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공자의 고향 곡부… 동양적 세계관의 원형 `주역`을 탄생시키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의 변화 사상
올바름을 지키면 길(吉)하다"
서해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마주보고 있는 산동성(山東省·산둥성)은 황하 하류 중국 동부 해안의 중간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 하북성(河北省·허베이성), 서쪽 하남성(河南省·허난성), 남쪽 강소성(江蘇省·장쑤성)및 안휘성(安徽省·안후이성)과 접해 있다. 광동성(廣東省·광둥성)의 뒤를 이어 중국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다. 산동이란 이름은 남북으로 뻗은 태항((太行·타이항) 산맥의 동쪽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성도(省都)는 제남(濟南·지난)이다. 고대 순임금이 왕위에 오르기전 농사를 지었던 산동은 춘추전국 시대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명 재상 관중이 활약했던 제나라가 있던 곳이다.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취푸),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한 강태공의 묘와 사당이 있는 임치(臨淄·린쯔)가 있으며, 병법가인 손무와 손빈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동은 정직과 애국, 충성의 화신으로 불린다. 5악 중 하나인 동악(東岳)으로, 천자가 하늘에 제사(封禪·봉선)를 지낸 태산(泰山·타이산)도 이곳에 있다. 공자는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登泰山而小天下·등태산이소천하)라고 했다(맹자 진심상, 孟子 盡心上). 이백, 두보를 비롯한 역대 문인들의 소재가 됐던 태산의 최고봉은 해발 1545m의 천주봉으로, 높이는 우리의 태백산이나 가리왕산과 비슷하다.
◇ '샘과 버들의 도시' 제남, 유학의 뿌리 곡부
중국인들은 사독(四瀆)이라고 해서 신성시 하는 4개의 강이 있는데 강(江, 장강), 하(河, 황하), 회(淮, 회강), 제(濟, 제수) 등이 그것이다. 산동의 성도 제남은 제수(濟水·지수이강) 이남이라는데서 명칭이 연유했다. 황하와 태산 사이에 위치하며 고대 용산 문화, 제노(齊魯) 문화의 요람이기도 하다. 제남은 '샘의 도시'(泉省·천성)로 불린다. 맑은 샘물이 쏟아오르는 표돌천 등 예로부터 72개의 샘이 있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샘물이 솟고, 대문마다 수양버들이 있는'(家家泉水 戶戶垂楊·가가천수 호호수양) 버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산동은 중국 유학(儒學)의 뿌리다. 유학은 한나라때 무제가 "백가를 배척하고 오직 유학만을 존중한다"(罷黜百家 獨尊儒術·파출백가 독존유술)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인 이후 중국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 돼왔다. 이 유학의 시조가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다. 그가 태어난 곡부는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린다.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가 집무를 보고 가족들이 거처하던 공부(孔府), 묘가 있는 공림(孔林)이 있다. 세 곳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大成殿)은 2500여년전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역대 황제들은 대성전에 찾아와 공자를 예배하고 만세의 스승으로 모셨다.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비림비공'(批林批孔)으로 상당수 문화재와 유적이 홍위병에게 파괴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개혁개방 노선 이후 공자도 재평가돼 파괴됐던 유적이 복원됐다. '비림비공'은 마오쩌둥이 권력 장악을 위해 2인자 임표(린뱌오)와 공자를 비판한 것이다.
◇ 동양적 세계관의 뿌리 '주역'
공자의 사상과 철학은 주역(周易·역경)과 시경(詩經), 춘추(春秋), 논어(論語)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가운데 주역은 '동양적 사유의 원형'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역의 사유 방식은 독립된 개체로서의 존재를 따지는 서양의 실체론과 달리 관계속에서 '나'와 '세계'를 파악한다. 개체는 정지 상태가 아니라 끝없는 생성과 변화의 역동적인 과정속에 존재한다. 서양이 '직선'(line)이라면 동양은 '원'(circle)이다. 공자는 주 문왕이 지었다는 주역을 알기 쉽게 풀이한 '십익'(十翼)이란 저서를 남겼다. 단전(彖傳) 상하,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 서괘전(序卦傳), 설괘전(說卦傳), 잡괘전(雜卦傳) 등이다..
