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균 유작 <탈출>, 장르적 관습도 막을 수 없는 상실의 아픔

이동윤 영화평론가 2024. 7. 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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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윤의 무비언박싱]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이 글에는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재난 영화는 일반적으로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불가항력적인 재앙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펼쳐낸다. 사건이 불가항력적이다보니 그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들은 각자의 성격과 개성을 뽐내고 드러내기 보다 죽음 앞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적극적으로 생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 인물들의 욕망은 납작하게 표현되곤 한다. 내가 살거나, 타인을 살리거나. 전자의 경우는 타인을 희생재물 삼더라도 나 혼자 살아남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욕망이 주를 이룬다. 후자는 이와 정반대로 나보다 타인의 생명, 특히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감내하는 이타적 욕망이 주를 이룬다. 서로 극단적인 두 욕망이 대립하며 피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는 갈등을 그려내는 것이 바로 재난 영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7월 12일 개봉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2024, 이하 <탈출>)는 앞서 살펴본 재난 영화의 장르적 공식과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재난의 양상이 태풍, 지진,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혹은 고질라, 외계 침입자와 같은 미확인 생명체로 인해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재앙이 아니라 충분히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참사로 그려진다. 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한국의 재난이 대부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참사라는 점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탈출>의 갈등 구조는 기존의 재난 영화들보다 좀 더 입체적이다. 홀로 살아남으려는 자와 타인과 함께 살아남으려는 자 사이에 참사의 원인을 폭로하려는 자가 개입함으로서 인물들의 갈등이 보다 확대된다. 생존여부가 기존 재난 영화의 중심에 있었다면 <탈출>은 생존과 참사 원인을 폭로하는 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탈출>에는 갈등의 세 지점 속에서 유난히 자신의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주인공 정원(이선균)의 딸, 경민(김수안)이다. 그녀는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의 생명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나와 딸만 살면 전부라고 생각하는 정원과 매번 충돌하고 갈등을 빚는다. 사람을 살리려는 경민의 욕망은 분명 재난 영화 속에서 반복되어온 관습적인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탈출>에서의 그녀는 기존의 재난 영화 속 캐릭터들과 달리 조금은 과도하게 극단적 상황 속에서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시 여긴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험 속에 가차없이 내던지는 무모함은 그녀의 욕망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의심하도록 만든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의 안위를 더 우선시 여기는 것이 그리 자연스러울 수 없다. 아무리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택한 자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며 타인을 구하려는 것은 숭고한 존엄성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하지만 경민의 과도한 이타심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정원과 부딪치며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어쩌면 긴장도를 높이기 위해 정형화된 캐릭터라 폄하 해볼 수도 있겠으나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민을 돌이켜 보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CJ ENM

이를 위해서 우리는 주인공인 정원의 욕망을 좀 더 세심히 들여다 봐야 한다. 그는 절친한 동료이자 국가안보실장인 정현백(김태우)의 충실한 오른팔이다. 그는 해외에 피랍된 자국민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보다는 그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국가의 안보를 지키려는 자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존엄성, 또는 시민으로서 반드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오직 현백의 대통령 되기와 이로써 얻게 되는 자신의 이익 뿐이다. 그래서 그는 참사가 벌어진 상황 속에서도 오직 자신과 딸의 안위만 걱정하며 역으로 참사를 통해 현백의 지지율을 높일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랬던 그가 극의 후반에는 모두를 구하고 참사의 근본 원인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 중심에는 무고한 시민의 숭고한 희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치매에 걸린 순옥(예수정)과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병학(문성근)이 모두를 살리고 죽음을 선택한 순간 정원은 자각한다. 인재에 의한 대규모 참사가 벌어진 뒤에야 안전에 대한 반성과 대책이 마련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 정원 캐릭터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중요한 순간은 그 다음 펼쳐진다. 정원이 모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순간 그를 구하기 위해 딸, 경민이 달려온다. 아빠를 구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그녀의 과도한 이타심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해될 수 없는 장면이다. 김태곤 감독은 이 순간 그들 곁에 자신의 자녀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군견, 에코 나인을 위치시킨다. 에코 나인은 우리에서 탈출해 영리하게 머릿속 칩을 빼내고 양박사를 혼란에 빠트린 군견이었다.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최초 실험 대상이었으며 자신이 낳은 모든 강아지들이 실험 대상으로 고통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불운의 실험체이기도 하다. 위급한 순간 정원을 공격하려다 결국 자신의 자녀를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에코 나인의 모성은 그 곁에서 아빠를 구하려는 경민과 병치되며 경민의 과잉된 이타심을 상쇠시킨다. 그리고 에코 나인의 모성과 경민의 이타심은 관습적인 재난 속 욕망 그 이상으로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낸다.

