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불꽃놀이 보며 바베큐에 한잔”…초대 대통령도 즐겼다는 ‘이것’ 뭐길래 [전형민의 와인프릭]
7월4일은 미국의 독립을 기리는 독립기념일 입니다. 우리로 치면 광복절,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국경일로 손꼽히는 날이죠. 미국인들은 이날 이웃, 가족과 바베큐를 먹으면서 불꽃놀이를 즐깁니다.
그리고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한 종류의 와인을 마셨습니다. 바로 마데이라(Madeira) 와인입니다.
마데이라,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위치한 포르투갈령 고도(孤島) 입니다. 거제도의 2배 정도 크기에 인구는 26만명에 불과한 섬이죠. 우리에겐 노쇼로 ‘날강두’란 별명을 갖게 된 세계적인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고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다 대서양의 외딴 섬 마데이라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샴페인 같은 글로벌 축하주를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최대 명절인 독립기념일 축하주가 됐을까요. 오늘 와인프릭은 마데이라 와인과 미국 독립기념일에 얽힌 역사를 살펴봅니다.
어떻게 이런 뜻을 가지게 됐을까요. 핸콕이 1776년 7월4일 미주 대륙 의회가 독립선언서를 비준하던 당시 가장 먼저 서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독립선언서 본문 하단 가장 가운데에는 보란듯이 핸콕의 서명이 있습니다.
가장 크고 굵은 글씨이기도 한데요. 이는 사실 그가 비준 당일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대륙 회의 의원들은 2일이 돼서야 서명했다고 하죠.
당시 미국과 영국의 관계에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만큼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다는 것은 독립이 실패할 경우, 사실상 교수형으로 가는 직행 티켓을 스스로 끊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핸콕은 독립을 열망하는 상남자 그 자체였던 셈인데요. 알고보면 이 핸콕이라는 사람, 엄청난 부를 축적한 상인이자 한때는 친영국파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다 그는 이토록 변절(?)하게 된 것일까요.
그의 주 밀수품 중에는 오늘의 주인공 마데이라 와인도 있었습니다. 유럽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아프리카와 대서양 사이 점처럼 박힌 작은 섬에서 나오는 와인이 주 밀수품이 된 까닭은,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 때문입니다.
1700년 에스파냐 왕인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죽으면서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필리프 앙주공(公)이 펠리페 5세로 즉위했는데요.
이에 해상 무역, 특히 신대륙 무역 확보라는 전략에서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제휴에 반대하는 영국·네덜란드와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오스트리아 3국이 동맹을 맺고 프랑스와 에스파냐에 선전 포고하면서 전 유럽 대륙과 인도, 식민지 미국에까지 전선이 펼쳐진 전쟁입니다.
당시 영국은 포르투갈의 에스파냐 지지 입장 철회를 조건으로 마데이라 와인에 대한 특별관세(경쟁국인 프랑스의 3분의 1 수준)를 적용합니다. 이를 메수엔 조약 (Methuen 條約)이라고 하는데, FTA 협정의 시초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전쟁으로 혼란한 영국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미국에 마데이라 와인을 밀수하면 엄청난 부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영국이 마데이라 와인을 가득 싣고 보스턴항에 들어오던 핸콕의 범선 리버티호를 나포해버립니다. 관세를 내지 않기 위해 상당량의 마데이라 와인을 빼돌렸다고 의심하고, 관세 납부를 요구했지만 그가 이를 거부하면서 입니다.
물론 핸콕이 밀수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리버티호의 마데이라 와인 상당수가 밀수에 쓰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에 대한 그의 저항은 영국에 대한 반감이 끓어오르던 식민지 미국 주민들의 지지를 끌어냅니다.
현대에 와서 이 사건은 독립전쟁의 트리거가 된 보스턴 차(茶) 사건의 시초로 인식됩니다. 핸콕은 보스턴 차 사건까지 거치면서 어느 새 분리독립주의자들의 핵심 구심점이 되게 됩니다.
