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명' 문턱에 국회서 설 자리 잃어…무시 당한 국민 목소리 키우려면

차현아 기자, 이승주 기자 2024. 7. 1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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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소외된 정당 (下)
[편집자주] 22대 국회의 거대 양당을 제외한 소수 정당은 조국혁신당을 비롯해 총 6개다. 많은 이들이 양당 독과점 대신 다원화된 시대의 다양한 민의 반영을 위해 다당제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회는 여전히 거대 교섭단체 정당만을 위한 무대다. 비교섭단체라 불리는 소수정당들이 겪는 한계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힘겹게 국회 입성했건만…더 문턱 높은 '그들만의 리그'
-반세기 넘게 이어온 '20명 기준'···안 바꾸나, 못 바꾸나
세계 각국의 교섭단체 구성 요건/그래픽=이지혜


지난 4·10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은 조국혁신당은 12석을 획득, 원내 제3정당 반열에 올랐지만 독자적인 원내 교섭단체라는 지위는 얻지 못했다. 1973년 박정희 정권 시절 만들어진 이후 50년 넘게 유지돼온 원내 교섭단체 요건인 '20명'의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원내 교섭단체 요건은 왜 20명으로 정해졌을까.

제헌국회 때 처음 정해진 교섭단체 구성 인원은 20명이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이후 출범한 6대 국회에서 최소 의석 수가 10석으로 줄었다. 그게 20명으로 다시 높아진 건 1972년 10월 유신 이후인 1973년 9대 국회에서다. 어용이 아닌 야당 또는 소수 정당이 탄압받던 유신 정권 때 정해진 숫자가 20명인 셈이다. 학계에서는 '20명'이라는 숫자가 엄밀한 근거로 산출된 것이 아니라 혼란했던 한국 현대사를 거치며 임의로 만들어진 기준으로 보고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제헌국회와 6대 국회 속기록 등 관련 자료를 모두 살펴봐도 왜 20명으로 설정했는지 명확한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며 "제헌국회 때는 통일을 염두에 두고 향후 북한과 함께 국회를 구성할 가능성을 고려했을 수 있고,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야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기반으로 정부 비판에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 원내 교섭단체 요건을 이전보다 높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장 역시 "(박정희 정권 당시) 대놓고 야당 탄압을 위한 개정이라고 할 순 없으니 일본의 법안발의 요건(20명) 등을 근거 삼아 적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법안발의 요건도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과 같은 20명이었으나 2003년 법 개정을 통해 10명으로 완화됐다.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 변천사/그래픽=윤선정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보다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 기준이 높은 나라는 올해 7월 기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독일(32명)이 유일하다. 양원제 국가의 경우 하원 기준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은 20명이며 △캐나다 12명 △스위스 5명 △일본 2명 △노르웨이 1명 등이다. 영국과 미국, 호주 등은 아예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없다.

독일의 경우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는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1석이었으나 나치 정권을 경험한 이후 나치와 같은 극단의 이념을 가진 정당의 의회 진입을 예방하기 위해 기준을 상향 조정했다. 또한 독일 연방의회 의석 수(630석)를 고려할 때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은 전체 의석수의 5%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나라(6%)보다 기준이 높다고도 보기 어렵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 팀장은 "의원정수나 교섭단체 구성요건은 그 나라의 문화, 역사성도 있기에 단순 비교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숫자만 놓고 비교를 한다면 현재 기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구성 요건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한국 역시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하되 그 수준은 해외와 비슷한, 전체 의석수의 3~5%(한국의 경우 10~15석)가 적절할 것이라는 제언을 내놓는다. 현행 선거제에는 총선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3%를 달성하는 정당에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할 수 있는 봉쇄조항이 있다. 따라서 3%는 원내 정당으로서의 최소한의 자격이자 원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현행 법에서 통용되고 있으므로 원내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취지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개정한다면 이 기준을 고려할 수 있다는 논리다.

조 교수는 다만 "(겸임상임위원회 포함)18개에 달하는 상임위원회 구성과 운영 등 국회법 내 원내 교섭단체와 관련된 수많은 규정이 있으므로 실제 국회 운영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간 국회에서도 개정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7대 국회 당시 손봉숙 통합민주당 의원이 교섭단체 기준 자체를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21대 국회 때도 심상정 당시 정의당 의원, 이상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놨으나 논의 없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에 소수 정당들은 현행 법 하에서 여러 정당이 함께 공동 교섭단체라도 만들기 위해 '의원 꿔주기' 등 묘수를 썼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22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야6당이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에 힘을 모으기로 했으나 결국 거대 양당이 법 개정에 협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거대 양당들은 국회 운영 효율성을 내세워 개정에 나서지 않아왔고 굳이 그럴 필요성도 못 느꼈을 것"이라며 "왜 20석이어야 하는지 이유가 없으니 20석이 되지 않는 정당이 국고보조금 등 각종 혜택에서의 차별은 물론 원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돼야 하는지 국민 입장에서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현 정치 환경에 맞게 교섭단체 구성요건 조정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3일 부산 동구 부산일보사 대강당에서 열린 조국혁신당 부산·울산·경남 제22대 총선 승리 보고대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2024.05.03. yulnetphoto@newsis.com /사진=하경민

