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대통령 등장에도 이란 본질적 변화 어려워… ‘무력과 돈’ 못 다루기 때문”

임명묵 작가 2024. 7.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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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란통’ 신재현 서아시아경제포럼 회장 “중동, 현재의 외교정책 기조 이어질 것”
“지금은 국제질서 재편 시기…한국, 생존 위해 美 편향적 외교 넘어 국익 최우선 외교 절실”

(시사저널=임명묵 작가)

5월19일, 이란의 보수파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가 탑승한 헬기가 추락해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갑작스러운 대통령 유고에 이란은 급히 대통령선거를 치러야만 했다. 그래도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건재한 반면, 정부에 비판적인 인구가 선거를 대부분 보이콧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보수파의 재집권을 점쳤다.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탄생한 보수파는 미국, 이스라엘과 적극적으로 대결하고, 이슬람에 입각한 문화 통제를 고수하고자 하는 세력이다. 

하지만 결과는 문화 통제 완화와 대서방 유화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의 당선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빠르게 흘러가는 이란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 당시 에너지자원협력 대사를 역임하며 이란 중앙은행의 국내 원화계좌 개설을 주도한 '이란통' 신재현 서아시아경제포럼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화 통제 완화와 대서방 유화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은 최근 이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EPA 연합

임명묵(이하 임): "저도 그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어 연구 지역 중 하나인 이란을 다녀왔습니다.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란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정부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가 많았습니다. 이런 흐름이 반영되어 개혁파 대통령이 다시 등장한 이번 선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재현(이하 신):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도 투표율이 굉장히 낮았습니다. 1차 투표는 40%였고, 결선투표에서 그래도 600만 명이 더 투표장에 나와 50%가량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추가로 등장한 표가 전부 개혁파 페제시키안으로 향해 당선된 것인데, 저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란에 본질적인 변화가 발생하기는 매우 힘들 거라고 봅니다.

이란의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혁명수비대가 체제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죠. 왼팔은 무엇이냐? 돈입니다. 이란국영석유공사와 세타드(이맘 호메이니 명령 집행부)라는 국영 자산 관리조직이 최고지도자의 통제를 받습니다. 무력과 돈을 다루지 못하는 권력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겁니다."

임: "국민의 지지를 결집해 정책 전환을 이루어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신: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 하지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장기화되었습니다. 제가 작년 10월에 테헤란 갔을 당시 환율이 달러당 49만 리얄이었는데, 어제 물어보니 62만 리얄이더군요. 8개월 만에 환율이 20% 오르면 일반 국민은 얼마나 살기가 어렵겠습니까. 히잡 의무 착용에 대한 청년 여성들의 불만도 계속 커져 시위로 표출되고 있지요. 그러니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열망은 매우 큽니다. 게다가 페제시키안이 일반 국민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인 것도 맞습니다. 성직자가 아니라 의사 출신이기도 하거니와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고 아이들을 혼자 키워내서, 자상하고 가정적인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많은 국민에게 호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최고지도부에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그런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인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신재현 서아시아경제포럼 회장 ⓒ시사저널 최준필

임: "그렇다면 최고지도부는 개혁파 대통령의 당선에 압박을 느끼게 될지요?"

신: "의식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지도부가 후보 권한을 심사하는데, 그래도 당선되어 자신들이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올리는 정도의 계산은 하지 않았겠습니까?"

임: "페제시키안이 북서부의 소수민족 아제르바이잔계라는 데 주목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인이나 쿠르드인 같은 이란 내 소수민족이 개혁파에 결집했다는 분석도 보았고요. 민족 문제의 관점에서도 이번 선거를 볼 수 있겠습니까?"

신: "그런 시각은 정확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아제르바이잔이 일단 소수민족이라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인구 30%를 점유하고 집권 세력에 대거 포진해 있는 큰 민족이고요. 페르시아 문명 아래에서 8~9개의 주요 민족이 공존하는 나라가 이란입니다. 그렇게 큰 변수였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임: "한편 또 이란에서 가장 중요한 게 경제난이지 않습니까? 경제난은 미국과 외교적으로 대치하면서 받은 경제 제재가 주요 원인이고, 그 배경에는 이란-이스라엘의 적대 관계도 자리하고 있고요. 페제시키안이 외교정책에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신: "역시 지금 이란이 미국, 이스라엘하고 관계 개선에 나서리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지속되는 가자지구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매우 궁지에 몰렸습니다. 900만 인구 중 4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는데 분쟁이 장기화하면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요. 지난 분기 경제성장률이 –10%가 넘었습니다. 국토 종심이 짧은 것도 장기전에 매우 불리한 요소입니다. 타결 직전까지 갔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수교도 이번에 민심을 잃으면서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런데 네타냐후 총리가 지금 출구전략이 없습니다. 이제는 레바논 헤즈볼라와도 싸우겠다 하면서 전선만 늘어나고 있지요.

