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홍명보, 축구협회는 5개월 동안 뭘 했나
유력했던 마쉬 감독, 축구협회가 미적거리면서 사인 불발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차기 사령탑으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이 낙점됐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이후 10년 만에 A대표팀 감독 복귀다. 지난 2월 아시안컵 직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조기 경질한 후 5개월 동안 신임 사령탑을 결정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던 대한축구협회는 7월7일 오후 홍명보 감독 내정 사실을 전격적으로 알렸다. 하루 후인 8일에는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브리핑을 통해 이 내용을 확정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축구협회가 당초 입장과 전혀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직후 축구협회가 홍명보·황선홍 감독 등 국내 사령탑에 비중을 두고 검토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외부에 알려져 큰 충격을 준 아시안컵 4강 전날 손흥민과 이강인의 물리적 충돌 등 A대표팀의 기강 문제가 최근 빈번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도 이 문제를 해소할 적임자는 국내 감독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감독 검토는 보여주기식?
국내 감독을 선임해 3월 월드컵 2차 예선 2경기(태국 홈, 원정)를 치르겠다던 당초 계획은 백지화됐다. K리그 개막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유능한 국내 감독을 빼가는 것에 축구팬과 언론의 반대가 컸다. 현역 K리그 감독으로 홍명보 감독 외에 김기동 FC서울 감독, 이정효 광주FC 감독도 후보로 거론됐다. 황선홍 감독은 당시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서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이 더 급한 미션인 상태였다.
결국 축구협회는 한발 물러서서 외국인 감독으로 선회했다. 정해성 위원장 체제로 새로 출범한 전력강화위원회는 지난 3월 A매치를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로 소화한 후 외국인 감독 후보를 검토했고 황희찬(울버햄튼)을 지도한 바 있는 제시 마쉬 전 라이프치히 감독을 최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미국 국적이지만 분데스리가, EPL 등 유럽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쌓은 마쉬 감독은 유럽에서 가진 정해성 위원장과의 직접 면담에서 한국 축구에 대한 심도 깊은 의견과 운영 계획을 밝혔다. 높은 점수로 타 후보를 압도한 마쉬 감독은 본격 협상을 앞두고 황희찬과 별도로 만나는 등 한국행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했다.
그런데 마쉬 감독과의 협상이 외부에 알려지고 2주 넘게 공식 발표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4월말 협상 결렬 소식이 전해졌다. 협상을 담당한 축구협회 경영본부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결국 마쉬 감독은 한국이 아닌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마쉬 감독의 한국행을 추진한 에이전트는 "정해성 위원장과의 면담 때만 해도 양측 간 의견 차가 없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연봉 부분도 문제가 없었다. 9부 능선을 넘었다고 봤다. 그런데 오히려 축구협회가 확답을 주지 않고 시간이 지체되면서 마쉬 감독은 자신에게 좀 더 적극적이었던 캐나다를 택했다"고 전했다.
캐나다 A대표팀에 부임한 마쉬 감독은 현재 진행 중인 코파아메리카(남미 대륙컵)에 초청팀 자격으로 참가, 남미의 쟁쟁한 팀들을 꺾고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마쉬 감독 계약 결렬과 함께 전력강화위원회의 외국인 감독 선임 작업은 사실상 동력을 잃은 모습이었다. 헤수스 카사스(스페인) 이라크 대표팀 감독이 남은 우선 협상 후보였지만, 같은 아시아축구연맹 내 현역 대표팀 감독을 데려오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었다. 당초 유력 후보로 팬들의 지지를 받은 에르베 르나르(프랑스), 세놀 귀네슈(튀르키예) 감독은 면접 과정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 최종 협상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결국 지난 6월 A매치(싱가포르 원정, 중국 홈)도 임시 감독 체제로 치러야 했다. 싱가포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김도훈 전 라이언시티(싱가포르) 감독이 긴급 선임됐다. 2경기 모두 승리하며 목표였던 3차 예선 조추첨 때 시드 배정을 받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축구협회는 외국인 감독 선임을 위해 계속 시간을 버는 모습이었다. 황선홍 임시 감독 강행은 우려했던 대로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로 이어져 한국 축구는 큰 기회비용을 치르기도 했다.
7월초 정해성 위원장이 돌연 사임했지만 그 후에도 축구협회는 외국인 감독 선임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임생 이사는 7월1일 유럽으로 출국해 새로운 후보인 거스 포옛(우루과이) 전 그리스 A대표팀 감독, 다비트 바그너(미국) 전 노리치시티(잉글랜드) 감독과 면접을 진행했다. 그런데 귀국 후에 내린 결론이 외국인 감독 선임이 아닌 내국인 감독 선임으로 돌변한 것이다.
물음표투성이 선임, 축구협회도 해명 못 해
홍명보 감독 선임에는 의문부호가 가득하다. 대한축구협회의 발표 이틀 전만 해도 홍 감독은 K리그 경기를 치른 후 기자회견에서 A대표팀에 가는 것을 강하게 부정했다. 오히려 그는 최근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서 학습효과를 얻지 못했느냐?"며 축구협회를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유럽 출장을 마치고 온 이임생 이사를 만났고 다음 날 감독직을 수락했다. 결국 지난 2월 큰 비판에 직면한 '현직 K리그 감독 빼오기 전략'을 5개월가량 미뤄 실행했다는 의심만 짙은 상태다. 수많은 외국인 감독 후보를 만나러 다닌 시간과 노력은 사실상 성과 없는 허송세월이었다.
현재 큰 의문점은 두 가지다. 대한축구협회가 어떤 당위성 있는 프로세스로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느냐, 그리고 홍 감독은 왜 강하게 거절하던 요청을 수락했느냐다. 첫 번째 실마리를 푸는 게 중요했다. 이임생 이사의 7월8일 브리핑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이유였다. 2018년 당시 감독 선임 책임자였던 김판곤 위원장은 '중국에서 실패했다'는 딱지가 붙은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택한 배경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부정적인 분위기를 단숨에 기대로 돌려놓는 역대급 브리핑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임생 이사는 오히려 불투명한 내용의 브리핑으로 분위기를 더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홍명보 감독 선임 배경으로 언급한 8대 조건 중 일부는 외국인 사령탑에 들이대기 불리한 기준이라 설득력만 떨어졌다. 더군다나 외국인 감독 후보들과 달리 홍명보 감독은 면접이 아닌 삼고초려 형식의 설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제대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모두의 눈은 홍명보 감독의 입으로 향한다. 소속팀 울산과 A대표팀으로 향하는 시점을 조율 중인 홍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당위성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홍명보 감독의 계약 기간은 2027년 2월까지다. 2026년 북중미월드컵은 물론 그 이후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 맡긴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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