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형제 모두 피살... 총 맞은 레이건, 지지율 83%까지 올라
루스벨트는 총 맞고도 90분 연설
월리스 前 주지사, 하반신 불수 돼
총기 사용이 합법화된 미국 정치 현장에선 종종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대통령 및 후보 테러 사건이 발생해 왔다. 에이브러햄 링컨(1865년 사망), 존 F. 케네디(1963년) 등 총탄에 목숨을 잃은 대통령도 넷이나 된다. 암살 시도는 대부분 정치적 동기로 이뤄졌지만, 암살범이 정신병을 앓고 있거나 용의자가 사살돼 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케네디 암살범으로 총격 후 체포됐으나 이틀 후 재판 직전 갑자기 나타난 술집 주인(잭 루비)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전직 해병대원 리 하비 오스왈드가 대표적이다. AP는 13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유세 도중 벌어진 총격 사건에 대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총격당한 이래 가장 심각한 암살 시도”라고 했다.
레이건은 첫 임기가 시작된 지 두 달 만인 1981년 3월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연설을 마치고 리무진 차량에 탑승하던 중 가수 지망생으로 우울증을 앓던 존 힝클리 주니어가 쏜 총에 맞았다. 여섯 발의 총격 가운데 리무진에서 튀어나온 총알에 왼쪽 겨드랑이를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가 손상됐다. 내부 출혈로 응급 수술을 받았고 12일 만에 퇴원했지만, 옆에 있던 제임스 브래디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총격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힝클리는 배우 조디 포스터의 이목을 끌려고 암살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레이건은 건재를 알리려 수술 직전까지 계속 농담을 했는데 산소 호흡기를 끼고 수술실 의사들에게 적은 “여러분이 모두 공화당원이야 할 텐데요”는 그의 여유와 유머를 상징하는 말로 나왔다. 암살 시도 직후 국민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레이건의 지지율은 83%까지 상승했다. 힝클리는 이후 재판을 받고 투옥됐다가 보호관찰 처분 대상으로 2016년 석방됐고, 2022년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된 후엔 가수로 활동 중이다.
1968년 6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로버트 F. 케네디는 그의 친(親)이스라엘 노선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시르한 시르한에게 총격을 받아 결국 목숨을 잃었다. 케네디는 올해 대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완주를 공언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부친이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이다. 캘리포니아주 프라이머리(예비 경선) 승리 이후 자축 연설을 한 뒤 호텔을 빠져나가며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다가 가까이서 총격을 당했고 3발의 총알이 가슴·뒷목 등에 박혔다. “모두 괜찮을 겁니다”라고 말한 것이 그의 유언이 됐다. 케네디 사망 후 부통령 출신 휴버트 험프리가 민주당 최종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결국 공화당 리처드 닉슨에게 패배해 정권이 교체됐다.
바로 다음 대선이 치러진 1972년에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조지 월리스 앨라배마 주지사가 피격됐다. 메릴랜드주 선거 유세 도중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아서 브리머가 쏜 총에 맞았다. 중태에 빠지며 대선을 접었고, 긴 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평생을 하반신 마비 상태로 살게 됐다. 당시 월리스는 백인 여자아이가 불량해 보이는 흑인 남성에게 둘러싸인 TV 광고 등 반(反)흑인 캠페인을 진행 중이었는데 흑인 의사의 수술로 목숨을 건졌다. 월리스는 이후 “인종차별주의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고 했고, 1976년 대선 경선에서 또 한번 고배를 마신 뒤 3년 뒤 정계를 은퇴했다. 1972년 선거는 공화당 닉슨의 재선으로 마무리됐다.
앞서 26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공화당에서 나와 진보당을 창당한 후 대선에 도전한 1912년, 위스콘신주 밀워키 유세 도중 총격을 당했다. 루스벨트가 한 호텔에서 식사를 마치고 유세 차량에 올라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순간 독일계 청년 존 슈랭크가 방아쇠를 당겼다. 루스벨트의 가슴에 총알이 박혀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유권자와 약속한 연설을 이행해야 한다”며 병원 치료도 거부한 채 유세장으로 이동해 약 90분 동안 연설을 한 뒤 단상에서 내려왔다. 총알은 폐에서 불과 1㎜ 떨어진 곳에 박혔는데, 고도 근시 때문에 양복 주머니 안쪽에 늘 갖고 다니던 안경집과 원고 뭉치가 ‘방탄’ 역할을 했다. 루스벨트는 “결코 총알 하나로 날 죽이려 했다니 나는 죽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다만 이때 박힌 총알을 빼내지 못해 평생 몸에 지니고 살아야 했다. 공화당의 표 분산으로 대선의 승리는 민주당 우드로 윌슨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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