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맨부터 면접관리까지…KBS 차량기사 "지난 10년 인정받고 싶다"
[미디어 비정규직] 14년차 차량기사, 오디오맨 대행·촬영·파견직 면접 관련 업무도
지난해 근로자지위 소송 "KBS 기자 지시로 온갖 업무, 돌아온 건 찬밥 취급"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KBS의 비정규직 취재차량 기사가 'KBS 소속 노동자'로 인정 받기 위한 법적 다툼에 나섰다. 형식은 KBS 자회사와 계약한 도급업체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KBS 직원의 지시를 받고 오디오맨·촬영기자 업무도 일부 수행해왔다고 주장한다.
KBS 대전방송총국과 산하 천안아산방송센터, 홍성방송센터에서 일한 14년차 방송차량 기사 강헌영(48세·가명)씨는 지난해 3월6일 KBS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다.
강씨는 2011년부터 10년여 간 KBS대전총국의 천안센터와 홍성센터에서 차량운전기사로 일했다. 그는 KBS의 완전자회사인 KBS비즈니스와 차량업무 위탁계약을 맺은 도급업체 '방송차량서비스' 소속이다. 강씨는 근무 이래 8년 넘게 근로계약서 없이 일하다, 2019년 방송차량서비스와 '단속적 근로 계약서'로 첫 계약서를 썼다.
강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나는 운전직으로 들어왔다. 그 외에는 (KBS 일을) 하면 안 되지만 온갖 지시를 받고 일했다”며 “'하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구나'라고 느꼈고 그렇게 1~2년도 아닌 10년이 쌓였다”고 말했다.
KBS에 따르면 KBS는 KBS비즈니스에 차량운행을 위탁하고, 강씨는 KBS비즈니스와 방송차량서비스 사이 체결된 위탁계약에 따라 독립적으로 차량운전 업무를 수행해왔을뿐이다. KBS 측의 지휘나 감독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강씨는 방송차량서비스가 제공한 배차 일정에 따른 운전업무만 수행하며, 업무 관련 소통도 KBS와 방송차량서비스 관리자와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업무 기록을 보면 이와 다른 사정이 발견된다. 강씨는 일상적으로 KBS 기자의 지시를 받아 일했다고 주장한다. 강씨는 취재기자와 촬영기자, 오디오맨과 차량기사(강씨)가 1명씩 일하는 천안센터 사무실에 출근했다. 아침에 대전총국 측이 보낸 촬영 일정표를 팩스로 받고, 취재기자와 촬영기자, 촬영보조인 오디오맨을 모두 태워 취재 현장을 운전해 오갔다.
촬영기자나 취재기자는 새로운 취재 일정이 생기면 휴일과 야간을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출동'을 지시했다고 했다. 업무는 근무일지에 기록됐다. 과거 KBS대전총국 방송차량서비스 팀장이었던 B씨도 “당시 강씨에게 업무 관련 배차나 지시를 한 적이 없다. (강씨가) 촬영기자가 지시한 대로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정작 업무에서 차량운전은 일부였다며 취재 현장에서의 오디오맨 업무 및 오디오맨 면접 관리와 방송차량 주유 관련 세금계산 보고까지 맡았다고 했다. 그는 “오디오맨이 일이 고되어 자주 그만뒀고 공석일 때가 많았다. 촬영기자 지시에 따라 삼각대 짊어지고 나가서 조명도 치고, 인터뷰이들을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다 받았다”고 했다. 실제 2011~2020년 KBS 보도 화면에는 강씨가 인터뷰이 앞에서 무선마이크를 들거나 녹취를 하는 장면이 확인된다.
KBS 취재진처럼 보도 화면에 동원되기도 했다. 강씨가 농수로 밑에 손을 집어넣거나, 집중호우로 빗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속에 들어간 장면 등이다. 기자와 함께 마치 KBS 제작진처럼 취재를 위해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있었다.
강씨는 촬영기자 지시에 따라 촬영 업무를 맡기도 했다고 말한다. 촬영기자가 ENG 카메라로 취재 현장을 찍는 동안, 그는 촬영기자의 휴대폰으로 같은 장면을 촬영한 뒤 대전총국 측에 전송했다는 설명이다.
