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보수하는 건담?…야외 작업용 인간형 로봇 ‘출동’
인간 상반신에 길쭉한 크레인 연결
첨단 조종장치로 사람이 원격 통제
나뭇가지 자르고 페인트 도색 가능
인명 사고 줄이고 노동력 부족 대응
#인간 신체 형상을 한 높이 수십m짜리 로봇 두 대가 수백m 거리에서 치열한 총격전을 벌인다. 수풀에 은폐한 적군 로봇이 선제 사격을 하자 아군 로봇은 더 큰 총으로 응사한다. 자욱한 연기와 함께 적군 로봇은 대파돼 전투 불능 상태가 된다. 승기를 잡은 듯한 순간, 비행용 추진기를 켠 또 다른 적군 로봇이 공중에서 나타나 아군 로봇에 집중 사격을 가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간판 시리즈인 <기동전사 건담>에 등장하는 한 전투 장면이다. <기동전사 건담>에서는 ‘모빌 슈트’라고 부르는 인간형 로봇을 아군과 적군이 모두 주력 무기로 삼는다. 모빌 슈트에는 조종사가 직접 탑승한다. 자신의 팔과 손으로 조종 장치를 바쁘게 움직여가며 모빌 슈트의 팔과 손, 다리를 통제한다. 이를 통해 모빌 슈트는 총을 쏘고 검을 휘두른다. 몸통 방향을 돌리거나 빠르게 달리기도 한다.
모빌 슈트는 당연히 상상의 산물이다. 이족보행을 하면서 몸통을 자유자재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로봇은 <기동전사 건담>이 처음 등장한 1970년대나 지금이나 만들기 어렵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달 말 모빌 슈트의 친척뻘쯤 되는 로봇이 진짜 현실에 등장한다. 장소는 전장이 아니라 철도다. 무슨 얘기일까.
인간 상반신 모양 ‘거대 로봇’
일본 철도 운영회사 중 하나인 서일본 여객철도는 최근 자국의 로봇 기업과 함께 개발한 인간형 로봇을 이달 말부터 야외 철도 보수 작업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봇은 머리와 눈, 두 팔이 부착된 키 약 1m짜리 상반신을 갖췄다. 여기까지는 사람을 닮았다. 하지만 하반신이 없다. 하반신이 있어야 할 부위에는 접는 우산처럼 길이가 자유자재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길쭉한 크레인이 연결돼 있다.
크레인은 적재 중량이 2~3t인 중형 화물차에 꽂혀 있다. 화물차에는 공중전화 부스 모양의 조종실이 마련돼 있다. 이 조종실 안에 사람이 들어가 로봇을 원격 통제한다.
서일본 여객철도에 따르면 로봇 조종에는 최신 기술이 활용됐다. 목적은 ‘쉽고 간편한 조작’이다. 일단 로봇 조종사는 두툼한 첨단 고글을 쓴다. 고글은 로봇에 달린 눈, 즉 카메라에 잡힌 사물을 그대로 조종사의 눈에 보여주도록 만들어졌다.
특히 고글은 조종사가 특정 사물을 보기 위해 머리를 움직이면 로봇의 머리도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개발됐다. 마치 거울 같다. 이 고글을 통해 조종사는 로봇 주변의 사물을 빠르고 편하게 살필 수 있다.
로봇에 달린 두 팔도 조종사가 최대한 자신의 팔처럼 느끼며 조작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조종사가 팔뚝처럼 생긴 조작 장치 2개를 양손으로 각각 움켜쥐 뒤 위아래로 들고 내리거나 좌우로 벌리면 로봇에 달린 팔도 똑같은 동작을 한다.
굴착기 같은 현실 속 중장비들은 이런 복잡한 동작을 대개 길쭉한 막대기 같은 조이스틱으로 구현한다. 하지만 조이스틱을 팔처럼 느끼며 직관적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사람이 굴착기를 움직이려면 장기간의 조종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로봇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비록 땅을 달리지는 못하지만 이 로봇은 조종 방식에서 <기동전사 건담> 속 모빌 슈트보다 특별히 못한 것이 없을 정도로 진보한 셈이다.
야외 작업 인력 30% 감소
로봇은 자신의 허리 아래에 부착된 크레인을 연장해 최대 높이 12m까지 올라갈 수 있다. 로봇 팔로 감당할 수 있는 최대 무게는 40㎏이다.
이 같은 능력을 통해 로봇은 고공이나 전동차용 전력선 주변에서 이뤄지는 각종 야외 작업을 사람 대신 수행할 예정이다. 위험한 장소에서 추락이나 감전으로 인한 인명 사고가 일어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인터넷에 공개된 작동 시험 동영상을 보면 로봇은 사람처럼 정교하게 일한다. 전기 톱으로 전력선 주변의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붓을 들어 칠이 벗겨진 구조물에 페인트를 칠한다. 손 부위에 이런 일을 할 다양한 작업 도구를 바꿔 끼울 수 있다. 서일본 여객철도는 앞으로 작업 도구를 더 다변화할 예정이다.
이번 로봇은 일본 사회의 만성적인 문제인 노동력 부족에도 대응할 수단이다. 일본 산업계에서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인해 사람 대신 업무를 수행할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서일본 여객철도는 공식 자료를 통해 “야외 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3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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