주역은 점서(占書)인 동시에 사상·철학서다. 점서로 해석하는 것을 상수역(象數易)이라고 하고, 철학으로 해석하는 것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상수역의 대표 학자로는 송대의 소강절, 의리역은 위진 시대의 왕필을 꼽을 수 있다. 동양의 유학자들은 주역을 의리학, 즉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이 처한 시대적·공간적 상황에서 최선의 삶의 자세를 찾아내고 이를 실천하려 노력했다.
'천즉리'(天卽理·하늘이 만물을 생성 주관한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한번 음이고 한번 양인 것을 도라고 한다), '종즉유시 천행'(終卽有始 天行·끝이 있으면 시작 또한 있는 것이 하늘의 운행법칙이다), 주역의 구절들이다. 현대 중국의 사상가로 꼽히는 이중톈은 주역이 현대인에게 가르치는 핵심 인생철학으로 "순조로운 때(순경·順境)는 위기를 잊지 않는 마음(거안사위·居安思危), 어려울 때(역경·逆境)는 바른 마음(신심·정, 信心·貞)을 잃지 않는 것"을 꼽는다. 주역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 중 하나가 '정·길'(貞·吉, 바르면 이롭다)이다. 올바라야 이로움이 있다는 뜻이다. 올바름은 처한 때(시·時)와 자신이 선 위치(위·位)에 따라 마땅히 할 바를 행하는 것이다.
◇ 주역의 원리와 세계관…하늘의 도를 살펴 사람의 도리를 세우다
주역이 세상에 나온 것은 인류의 현자(賢子)들이 태어난 이른 바 '축의 시대'보다 대략 500년 앞선다. 학자들은 기원전 1046년 전후로 본다. 주(周)는 주나라 시대라는 뜻이며, 역(易)은 △지극히 쉽고 평이하다(간이·簡易) △변화(변역·變易) △불변(불역·不易) 등 3가지 뜻을 갖는다. 주역은 음과 양이라는 간단한 부호와 체계로 부단히 변화하는 현상(변역)의 배후에 있는 영원불변의 본질(불역)을 인식하고 해석, 다양한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쉽고 평이하게(간이) 알려준다.
태초에 태극(太極)이 있었으며, 태극에서 음과 양 양의(兩儀)가 탄생한다. 음과 양의 효는 세계의 변화를 모방한 것으로, 두 효가 겹침으로써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이라는 사상(四象)을 만들어낸다. 사상은 다시 건(乾·하늘) 태(兌·연못) 이(離·불) 진(震·천둥) 손(巽·나무·바람) 감(坎·물) 간(艮·산) 곤(坤·땅)이라는, 각 세 효로 이뤄진 팔괘(八卦)로 분화한다. 태극 →양의(음양)→사상→팔괘(역전 계사 상) 순이다. 이 팔괘가 상하 여섯효로 중첩돼 64괘가 탄생한다. 64괘는 건괘가 아래위로 겹친 중천건(重天乾) 괘로 시작, 불이 위에 있고 물이 밑에 있는 화수미제(火水未濟) 괘로 끝난다.
64괘는 총 384효로 이뤄져, 인생 행로에서 부딪힐 수 있는 384가지 상황을 의미한다. 각 괘의 효마다 효를 풀이하는 효사가 달려 있다. 여기에 각 효가 모두 양으로만 이뤄진 용구(用九)와, 음으로만 이뤄진 용육(用)六) 두 개를 더하면 총 386개 효사가 된다. 왕필은 64괘 각각의 괘를 시(時·각각의 인간이 처한 상황)라고 풀이한다. 공자는 십익을 통해 이 386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삶의 태도인지를 알려준다. 각 효가 놓여진 위치, 위아래 효와의 관계, 음양 여부 등으로 효와 괘를 풀이한다.
