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첨병’ 한국, 베트남·튀르키예·인도네시아에서 배워야 할 것

한겨레 2024. 7. 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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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
신냉전과 다극화 시대
베, 미중러와 유연한 ‘대나무 외교’
‘나토 가입국’ 튀, 러와 관계 유지
다극화 혼재된 국제질서 재편기
한, 외교적 유연성 회복해야
지난달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하노이에서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EPA 스푸트니크 연합뉴스

‘작용-반작용’은 자연현상뿐 아니라 국가들 간에도 적용될 정도로 보편적인 법칙이다. 최근 약 한달간 일어난 국제안보 동향은 대략 그런 시각에서 볼 수 있다. 먼저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달 19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자동개입’을 포함한 사실상의 안보동맹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다음날 베트남을 방문하여 같은 ‘급’의 관계 강화에 대하여 합의했다. 그의 행보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유사 동맹체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능력이 되고 믿을 만한 파트너들을 제도적으로 확보한 것이다. 북한도 날로 커지는 한·미·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가 필요했을 것이다.

6월27일부터 사흘간 한·미·일 3국은 ‘자유의 칼날’(Freedom Edge)로 명명된 ‘다영역’(multi-domain) 연합훈련을 제주도 남방 동중국해에서 벌였다. 다영역 작전이란 미국의 전쟁 수행 개념으로서 공간적으로는 기존의 육지·해양·공중뿐 아니라 우주와 ‘사이버 공간’을 아우르고 기능적으로는 화생방전·대테러전·심리전 등을 포함하며 외교·전략정보·경제 등 비군사 영역까지 연결된다. 북·중·러 3국의 군사협력에 대응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주로 패권 도전국인 중국에 대한 봉쇄전략을 뒷받침하는 군사활동이다.

만만찮은 ‘기타국’

세계적 차원의 중요한 움직임은 지난 4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다. 에스시오는 2001년 6월 중국과 러시아 주도로 중앙아시아 4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협의체다. 이후 인도·파키스탄·이란이 가입했고 이번에 벨라루스가 합류하여 10개 회원국의 ‘다영역’ 협력기구가 되었다.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의 다극화가 현실임을 확인하고 ‘반서방’ 연대의 강화를 다짐했다. 채택된 ‘아스타나 선언’에서는 “에스시오 협력이 유라시아의 평등하고 불가분한 안보구조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에스시오 정상회의 뒤 약 일주일 만인 9일부터 사흘간 미국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가 열렸다. 나토의 아시아·태평양 협력국으로 ‘간택된’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뉴질랜드 등 4개국(AP4) 정상들은 나토와 별도 회담을 했다. 나토와 에이피4 간의 협력은 나토 회원국인 미국과 영국에 호주가 묶인 3국 동맹(AUKUS)을 통해 연결되는 구조다. 일단은 오커스 간에 추진되고 있는 첨단 무기체계와 군사기술의 공동개발에 에이피4가 참여하고 향후 ‘전력(戰力)이 전략(戰略)을 결정한다’는 수순으로 군사작전적 협력의 심화로 연결될 수 있다.

현 시기를 국제질서의 재편기로 본다면 미국과 서유럽을 한 편으로 하고 중국·러시아와 글로벌사우스를 다른 편으로 한 신냉전 분위기와 다극화 추세가 혼재한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를 ‘서방과 기타국들’(The West and the Rest) 간의 대결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타국들’에는 인도·중동·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프리카·남미 등을 대략적으로 통칭하는 글로벌사우스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국가들은 서방에 대하여 협력과 대결의 이중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극화 추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패권은 조용히 사라지는 법이 없으니 상당 기간 신냉전적 대결 구도 속에서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험성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패권유지 전략은 다층적 동맹의 강화다. 동북아에서 한·미·일을 동맹 수준으로 유지·강화하고 이를 대만과 필리핀·베트남 등을 통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로 확대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체는 에이피4를 통해 오커스와 나토로 연결한다. 전략적 우세의 범위를 인도양까지 확장하기 위해 인도를 쿼드에 끌어들였다.

다극화 추세는 중·러 주도로 미국의 동맹정책에 대응하는 측면과 함께 과거 소련과 같은 진영 내부의 유일 패권을 상정하지 않으면서 좀 더 ‘평등한’ 세계질서를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이 중·러 주도의 다국적 협의체에 더 많이 접근하려 하고 그것이 서방의 정치경제군사 협의체보다 더 강성해지고 있는 이유가 된다. 예컨대 냉전 시기(1973년)에 출범한 지(G)7에 대응하기 위하여 탈냉전기(2009년)에 출범한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는 애초부터 영토·인구·자원 등에서 서방을 월등히 능가했고 작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로 구매력지수를 고려한 국내총생산(GDP)의 총합에서도 지7을 앞질렀다. 회원국 수도 금년에 이란·이집트 등이 가입해 9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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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전략 재조정 필요한 때

신냉전과 다극화 추세가 마치 난류와 같이 뒤섞이고 복잡하게 진행되는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은 어떠해야 할까. 한국은 이미 ‘선진국’인데 무슨 ‘생존 타령’이냐고 물리칠 일이 아니다. 지정학적 여건이나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긴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가전략에서 ‘유연성’을 회복하고 발휘하려면 먼저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첫째, 북한에 대한 접근 전략의 유연성이다. 북-러 동맹에 대해서도 군사위협에만 주목하여 과도한 우려와 규탄 성명만 발표한다면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와의 동맹을 통해 남한 대비 동맹체계와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경제에 매진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이는 ‘균형’이라는 전쟁억제 효과와 함께 경제 발전을 통한 민주화 수준과 평화 지향성의 제고 가능성을 의미할 수 있다.

둘째,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두 국가 모두 한국 정부에 불만은 많지만 그런대로 참고 기다리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북-러 동맹을 걸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거론할 게 아니라 1992년에 체결한 ‘한-러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을 다시 읽어보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정신과 전략을 회복해야 한다. 그 조약은 북-러 조약에서 군사 분야를 제외하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중국에 대해서도 북-러 동맹을 썩 탐탁지 않게 보는 틈만 이용하려 한다면 하수요 하책이다. 안보와 경제 관계의 근본 문제들을 진정성 있게 협의해 나가야 한다.

셋째, 미국·일본·서방에 경도되어 신냉전으로 질주하는 안보전략을 한번쯤 찬찬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저 막대한 기회비용의 상실을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이렇게 신냉전의 첨병으로 줄달음치다가 원치 않은 전쟁에 휘말리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생기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다극화의 본령에 충실하여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대외관계 다변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아마 어떠한 논리보다도 몇 나라의 사례가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중국·러시아·미국을 상대로 유연하게 펼치는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 나토 회원국이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튀르키예, 아세안의 종주국답게 대범한 글로벌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인도네시아 등은 우리보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뒤지지만 배울 점이 많지 않은가. 남북한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언젠가는 함께 에스시오와 브릭스의 옵서버에서 협상대상국을 거쳐 결국 회원국이 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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