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다대면 ‘맛있는 과일’ 구별…‘이것’이 끌어올린 품질경쟁
미리 당도 확인 뒤 입찰 ‘일반화’
중도매인 필수품으로 급부상
변화 맞춰 품위 향상 노력 필요
10일 오전 1시 서울 가락시장의 과일 경매장. 전국에서 출하한 과일 상자가 가득 들어찼다. 과일 경매까지는 1시간이 남았지만 중도매인들은 과일 상자 사이를 바삐 오가면서 산지와 품질을 확인했다. 한 중도매인이 복숭아가 담긴 포장상자를 개봉한 뒤 손에 든 기계를 복숭아 과실 표면에 갖다 댔다. 기계 속 작은 화면이 ‘반짝’ 하고 빛나더니 화면에 숫자가 떴다. ‘14.7브릭스(Brix).’
최근 휴대용 비파괴 당도측정기가 가락시장 과일 중도매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도매유통 거래 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과일을 직접 잘라 맛을 보는 행태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정확한 당도 측정으로 속박이 등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출하 산지에선 당도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가락시장 내 과일 전문 중도매인인 조재훈씨는 지난해부터 휴대용 비파괴 당도측정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조씨는 과일 경매 시작 2시간 전 경매장을 돌며 일부 과일 상자 를 열어 해당 기기로 과일의 당도를 측정한다. 당도가 생각보다 낮게 나오면 이내 다른 상자로 넘어간다. 출하 물량이 많을 때는 당도 측정 작업에만 꼬박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조씨는 “예전에는 경매장에서 시식용으로 복숭아 몇개를 꺼내둔 뒤 칼로 잘라 직접 맛을 봤다”면서 “한상자를 전부 먹어볼 순 없으니 한조각만 맛보고 맛이 좋으면 값을 높게 불러 낙찰받곤 했는데, 같은 상자 안에서도 당도가 낮은 과실이 섞여 있을 때가 적지 않아 소매상 등에서 민원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휴대용 비파괴 당도측정기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런 소비자 불만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복숭아를 주로 취급하는데, 평균 12브릭스 이상 나오는 것만을 골라내 구매한다. 경매 전 미리 당도를 측정하니 단시간에 빠른 판단이 필요한 입찰 과정에서도 크게 유리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통인들에 따르면 휴대용 비파괴 당도측정기를 적용할 수 있는 품목은 의외로 많다. 기기를 구매할 때 적용할 과일 종류를 먼저 제시하면 맞춤형으로 받아볼 수 있다.
실제로 조씨의 기기로 당도를 측정할 수 있는 품목은 복숭아 말고도 사과, 배, 참외, 단감, ‘샤인머스캣’ 포도, 단감, 만감류(한라봉·레드향·천혜향), 애플망고 등 10가지에 이른다. 다만 가격은 한대당 300만원선으로 꽤 비싼 편이다.
휴대용 비파괴 당도측정기가 고가임에도 도매시장 필수품으로 부상한 데는 과일시장의 소비 트렌드 변화와 관계가 깊다. 과거엔 소비자가 과일 구매를 결정할 때 가격 등을 최우선으로 봤다면 최근엔 당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게 유통인들의 얘기다.
온라인을 통한 농산물 거래가 늘어난 것도 기기가 보급된 요인으로 꼽힌다. 4년 전부터 이 기기를 사용했다는 가락시장 중도매인 이정호씨는 “과일을 온라인으로 판매할 때 기기가 위력을 발휘했다”면서 “해당 과일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온라인 게시판에 빼곡하게 써서 올리는 대신 측정 결과 몇브릭스가 나왔다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줬더니 거래 상대자가 더 빠르게 반응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카카오톡 선물하기’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비대면 판매가 늘면서 휴대용 비파괴 당도측정기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고 밝혔다.
배성인 중앙청과 경매사는 “가락시장 내 중앙청과와 거래하는 과일 중도매인 가운데 4분의 1 정도가 휴대용 비파괴 당도측정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기기 보급은 농산물 품위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농민은 물론 산지 출하 주체들이 이러한 도매유통의 환경 변화에 주목해 당도 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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