예를 들어 다섯번째 괘인 수(需)는 물을 뜻하는 감괘가 위에 있고, 하늘을 뜻하는 건괘가 아래에 있다. 그래서 수천수(水天需)라고 읽는다. 이 괘는 인내하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괘다. 인생의 초반쯤에 해당한다. 33번째 괘인 둔(遯)괘는 건괘가 위에 있고 산을 의미하는 간괘가 아래에 있다. 천산둔(天山遯)이라고 읽는 데 곤궁한 상황에서 잠시 물러나 있을 때의 괘다.
주역 64괘 중 각 6개의 효가 모두 좋은 괘는 없다. 같은 괘에서도 좋은 효가 있고 나쁜 효도 있다. 유일하게 산이 땅 아래 있는 지산겸(地山謙) 괘만이 6효 모두 길효다. 그만큼 인생에서 겸손이 중요함을 가르친다.
◇ 주역이 가르치는 인생의 지혜
주역이 말하는 변화(Change)는 대략 세가지의 뜻을 지닌다. 첫째는 사물이 궁극에 이르면 변화한다(궁극이변·窮極而變)는 사상이다. 이는 2000년 후 역사에서 변증법을 역설한 독일 철학자 헤겔과, 공산주의 철학자 마르크스가 말한 '양(量)이 쌓이면 질(質)이 변화한다'는 양에서 질로의 전환 사고와 닮아 있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라는 계사전의 유명한 구절이 이런 세계관을 반영한다. 극에 이르면 바뀌게 되고, 바뀌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여시구진'(與時俱進)이다. '시대와 함께 나아간다'는 뜻으로, 시대의 맥락을 파악하고 시대의 변화(조류)에 순응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흡도호처'(恰到好處)로, 말과 행동이 지극히 적당하고 잘 들어맞는다는 의미다.
흔히들 중국 철학을 '처세(處世)의 철학'이라고 한다. 세상에 처하는 올바른 방법을 가르친다는 뜻이다. 하늘의 도(천도·天道)를 사람의 일(인사·人事)과 결부시켜 천도로써 올바른 인사를 설명한다. 주역은 치우침이 없는 중정(中正)을 중히 여긴다. 자연의 법칙을 천도라 하고, 인간이 이에 적응함을 인도라 하며, 중정한 것을 길(도·道)이라고 해 가장 선하다고 본다.
주역의 세계관은 정지돼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다. 달이 끊임없이 차고 기울며, 낮과 밤이 교차되듯 차면 비고(영허·盈虛), 줄어들면 불어나는(소식·消息) 이치다. 주역 전문가인 심의용 교수는 '호리지차 천리지류'(毫釐之差 千里之繆)라고 말한다. "털끝만한 (마음의) 차이가 천리만큼 (운명의) 다름을 낳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때를 알고(知時), 미묘한 기미를 파악하며(知機), 자신을 변화시켜 통하게 하며(變通), 최선의 이로움을 찾는(盡利) 것이 주역이 말하는 인생의 지혜라고 전한다. 주역의 때(時)는 시간(時), 장소(處), 지위(位)라는 세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국립대만대 교수인 푸페이룽은 역경의 가르침으로 네가지를 꼽는다. △성(誠)으로 자신을 지키며 △겸(謙)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기(幾)로 만물의 변화를 관찰하며 △덕(德)으로 하늘의 도에 합한다는 것이다.
괘사로부터 뜻을 얻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송나라 학자인 정이천).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주역 공부를 통해 이익이나 신비로운 것을 다루지 않았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최고로 삼았다. 건괘(乾卦) 상전에는 '천행건(天行健) 하니 군자이자강불식(君子以自彊不息)'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하늘의 움직임이 강건하니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쉬지않고 힘쓴다'는 뜻이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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