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로 읽는 과학] 박쥐 위협 '흰코 증후군' 막는 방법 찾았다

박정연 기자 2024. 7.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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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번주 표지로 코 주변이 하얗게 변한 작은갈색박쥐의 모습을 실었다.

흰코 증후군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이 박쥐의 피부에 침범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은 "곰팡이균의 침입은 질병 발생의 첫 단계로 향후 병의 진행을 막는 데 아주 중요하다"며 "이번에 제시한 치료 전략은 박쥐의 흰코 증후군 감염을 완화하는 해법의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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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제공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번주 표지로 코 주변이 하얗게 변한 작은갈색박쥐의 모습을 실었다. 특정한 곰팡이균이 원인인 '흰코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박쥐들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전파되는 이 전염병은 지난 20년 동안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박쥐 개체수를 크게 감소시켰다.

과학자들이 박쥐 생태계를 위협하는 이 감염병의 치료 단서를 발견했다. 흰코 증후군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이 박쥐의 피부에 침범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낸 것이다.

곰팡이균은 박쥐가 깨어있을 때와 동면 중일 때 각각 다른 방식으로 피부를 통해 체내로 침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번에 밝혀낸 곰팡이균의 특성을 바탕으로 흰코 증후군에 대한 새로운 치료 전략까지 제시했다.

마르코스 이시도로아이자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 교수 연구팀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1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앞선 연구에 따르면 흰코 증후군은 '수도김노아스쿠스 데스트럭탄츠(Pseudogymnoascus destructans)'란 곰팡이균이 일으킨다. 이 곰팡이균은 추위를 좋아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추운 겨울 동안 동면을 취하는 박쥐들이 주된 타깃이 된다.

흰코 증후군은 특정 지역에서 서식하는 박쥐 무리의 95%를 폐사시킬 만큼 치명적이지만 마땅한 치료법이나 예방법은 그간 밝혀지지 않았다. 박쥐는 농작물을 해치는 해충이나 곤충이 매개하는 질병 확산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이 질병의 치료법을 찾는 것은 학계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연구팀은 이 곰팡이균의 특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박쥐가 동면하는 동안 곰팡이균은 스스로 분비하는 포자를 통해 박쥐 피부의 각질세포로 침투하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박쥐의 면역 반응을 전혀 자극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박쥐가 활동하는 동안에는 각질세포에 직접 접근해 체내에 침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두 감염 경로가 공통적으로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EGFR은 동물의 표면이나 장기의 표면을 덮고 있는 세포의 성장 호르몬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흰코 증후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EGFR을 차단하는 약물인 게페티닙 등을 사용하면 질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게페티닙은 1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인 이레사의 성분으로도 잘 알려졌다.

연구팀은 "곰팡이균의 침입은 질병 발생의 첫 단계로 향후 병의 진행을 막는 데 아주 중요하다"며 "이번에 제시한 치료 전략은 박쥐의 흰코 증후군 감염을 완화하는 해법의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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