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실패해도 수수료 받아라? 영업하지 말란 소리” 금융당국 지침에 한숨 쉬는 증권사
발행사 눈치 보는 증권사 “영업 관행으로 중간 수취 어려워”
기업공개(IPO) 주관을 맡은 증권사가 상장을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단계별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간 주관사는 상장을 완료해야만 발행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파두의 뻥튀기 상장 논란을 계기로 증권사들이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지 않도록 성공 보수 대신 단계별 보수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애초 성과 보수는 증권사 간 경쟁이 치열해 생긴 관행인 데다 IPO를 계기로 돈독한 관계를 맺으려는 증권사 입장을 생각하면 현실성이 낮은 조치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증권 인수 업무 등에 관한 내부 규정을 고치기 위해 고심 중이다. 바뀐 인수 업무 규정에 따라 내부 지침을 추가하고,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해야 한다.
인수 업무 규정은 지난 5월 발표된 ‘IPO 주관 업무 개선 방안’의 연장선으로 ▲주관사의 독립성 제고 ▲기업실사의 책임성 강화 ▲공모가 산정의 합리성 제고 ▲내부통제 강화 등을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가장 중요한 건 IPO를 진행하는 모든 단계에서 내부통제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상장 후 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주관사에 제대로 책임을 묻기 위해 금융당국이 채찍을 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으로 내부통제 기준에는 주관계약부터 발행사에 대한 심의·검토 내용, 수요예측 기준 등 단계마다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걸 남겨야 한다.
대신 내놓은 당근이 주관 업무 수수료 개선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이 시원치 않다. 금융당국은 주관 수수료 구조가 왜곡돼 증권사들이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한다고 보고 있다. 중간에 주관계약이 해지되더라도 그간 수행한 업무에 대해선 수수료를 받도록 한다면, 문제가 줄어들 것이란 판단에서다. 현재는 상장 전에 계약이 해지되면 주관사는 돈을 조금도 받지 못한다. 주관사 입장에선 어떤 경로든 기업이 상장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수수료 구조 개선 의도에는 동의하면서도 그간 관행이 이어진 이유가 있다고 토로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관계약을 맺고 실사하러 지방, 해외도 다녀오고, 1년이 넘게 걸릴 때도 있는데 계약이 해지되거나 상장을 못하면 손해였다”면서도 “주관계약을 맺으려는 증권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점점 수수료가 낮아지고 돈도 나중에 받는, 발행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바뀌게 됐다”고 설명했다.
계약마다 다르지만, 보통 공모 금액 기준으로 코스피 상장사는 1%, 코스닥 상장사는 3~5%의 수수료를 주관사단에 지급한다. 공모 규모가 클수록 수수료율이 낮게 책정된다. 증권사로선 IPO 수수료보다 중요한 게 다음 영업이라고 한다. IPO 수수료로는 크게 남지 않더라도 기업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뒤 다음 거래에 참여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IPO 수수료는 이리저리 떼고 나면 딱 손해 안 보는 수준일 때가 많다”면서 “상장 전 투자로 이익을 내거나 회사채, 유상증자, 메자닌 등 다른 자금 조달 때 일감을 받는 차원에서 IPO를 진행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IPO 규정 개정안 마련을 두고 증권사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다. 다른 관계자는 “만약 금감원이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준다면, 다들 지키지 않겠느냐”면서도 “그게 아니라면 다른 증권사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따라 하는 게 나을 듯하다”고 귀띔했다.
다만 규약을 만들더라도 정착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주관사 귀책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자발적으로 판단해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 빠져나갈 틈이 있기 때문이다. 발행사 잘못으로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다음 영업을 고려해 주관사 귀책으로 처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금융투자협회 측은 “IPO 무산 시 주관사의 판단에 따라 관련 대가를 받을 수 있단 근거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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