설, 돌 던지기, 방화 등 사회에서 수용 받기 어려운 방식으로 나올 때가 많다고 한다.
연구에서는 술에 취해 난동 부리는 범법 행위를 예로 들었지만, 현실에선 범법 여부와 상관없이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롱 글을 쓰거나 영상 등을 유포할 때가 많다. 방송이나 뉴스, SNS로 접하는 이들의 삶은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꿔버리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서 상대를 가능한 한 힘껏 깎아내리고 비하해서 무가치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걸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이 받을 상처와 충격은 생각하지 않고, 본인은 단순히 ‘스트레스 풀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잠깐 내 기분 좋자고 다른 사람의 삶을 말로 짓밟는 일이 즐겁다면, 내 안에 사이코패스나 사디스트 성향 등 ‘어둠의 4요소’가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 기사에서는 △권력자를 조롱할 때 얻는 심리적 이점 △상대 진영 “지능 낮다” 서로 무시 △뭉치면 독해진다 등 조롱과 막말하는 이유에 대해 더 알아볼 예정입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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