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에 아내 살인 용의자 지목된 남편…“실종 전에 보험금을 왜 높였죠”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7. 14.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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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28] 영화 ‘나를 찾아줘’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윤리의 측면을 제외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다시 말해서, 상대방을 속인다는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존재할까. 거짓말이 남이 아닌 거짓말을 한 당사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나를 찾아줘’(2014)는 이 물음에 답하는 영화다. 완벽한 커플인 양 연기했지만 사실은 쇼윈도 부부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거짓말의 파괴력을 탐구한다. 거짓말엔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만한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내 에이미가 실종된 뒤 남편 닉은 곤경에 처한다. 경찰이 닉을 에이미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하기 때문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5주년 결혼기념일에 아내가 사라졌다
이야기는 5주년 결혼기념일에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경찰은 남편 닉(벤 애플렉)을 에이미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한다.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수수께끼처럼 숨겨둔 메시지 속의 여러 증거가 닉이 범인임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집 바닥엔 누군가가 에이미의 피를 어설프게 닦아낸 흔적이 있었고, 닉은 에이미가 사라지기 얼마 전에 그녀 사망 보험금을 높이는 데 동의했다.
에이미는 본인 부모가 쓴 동화 ‘어메이징 에이미’의 주인공으로 전 국민이 알 정도의 인지도를 지녔다. 언론이 이 사건에 큰 관심을 쏟는 이유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건의 흐름은 닉을 당황스럽게 한다. 닉은 에이미가 실종된 직후 기자회견을 하며 아내를 진심으로 찾고 싶은 남편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과 언론이 찾아낸 증거는 이와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그는 바람을 피우고 있었으며,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아내를 찾고 있을 때도 자기 학생과 밀회를 가졌다.

사실 아내와는 감정적으로 오래전에 끝난 상태였다. 결혼기념일에도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얘기할 참이었다. 일련의 정황이 언론을 통해서 하나씩 드러나며 닉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내 일기장이 발견됐다 “남편은 나를 …”
이 와중에 아내의 일기장까지 발견되면서 닉은 궁지에 몰린다. 일기장에는 남편이 경제불황에 실직한 이후로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는 고발이 담겼다.

닉은 에이미 부모의 돈으로 게임기와 첨단 IT 기기를 사는 등 사치를 부렸다. 본인 엄마 유방암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에이미를 방치했다. 이 때문에 에이미는 객식구가 된 느낌을 받았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아내의 말은 무시했다. 외려 폭행까지 했다.

변호사는 필요 없다고 여겼던 닉은 변호사를 선임하게 된다. 온 방송이 자신을 악마로 그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아직은 죄가 입증된 바 없다”고 이야기한 변호사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에이미의 일기장은 반쯤 진실이고 반쯤 거짓이다. 에이미가 남편을 매장하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으로 작성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기장을 어설프게 숨겨둔 것을 포함해 실종 사건의 모든 부분은 에이미가 설계했다. 자작극인 것이다. 그는 자해해서 피를 흘리고, 자기 카드로 남편이 사치를 부린 정황을 조작함으로써 남편을 아내 살해범처럼 몰아갈 요량이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파탄나는 데는 누구의 책임이 더 컸을까? 영화의 묘미는 에이미 일기에 적힌 내용 중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를 관객조차도 헷갈리게 한다는 데 있다.

일기장에 적힌 에이미의 호소가 너무 절절한 나머지 영화 속 등장인물뿐 아니라 관객도 이를 믿게 되는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의 진술을 종합해서 보면 진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는 있다. 닉은 실직한 이후로 에이미에게 소홀해진 것 같긴 하지만, 아내를 폭행할 정도로 막 나가는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아이를 갖길 에이미만 일방적으로 원했다는 것도 진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하다. 에이미가 자기 취향에 맞는 남자로 만들기 위해 남편을 통제하려고 했다는 닉의 호소도 일부분 맞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에이미 전 남자친구들의 증언을 통해 신빙성을 얻는다.

에이미로 분한 로자먼드 파이크는 태연한 표정으로 거짓말하며 관객까지 속이는 데 성공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 단락에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됨) 남편은 방송에 나가 자신의 외도를 고백했다
변호사는 아내의 자작극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닉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닉은 방송에 나가서 자신이 아내를 감정적으로 방치했으며, 외도까지 했다는 실상을 고백한다. 자기에게 다시 돌아오면 이제 멋진 남편이 되겠노라고 약속한다. 아내가 고발했던 자기 모습을 상당 부분 인정함으로써 역으로 아내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으려는 전략이다.
남편을 궁지에 빠뜨릴 일기를 작성하는 에이미의 모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문제는 에이미가 남편보다 훨씬 고단수였다는 것이다. 에이미는 방송 인터뷰를 보고 닉에게 돌아가 재결합하자고 한다. 많은 방송 카메라가 닉의 집 앞에 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재회는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닉은 본인이 에이미를 사랑했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했던 통에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닌 ‘울며 청산가리 먹기’ 격으로 결합하게 된다.
이 영화는 결혼생활의 본질을 코믹하게 그려낸 인상도 있다. 결혼생활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서로의 작은 일탈을 눈감는다는 차원에서 부부는 어느 정도 ‘공범’이라는 것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거짓을 삶의 진실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거짓말이 본인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닉은 방송에 나가서 다른 모든 부분을 진실하게 이야기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거짓으로 꾸미는 실수를 했다. 만인이 보는 방송에 나가 “아내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탓에 자신에게 돌아온 아내를 거부할 수가 없다. 불행이 자기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 거짓은 이미 자기 삶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삶은 수많은 진실이 결합한 퍼즐처럼 구성돼 있다. 사소한 거짓말도 본인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하나의 퍼즐 조각을 진실과 다른 쪽으로 살짝 돌리는 순간, 주변에 있는 조각의 위치도 조금씩 조정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 삶의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중 너무 많은 부분을 재배치해야 하는 거짓말이라면, 한 번쯤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다.

‘나를 찾아줘’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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