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이종필 감독 "그냥 쭉쭉쭉 가는 이야기, 감정적 만족감 주고 싶었죠" [MD인터뷰](종합)
"그냥 '쭉쭉쭉' 가는 이야기이고 싶었다"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저는 철저하게 대중영화감독이고, 이 영화는 대중영화예요. 어떻게 대중에게 잘 전달될까, 감정적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고 또 그렇게 작업해요."
이종필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 개봉을 앞두고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탈주'는 철책 반대편의, 내일이 있는 삶을 꿈꾸는 북한군 병사 규남(이제훈)과 그를 막아야 하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목숨을 건 탈주와 추격전을 그린 작품.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이종필 감독의 신작이다.
이날 이종필 감독은 "해외토픽을 보는데 아프리카 청년 둘이 유럽으로 밀입국하려고 활주로에 잠입해서 바퀴에 몸을 매달았다. 놀랍기도 하고 그렇게 하기까지 이 사람의 마음이 너무 궁금했다"며 "'왜 저렇게까지 하려고 했을까' 했는데 며칠 뒤 직장 다니는 친구 하나가 술에 취해서 막 울면서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부장이 개새끼'라면서 엉엉 울더라. 그 순간 비행기에 매달린 아프리카 청년의 마음과 비슷하겠구나 싶었다. 그때쯤 '탈주' 시나리오를 봤다"라고 '탈주'의 시작을 회상했다.
그는 "나도 이를테면, 그러니까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선입견 혹은 피로감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풀게 되면 북한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그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연출할까 생각했을 때 그냥 '쭉쭉쭉' 가는 이야기이고 싶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영화를 봤는데 '쭉쭉쭉'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까 내 이야기 같은데' 이런 반응을 기대하면서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쭉쭉쭉' 가는데 이제훈이 빨리 뛰어야 한다는 물리적인 것도 물론 있었다. 그렇지만 시각적으로 빨리 뛴다, 커트가 빠르다 이런 것도 있겠지만 캐릭터 자체가 직진하는 사람이어야 했다"며 "보통 이런 장르에서 추격전, 목적을 이루려는 어떤 인물 앞에 장애물이나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에둘러 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규남은 어떤 상황이 왔을 때 '어떡하지' 이럴 틈도 없이 그냥 가버린다. 그게 핵심이었다"라고 짚었다.
규남은 미래가 정해져 있는 북이 아닌, 남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북한군 병사다. 동시에 '이 사람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생각했을 때, 일차적으로 죽어도 상관없다는 각오를 했을 인물이다. 내가 나의 의지로 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사람. '떳떳하기 때문에 나는 간다'라는 것이 바로 규남이다. 그렇기에 '쭉쭉쭉' 가는 '탈주'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이제훈이었다. 실제 이 감독은 오랫동안 멀리서 이제훈을 지켜보며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제훈에 대해 이 감독은 "정말 변화무쌍하게 자기만의 커리어를 가져가면서 정말 변함없는 사람이다. 이제훈을 만나면 항상 '언젠가 내 극장을 갖고 싶다'라는 말은 한다. 만나서 맨날 하는 게 영화 이야기"라며 "요즘 유튜브를 하는데 전국 곳곳에 있는 작은 영화관을 찾아가고 덜 알려진 독립영화를 홍보한다. 정말 영화에 진심이고 확실한 자기 신념을 가지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상업적인 커리어와 독립영화에 대한 진심을 같이 가져가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제훈이 죽어라 뛰고는 '뛰는 자세가 죽어라 뛰는 것처럼 안 나온다'하고 고민하더니 다시 뛰더라. 영화 촬영 현장이라는 게 시간이 촉박하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이제훈에게 거의 매일 '오늘은 이런 걸 찍는데 이 부분을 강조했으면 좋겠다'라고 메모를 보냈다. 항상 답은 똑같았다. 늘 '해보겠다'라고 하더라. 그리고 항상 해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구교환에 대한 칭찬도 빠트리지 않았다. 구교환은 러시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현재는 유능한 장교의 삶을 살고 있는 현상을 연기했다. 이 감독은 "구교환이 뭔가 이상한 걸 할 때마다 '이게 정말 사람들에게 좋을까, 안 좋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고뇌라면 고뇌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구교환의 이상함은 잘 봐야 된다. 구교환의 이상함은 항상 본질을 건드린다"며 "촬영 현장에서 내가 상황을 낯설게 보는 것처럼 캐릭터 자체나 연기에 대해서도 항상 낯설게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감탄했다.
구교환을 캐스팅하기 위해 현상 캐릭터에 변화도 줬다. 이 감독은 "이 사람이 이걸 연기하고 싶으려면 입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빼자'라고 생각했다. 다만 빼는 만큼 살짝살짝 표시를 해줬다. 겉으로는 피아노도 치고 춤도 추는데 구체적으로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다. 편집된 거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정말 이게 전부"라며 "이렇게 툭툭 던지는데 역시나 센스 있게 툭 툭 툭 다 알더라. 그래서 같이 입체적인 현상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상할 수 있는데, 현상뿐만 아니라 연출론적으로 저는 '탈주'를 뺄셈의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영화들은 꽉꽉 차 있죠. 그런데 관객들은 꽉꽉 찬 영화를 좋아하지만, 어떨 때는 진부하다고도 이야기해요. 왜 뺄셈이 필요하냐면, 많이 본 장르에서 뺄셈을 하면 그 자리만큼 관객이 채운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이 영화 자체의 연출도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이 감독은 여러 차례 자신을 '대중영화' 감독이라 칭했다. 그런 이 감독이지만, 흥행을 희망하면서도 뜻밖의 바람을 함께 전했다. 그는 "내 의지로 저기는 가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간다고 보장된 건 아니고, 불안하지만 왠지 여기보다는 나을 것 같고. 그럴 때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가는 것까지는 내 의지로 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탈주'"라며 "정말 그렇기 때문에 스코어의 개념, 흥행이 아니라 이걸 보는 개인에게 감정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느냐가 나의 잣대다. '탈주'는 어떤 감정적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 때문인지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관객과의 소통을 꼽았다. 이 감독은 "궁극적으로 '영화를 왜 할까' 생각했을 때는… 지하철을 타거나, 혹은 길거리를 걸을 때, 모르는 사람이지만 말을 걸고 싶은 심정이다.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까'하고. 정말 궁금하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그분들에게 닿았으면 한다"며 "나는 10대, 20대 시절에 영화를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힘들 내기도 했다. 정말 많은 걸 받아서 '내가 만약 이 일을 한다면 닿을 수 있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있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뭔가 정해놓고 살아야 될 것 같고, 한 번 어긋나면 그냥 실패한 채 살아야 될 것 같고. 그게 아니라 그냥 나의 의지를 가지고 뭔가 해볼 수 있지 않나. 남들이 봤을 때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나한테는 조금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누군가의 잣대나 평가보다 '내가 봤을 때 옳았어' 이런 게 기준"이라며 "'탈주'도 그런 이야기다. 성공이냐 실패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오는 쾌감, 내가 몰랐던 나의 어떤 가능성이 있지 않나. 그 가능성은 규남이라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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