사실 마데이라 와인은 당시 영국 식민지인 미국에겐 합법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와인 중 하나였으니, 이들이 마데이라 와인으로 축배를 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후 마데이라 와인은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하나인 조지 워싱턴에(George Washington)에 의해 다시 한번 더 조명됩니다. 그가 1787년 워싱턴은 연방 헌법 비준을 축하하기 위해 만찬을 열었는데, 당시 마데이라 와인을 메인 코스의 음료로 제공하죠.
이후 1789년과 1792년 대통령에 취임할 때도 취임식 만찬주로 마데이라 와인이 쓰이면서, 마데이라는 미국의 독립을 상징하는 와인이 됩니다. 참고로 조지 워싱턴은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 만장일치로 선출된 대통령 입니다. 그것도 두 차례 모두요.
아무튼 마데이라 와인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계기로 미국 독립을 기념하는 와인이 됩니다. 꽤 오랜 기간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는 독립기념일에 마데이라 와인을 즐겼다고 합니다. 과거 선조들의 투쟁을 기리는 의미인 셈입니다.
마데이라가 특별한 이유는 다른 주정강화 와인처럼 브랜디를 첨가하는 것은 같지만, 45℃ 이상에서 고온 숙성을 거친다는 점 입니다. 생산된 와인을 운송하는 과정 중에 온도가 상승해 상했을 것으로 판단했던 와인이 오히려 독특한 향과 맛을 풍기자 이를 상품화한 사례입니다.
과거엔 꾸준한 온도를 위해 마데이라섬 건물 중 가장 햇빛을 많이 받는 다락방에 수개월 보관하면서 숙성했습니다(칸테이루 방식). 현대화된 방식으로는 큰 스테인레스 통에 와인을 넣고 겉에 구리관을 둘러 관에 온수를 3~6개월 정도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숙성합니다(에스투파젬 방식).
포트 와인이 발효 중간 단계에 주정을 넣어 발효를 중지시키면서 단맛이 강조되는 스타일이라면, 마데이라 와인은 주정 첨가 시기를 조절해 드라이한 맛을 내는 것부터 단맛을 내는 것까지 다양한 타입으로 양조가 가능하죠. 마데이라 제도의 적은 일조량 덕분에 완숙되지 않은 포도의 씁쓸한 산미도 꽤 남아있는 편입니다.
위스키와 비슷한 색깔과 깊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오묘한 맛이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예민하고 호기심과 탐구심이 많다면 한 모금만으로도 한참을 음미하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길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요즘 마데이라 와인의 인기는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도수가 높고 무겁고 짙은 뉘앙스를 갖다보니, 복잡하고 어려운 맛보다 직관적이고 산뜻한 맛을 찾는 요새 트렌드와는 영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최근에는 마데이라 와인을 즐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틴토 베라노처럼 마데이라 와인과 탄산수를 반반으로 섞는다던가, 칵테일의 기주(基酒)로 활용하는 등 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원한다면 3연임이 아닌 종신도 불가능하지 않은 인기가 있었지만 스스로 최고의 자리에서 초연히 물러났습니다. 덕분에 미국에 국한해서, 워싱턴보다 나은 지도자임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독재를 할 수 없는 토양까지 마련했죠.
역사에서 무수히 많은 영웅이 존재하지만, 스스로 독재자로 변하지 않고 권력을 내려놓은 영웅은 극히 드뭅니다.
일찍이 안중근 의사도 뤼순 감옥에서 집필한 ‘안응칠 역사’에서 “내가 만약 훗날에 일을 이룬다면 반드시 미국으로 달려가서 특별히 워싱턴을 추억하고 숭배하며 마음이 같았음을 기념하리라.” 라는 글을 남겨 워싱턴에게 존경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과실미와 여러 아름다운 향과 맛이 나는 질 좋은 와인들보다 질그릇처럼 투박하지만, 오래 곁에 두고 음미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깊고 복합적인 향과 맛. 그 속에서 독립해 갓 신생국이 된 조국의 백년대계 초석을 쌓아야하는 고뇌를 함께한 것은 아닐지.
어느 새 2024년 한 해의 절반이 지나면서 반환점을 돌아야할 시기가 왔습니다. 지나간 상반기를 돌아보고 앞으로 달려나갈 하반기를 준비하면서, 워싱턴이 사랑했던 마데이라 와인을 한잔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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