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킥보드 헬멧 훔치는 자 헬멧 안 주는 자 "누구 잘못일까"

이혁기 기자 2024. 7. 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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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애매모호한 헬멧 규제➋
인기 높아진 개인형 이동장치
헬멧 미착용시 부과되는 벌금
PM마다 적용 달라 혼란스러워
헬멧 제공하는 공유업체 거의 없어
소비자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해 
해외에선 벌금 부과 안 하는 대신 
규제 좀 더 엄격히 적용하는 추세 
국내법 개정안 국회에서 낮잠만
해외에선 전동킥보드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요즘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접근성이 좋고 이용이 간편해서인데, 도심 구석구석을 이어준다는 점에서 미래형 이동수단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용률이 높아진 만큼 사건사고도 늘고 있어 관련 대책이 필요해진 상황입니다.

# 문제는 새로운 이동수단을 규제하는 국내법에서 소비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똑같이 헬멧을 쓰지 않고 탔는데, 무얼 탔느냐에 따라 벌금 유무가 달라집니다.

# 하지만 헬멧 미착용시 벌금을 내야 하는 전동킥보드 이용자에게 '헬멧'을 들고 다니라고 말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벌금을 내지 않을 뿐 헬멧을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따릉이 이용자에게 "헬멧을 갖고 다니라"고 강제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가 헬멧을 제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헬멧 규제를 어떻게 손봐야 할까요. 해외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더스쿠프가 헬멧 규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짚어봤습니다. 더스쿠프 視리즈 '애매모호한 헬멧 규제' 2편입니다.

우리는 지난 1편에서 자전거와 개인형 이동장치(Personal Mobility·PM)를 탈 때 지켜야 할 모호한 헬멧 규제를 꼬집었습니다. 내용을 요약해 볼까요? 자전거든 전동킥보드 등 PM이든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둘 중 어떤 운송수단을 타느냐에 따라 세부 규제가 달라집니다. PM 중 하나인 전동킥보드는 오토바이‧스쿠터처럼 헬멧을 착용하지 않을 경우 범칙금 2만원이 부과됩니다.[※참고: 전기를 써서 시속 25㎞ 미만으로 운행하는 1인용 이동수단을 PM이라 부릅니다. 차를 이용하기엔 가깝고 걸어가기엔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반면 또다른 PM인 전기자전거와 자전거는 헬멧을 쓰지 않아도 범칙금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누구는 벌금을 내고 누구는 내지 않아도 되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자전거에 범칙금 규제를 추가해야 할지, 아니면 전동킥보드 규제를 다듬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헬멧 의무 착용 규제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자전거든 전동킥보드든 '헬멧'을 쓰는 게 다소 불편하단 점입니다. 특히 공유 전동킥보드를 탈 때 '헬멧 미착용'으로 인한 벌금을 내지 않으려면,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헬멧을 챙기고 다녀야 합니다. 벌금을 내진 않지만 자전거를 탈 때도 헬멧을 착용해야 하니, 따릉이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헬멧을 들고 다녀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전동킥보드의 '헬멧 착용'은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공유 킥보드 업체가 헬멧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도 풀어야 할 논쟁거리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유 PM 업체는 헬멧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스윙의 '공유 스쿠터 서비스'만 오토바이용 헬멧(스쿠터 수납함에 넣어놓는 방식)을 제공하고 있을 정도죠. 소비자들이 헬멧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란 얘깁니다. 즉흥적으로 이용하는 서비스 특성상 소비자가 미리 헬멧을 준비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22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동킥보드를 소유한 이들의 헬멧 착용률은 55.6%였던 반면, 공유 킥보드 이용자의 착용률은 13.2%에 불과했습니다.

공유 PM 업체들도 할 말이 있긴 합니다. 2021년 5월 헬멧 의무 착용 조항을 추가할 당시 공유 PM 업체들은 앞다퉈 헬멧을 도입했습니다. 헬멧 미착용으로 인한 사고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공유 PM 업체들이 헬멧도 제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업체들은 크게 2가지 방식으로 헬멧을 제공했습니다. 킥보드에 헬멧 보관함이나 보관 고리를 부착해 제공하거나, PM 이용자가 특정 지역에 헬멧을 자율 반납하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3년이 흐른 현재, 헬멧을 제공하는 공유 PM 서비스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헬멧 반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서 총 2600대의 공유 킥보드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 업체는 "2021년 헬멧을 제공하기 시작한 지 반년 만에 100개 이상의 헬멧을 분실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헬멧을 관리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공유 PM업체의 한 관계자는 "헬멧을 일일이 찾아 수거하고 소독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헬멧을 착용하려니 소비자도 찜찜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에선 성인이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땐 헬멧을 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속도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런 이유에서일까요. 해외엔 헬멧 착용에 관대한 국가가 적지 않습니다. 가령, 독일에선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이용 시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독일은 대신 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전동킥보드의 경우 한국보다 5㎞ 느린 시속 20㎞로 주행해야 하고, 번호판이 있는 공유 킥보드만 공공장소에서 탈 수 있습니다. 번호판이 없는 개인 소유 전동킥보드는 사유지에서만 타야 합니다.

주州마다 규제가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미국도 헬멧 착용을 권장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유 킥보드 사업이 태동한 곳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에선 18세 미만은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 하지만 성인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뉴욕도 18세 이상 성인은 헬멧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요? 국회에서 낡은 규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긴 합니다. 지난 1일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 외 10명은 '개인형 이동수단의 안전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이 법의 골자 중 하나는 불분명한 PM의 안전 요건을 명확히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PM 전용 헬멧 등 인명보호 장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헬멧 같은 안전장비가 소비자에게 보급될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힘을 써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언제 법제화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2020년에 비슷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문제는 남습니다.

이 법률안은 PM의 안전 요건을 어떻게 규정하겠다는지를 명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PM은 구조와 성능이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안전요건에 적합해야 한다'는 문구만 있을 뿐,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지, 범칙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지 등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주먹구구식 규제를 하루빨리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말을 이었습니다. "오토바이·자전거 등 기존 이동수단 규제에 PM을 억지로 끼워 넣으면서 헬멧 착용 문제 같은 모순이 생겨났다. 이는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뿐더러, 장기적으론 PM 산업 활성화에도 장애물이 될 것이다. 국회에서 PM 관련법을 빨리 점검해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이렇듯 소비자들은 낡은 헬멧 규제로 인해 적지 않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PM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오래된 법을 대입하다 보니 생긴 결과입니다. PM에 걸맞은 규제를 신속히 도입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국회에서 별 뜻이 없어 보입니다. 언제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당장은 힘들어 보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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