반면에 이란은 대치 국면을 버틸 수가 있습니다. 설령 최근처럼 화폐가치가 몇 달 만에 폭락하더라도, 적어도 끈질기게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자원, 농업, 산업 기반이 있는 나라입니다. 게다가 미국이 현재 이란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닙니다. 경제적으로는 이란 국민이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겠지만 이란이 지정학적 주도권을 놓지는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외교정책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임: "저도 재작년과 작년에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조금 비슷한 감상을 느꼈습니다. 서구의 경제 제재를 극복하면서 러시아가 자국 경제를 작동시키는 데 성공한 것 같더군요. 게다가 제재를 받는 국가가 계속 늘어나게 되면서 제재의 영향력은 더욱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신: "미국의 경제 제재에 동참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숫자 차이가 4~5배는 될 것입니다. 캐나다·한국·일본·서유럽 등 국가들이 전자고, 중국·인도·서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이 후자지요. 인구도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현재의 제재 정책은 브릭스를 비롯한 비서구 경제 협력체만 키워주는 꼴입니다. 정책 자체가 관료주의의 산물입니다. 제재 대상국의 현황을 모르고 책상에 앉아서 제재안에 서명만 하는 관료들의 작품인 셈이지요. 게다가 제재는 당하는 쪽도 힘들지만 제재하는 쪽에도 피해가 가는, 어떻게 보면 자해 정책으로 작동할 때도 많습니다. 제재 남발의 결과로 미국이 패권을 쥐는 악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임: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과 대규모 경제 협력을 하고 있고, 이란도 2017년에 부과된 경제 제재를 버티기 위해 중국에 많이 의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러시아-이란의 협력이 더 강화되고 대결 구도가 심화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유라시아 대륙 동맹에서 이란의 위상도 궁금합니다."

신: "임명묵씨도 여행하면서 많이 보았겠지만, 이란에 중국 사람들 굉장히 많이 있지요. 농담 삼아 테헤란 호텔에서 조식 먹으러 내려가면 절반은 중국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관계가 얼마나 끈끈할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이란인들의 중국, 중국인에 대한 시선이 전적으로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경제 관계를 비롯해 불만이 매우 많습니다. 물론 미국 제재가 너무 심한 압박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중국과 손을 잡았지요. 페르시아 상인들의 실용주의 전통 덕분입니다. 이란인들이 문화적으로는 역사적으로 오랜 관계를 맺어온 서구와 훨씬 친밀감을 느낍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가장 큰 경쟁자인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이란과 다시 포옹하는 그림을 취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임: "마지막으로 현재 한국 외교에 관한 의견을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신: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생존하기 위해 국익 최우선 외교를 해내야만 하는데, 안타깝게도 한국 외교팀의 주력 부대는 미국에만 대부분의 관심을 쏟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미국 이외 다른 지역들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적습니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정의로운 국가, 나를 도와주는 이타적인 국가는 없습니다. 안보, 무역, 경제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가하는 압박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과도 우리 국익에 걸맞게 무역을 해야 하는 것이고, 때로는 미국과 언성을 높여가며 싸울 때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계좌를 만드는 협상을 주도할 때, 그때도 미국의 대외정책이 공세적일 때였습니다. 부시 행정부 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페트로 달러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란과 원화 거래가 성사된 것입니다. 미국이 이를 허락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 한국 측 협상팀이 미국하고 논쟁해 그들을 설득한 겁니다.

예전에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외교를 주도한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에너지자원협력 대사 시절에 그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저한테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끝까지 우리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했을 때 그래도 설득 가능한 나라가 미국이다. 그 노력을 안 하면 안 된다. 하지만 한국의 대미 외교가 미국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서 아쉬운 것입니다.

언론도 다른 지역에 대해 너른 시야를 전달하는 역할을 너무 못 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라이시 대통령 사망 사고 때도 일본 NHK 뉴스는 현지 정보에 기반한 매우 정확한 보도를 했는데, 한국의 보도들은 오류가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이 역시 영어권 외신에 지역 정보를 과도하게 의존하는 편의주의가 이유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외교, 학계, 언론이 우리나라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다른 지역을 이해하고, 그곳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우리의 입장으로 미국을 설득해야만 합니다. 어느 때보다 그런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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