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불판 나르겠단 알바생 없다”…돈도 없는 사장님 속타는 사연은 [방영덕의 디테일]
고기를 굽는 불판 주변이 넓지 않아 이미 반찬에 물통, 음료수잔 등으로 번잡한데 이 기계까지 들여놓으니 테이블이 더 비좁아졌습니다.
다소 불편하다는 손님들의 반응에 사장님이 말을 어렵게 꺼내시더라고요. “한여름에 불판일 하려는 알바생이 없어요. 인건비는 치솟고...이거(인건비) 줄여서라도 장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기업에서 인건비를 줄이겠다고 하면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몇 년전부터 공공연하게 인건비를 줄이겠다고 말을 해도 큰 질타를 받지 않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특히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되면서 한계상황에 내몰린 영세자영업자들 사이 좌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경영계 역시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개막’ 속 고용감소란 후폭풍을 우려합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사실상의 실질임금 삭감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노사 양측 다 만족스럽지 않은 모습입니다. 더욱이 노사가 흥정하듯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을 놓고도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을 논의하고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문가인 공익위원은 정부가 임명합니다.
이때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고, 경영계는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면서 매년 대립이 반복되는 것이죠.
물론 이같은 갈등을 막기 위해 생계비전문위원회와 임금수준 전문위원회를 통해 생계비의 수준에 관한 자료부터 근로자의 임금실태와 노동생산성 등을 조사 분석하고 심사합니다.
그러나 노사는 처음부터 협상을 통해 격차를 좁힐 수 없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나는 요구안을 각각 내놓고 협상 테이블에 앉습니다. 협상이 잘 이뤄질 리 없습니다.
법정 심의 기한을 넘기면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냅니다. 그러다가 고시 시한이 임박해도 노사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위원들의 안을 놓고 표결을 하게 되는 것이죠. 매년 이같은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는 겁니다.
일례로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 적용 여부를 표결하는 과정에서 일부 근로자위원들이 위원장의 의사봉을 뺏으려 하고, 투표용지마저 찢어버렸습니다. 노동계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험난한 의사결정 끝에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적용 여부는 최종 부결됐습니다만 노사 간 갈등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갑자기 협상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경영계와 노동계.
지난 12일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처사에서 제11차 전원회의를 열고 투표를 거쳐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습니다.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지 37년만에 처음으로 1만원을 돌파한 겁니다.
노사 양측의 의견차는 막판까지 컸습니다. 12시간 가량 마라톤 심의가 이뤄졌는데요.
공익위원들이 노사 양측의 의견차를 줄이기 위한 심의촉진구간을 1만~1만290원으로 제안하자 민노총 추천 근로자위 4명은 “심의촉진구간 금액이 지나치게 낮다”며 투표 직전 퇴장하기도 했습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각각 제시한 최종안은 시간당 1만120원과 1만30원이었고, 이를 두고 투표에 부친 결과 경영계 안이 14표, 노동계 안이 9표를 받아 1만30원으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한국노총은 지난 12일 입장문을 통해 “언론 등에서 1만원 돌파가 엄청난 것인 양 의미를 부여하지만 1.7%라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이며, 사실상의 실질임금 삭감”이라고 밝혔습니다.
1.7% 인상률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2.6%에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민주노총 역시 강도높게 비판했는데요. 민주노총 측은 “밥값은 한 번에 2000원씩 오르는데 최저임금은 딱 170원 인상됐다”며 “고물가 시대를 견디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서 1년을 또 살아야 한다”고 규탄했습니다.
이어 “최저임금이 물가인상폭보다 적게 오르면서 또 실질임금이 하락했다”며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이미 잃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류기정 한국경제인총협회 총괄전무는 “한계상황에 직면한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함을 고려해 동결해야 했으나 반영하지 못했다”며 “특히 일부 업종만이라도 구분적용하자는 호소가 있었지만 내년에도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한 것에 다시 한번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는데요.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에서도 “경영 애로가 극심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심리적 지지선인 1만원을 넘겼다는 사실은 업계에 큰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며 “2026년도 최저임금 논의 시에는 음식점 등 영세 소상공인이 많고 노동생산성이 낮은 업종이 많은 것을 고려해 반드시 최저임금 동결 또는 인하, 차등 적용 결정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습니다.
직원을 구하기 힘들어 이미 시급 1만1000원, 1만2000원 등을 주고 있는 업주들 사이에선 더 이상 올릴 여력이 없다며 기존 임금을 동결할 생각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인건비를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키오스크 도입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무인매장만이 살길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마치 기업에서 임금 단체 협상을 하듯 기싸움을 벌이다 막판에 가서야 몇 퍼센트 인상하기로 합의하는 방식이 우리 사회의 불확실성을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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