정춘생 "유권자 뜻 받드는 정치 위해 교섭단체 요건 낮춰야"
-정춘생 조국혁신당 원내수석부대표 인터뷰
/사진=정춘생 의원실 제공


"국회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의정활동을 하려면 국회법상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가 필수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2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현 더불어민주당)에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 뒤 민주당 여성국장, 조직국장, 공보국장, 원내행정기획실장 등을 두루 거친 당직자 출신 정치인이다. 이번 22대 총선을 앞두고 조국혁신당에 합류하면서 비례대표 9번으로 원내에 입성했다. 이후 원내수석부대표로서 정당 간 세부 사항을 조율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조국혁신당으로 정치 무대를 옮긴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 두 환경을 모두 겪어본 당사자로서 "비교섭단체의 설움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국회의 의제를 선정하고 끌어가는 데 굉장히 한계가 있다"며 "모든 게 교섭단체 위주로 협상이 되고 보도가 되니 비교섭단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조국혁신당은 지난 총선에서 약 690만명의 유권자 선택을 받았지만 현재 국회 운영에 있어서 690만명 국민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며 "국회에 들어오니 상임위원회 일정, 예산 배분, 정책연구위원 배정, 심지어 사무실까지 모든 부분에서 교섭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무엇보다 국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관여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 가장 답답한 부분이다. 거대 양당의 협조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국고보조금 역시 거대 양당에 80% 가까이 배분돼 나머지 소수정당의 몫은 매우 적다. 사무실 운영비와 인건비로 지출하기도 빠듯한 형편"이라고 했다.

/사진=정춘생 의원실 제공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소수정당에 속해 있으면서 국회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의정활동을 하려면 국회법상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가 필수라고 봤다.

그는 "유권자 의사가 오롯이 반영된 의회 정치를 위해서는 국회가 문호를 더 개방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이 필수"라며 "기존 10명이었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유신헌법 공포 이후 20명으로 상향됐다. 10석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10석은 '교섭단체 난립'이라는 우려도 덜 수 있는 기준일 것"이라고 했다.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지금까지 정치개혁은 거대 정당의 이해득실에 따라 졸속으로 합의돼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개혁 주체에 국민이 함께할 수 있는 숙의기구가 국회 내에 있어야 한다"며 "실제로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제21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마련한 500인 시민참여단 공론화 토론은 의미가 있었다. 국회의장 산하에 이러한 기구가 만들어져야 각 정당의 이해득실을 넘어선 정치개혁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기는 올해가 돼야 한다. 내년은 유일하게 선거가 없는 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개혁을 논의하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지금이 정치개혁을 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말했다.

/사진=정춘생 의원실 제공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 내 다당제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교섭단체 요건 완화 외에도 △중대 선거구제 도입(총선) △결선투표제 도입(대선 및 지방선거) △비례대표 후보자 선거운동 제약 완화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우선 총선에 중대 선거구제 도입이 필요하다. '승자 독식' 구조인 현행 소선거구제는 17개 총선부터 22대 총선까지 사표율이 50%에 달할 정도로 민의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표를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대선과 지선에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유럽은 이미 결선투표제를 통해 연합정치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소수 정당에는 정당 간 연대를 통해 정치 영역을 확장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 대선에서는 투표율 70~80%에 대부분 득표율 50% 수준으로 당선자가 가려진다. 결국 전체 국민의 40%도 안 되는 민의만 반영되는 셈이다.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1차 투표 후 결선 투표를 실시하게 되면 유권자 50% 이상 지지를 받는 당선자가 나오게 된다"며 "이는 유권자 의사가 반영될 확률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거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비례정당으로 시작하는 소수정당이 많은데 현재 비례대표 후보자들은 선거운동에서 현수막도, 유세차량도, 마이크도 사용할 수 없다. 후보자가 유권자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또 "교섭단체 정당에 보조금 50%를 균등 배분하는 현행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을 폐지해야 한다"며 "다양한 형태의 정당이 나오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정당의 득표수 비율에 연동해 정당 간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우리를 국회로 보내준 국민들의 기대가 큰 데, 현행 국회 구조에서는 우리가 낄 수 있는 자리가 없다"며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국회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고 근본적으로는 국민들과 함께 정치개혁을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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