KBS 직원이 해야 할 파견직 오디오맨 채용과 면접 관리도 그의 몫이었다. 오디오맨 파견업체인 I사가 KBS 측 이메일로 오디오맨 지원자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보내오면 KBS 측이 일정을 잡고 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강씨는 촬영기자 지시에 따라 이 일도 수행했다고 했다. I사가 그의 개인 이메일로 지원자 이력서를 보내면 강씨가 이를 정리해 촬영기자에게 보고하는 일이었다. 촬영기자가 면접 날짜를 정하고 후보를 추리면 강씨는 파견업체에 이 내용을 다시 알렸다는 게 강씨 설명이다. 그의 개인 이메일 받은편지함엔 오디오맨 파견업체 측이 보낸 면접 서류 이메일이 남아있다.
강씨를 지켜본 KBS 비정규직 스태프와 정규직 직원은 그가 운전 외 KBS 관련 업무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천안센터 오디오맨으로 강씨와 일했던 A씨는 “(입사한 뒤) 강씨가 편집 관련 업무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강씨는 촬영도 했는데 핸드폰으로 현장을 찍었다. (촬영본을) 대전(총국)으로 보냈다고 말하더라”라고 했다.
천안센터의 한 정규직 직원도 “강씨가 편집기 앞에서 일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는 강씨가 오디오맨 면접 관리 업무를 해온 사실도 알고 있다며 “(오디오맨 파견업체인) I사 담당자가 오면 KBS 기자와 소통을 해야 하는데, 강씨와 나가서 얘기를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KBS 측의 몫인 KBS방송차량 주유 관련 세금 행정업무도 맡았다고 했다. 특정 주유소에서 외상카드로 주유한 뒤, 한달치 사용내역서를 작성하고 세금계산서를 떼어 KBS 대전총국 측에 보내는 일을 맡았다는 것이다. 외상 제도가 없어진 뒤에는 KBS법인카드를 지급 받아 사용했다고 했다.
강씨를 대리하는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중심)는 “강씨는 KBS 법인카드를 받아 쓰고 KBS방송차량을 타고 일했다. 도급이라면 해당 노동자가 본인이 속한 회사(방송차량서비스)와 관계있는 작업만을 해야 하고, 도급업체가 업무 처리 장비와 시설 대부분을 독립적으로 갖추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해당 노동자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시설이나 장비가 원청의 것이라면 원청이 고용 책임을 회피하는 '위장도급' 소지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2012년 이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홍성센터에 취재 인력이 부족해질 땐 강씨도 천안센터에서 홍성센터로 이동했다. 그는 당시 취재기자 숙소에서 생활했다. 6개월가량 뒤 KBS 대전총국 측이 천안센터 보도기능을 되살리면서 천안센터로 돌아갔다. KBS 측이 천안센터 보도 기능을 없앤 2021년에는 다시 대전총국으로 일터를 옮겼다.
현재 그는 가정이 있는 천안에서 3년째 140km 거리를 출퇴근한다. 기름값과 톨게이트 비용을 모두 빼면 수령액은 145만 원. 기존과는 달리 도급업체 팀장을 통해 배차를 받아 차량 운전 업무를 하고 있다.
강씨가 10여년의 세월을 버티다 소송을 결심한 이유를 두고 차별에 의한 “설움”이라고 했다. “천안센터에서 혼자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온갖 일을 다 해왔다. 그런데 한큐에 천안센터를 없앴다. 정직원인 촬영기자엔 정년을 앞두고 천안센터에서 출퇴근하도록 배려하지만, 나에겐 한 마디 논의조차 한 마디 없는 상황을 보고 '감탄고토'란 말이 떠올랐다.” 그는 “방송사에서 비정규직은 찬밥”이라며 “방송사들이 항상 비정규직의 설움, 비정규직의 죽음을 말하지만, 이곳보다 차별이 심한 곳이 있을까”라고 덧붙였다.
강씨 측의 소송 취지는 고용의 의사 표시를 하고, 그간 손해배상을 하라는 요구다. 다만 그는 “제가 바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라고 했다. “10년 간 일해온 부분에 대해서, 억울한 부분에 대해서 회사로부터 고생했다고 인정 받고 싶다. 거짓말로 얘기하지 말고, '네 덕에 뉴스를 잘 막았다'고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KBS 대전총국 총무팀 측은 강씨 주장 관련해 “소송과 관련해 KBS 본사로 일임한 상황으로 따로 공식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KBS 본사 측은 “현재 소송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답변드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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