에코 나인은 <탈출>에서 부정할 수 없는 빌런이다. 에코 나인이 우리에서 탈출한 과정이 영화에서 자세히 밝혀지진 않으나 모든 것은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녀의 계획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공격성을 보였던 대상은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을 고문하고 실험했던 자들 뿐이었다. (에코 나인을 향해 환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경민에게는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양박사의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모든 군견들을 통솔하여 상황을 주도하는 면밀성도 드러낸다. <탈출>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들은 결국 에코 나인이 이끈 복수극이 근본 원인이었던 셈이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게 똑같이 고통을 되갚아 주겠다는 분노의 감정이 에코 나인으로 하여금 모든 참사를 일으키도록 만든다. 이러한 에코 나인의 복수심과 경민의 과잉된 이타심이 하나의 장소에서 교차 편집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상반된 마음들이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무의식 속에서 연결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두 사람이 겪은 상실의 아픔이다.

에코 나인은 자신의 자녀들이 실험체로서 고통 받고 죽어야 하는 모든 순간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영화 속에서 이 순간은 아주 짧은 잠깐의 몽타주 시퀀스로 재현된다. 우리가 에코 나인의 상실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온전히 이해하기에 지극히 부족한 순간이다. 이는 재난 영화로서 에코 나인의 역할은 모든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빌런이었기에 그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된 결과다. 이러한 장르적 한계는 경민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위기에 처한 단 한 명의 생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경민의 과잉된 고집은 어릴 적 엄마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녀의 깊은 상실감과 연결되어 있다. 엄마를 잃은 아픔이 다시는 그 어떤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는 과잉된 이타심으로 발현된 것이다. 하지만 경민의 전사(前史)는 장르 영화의 관습 속에서 관객들에게 경민이 갈등을 일으키는 인과성을 설명하기 위한 단서로 손쉽게 휘발되어 버린다. 에코 나인의 상실감이 수용 가능한 빌런을 위해 장르 법칙 속에서 소모되어 버린 것처럼 경민의 이타심 또한 재난 속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극적 장치로 소모된 것이다.

ⓒCJ ENM

하지만 두 인물은 절대 그렇게 소모될 정도로 단순한 인물들이 아니다. 자녀를 구하려는 에코 나인과 아빠를 구하려는 경민의 과도한 무리수가 그 순간 만큼은 과잉된 감정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이고 연민의 감정으로 승화되어 다가온다. 장르에 의해 소모된 그들의 상실의 감정은 조건화 될 수 없는, 지극히 실존적인 감정이다. 장르적 관습 조차도 휘발시킬 수 없는 실재적 감정이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절대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장르성에 의해 복수극과 과잉된 이타심으로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또 다시 되풀이 되는 비극적 순간 만큼은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결의까지 소멸시킬 순 없다. 그들의 결연한 의지가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들을 긴장 시킨 것은 관객 또한 유사한 상실감을 끌어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수차례 국가적 참사를 겪어야 했다. 충분히 구하고 살릴 수 있음에도 멈춰버린 위기 대응 시스템으로 인해 안타깝게 희생 당해야 했던 너무 많은 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단 한 명이라도 살리고 싶다는 에코 나인과 경민의 욕망은 결국 우리의 숨겨진 욕망들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정원 역할을 맡아 최선을 다한 이선균 배우를 언급하고 싶다. <탈출>을 감상하는 동안 이선균 배우가 정원을 연기하며 스크린 곳곳을 뛰어다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조금은 초현실적인 순간처럼 다가왔다. 영화 속 정원과 현실 속 이선균 배우가 중첩되며 마치 서로 다르지 않은 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정원을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지며 뛰어든 경민처럼 내가, 또는 그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그런 존재였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랐을까? 멀리서만 지켜보며 좋아하던 팬으로서의 마음을 넘어 내가 애정하는 존재의 위기를 막아내려는 용기를 경민처럼 좀 더 내보았다면 어땠을까? <탈출>을 보고 어두운 극장을 나서며 이 질문들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우린 이선균 배우를 떠나 보냈지만 영화를 통해서 그의 찬란한 순간들을 되새겨 볼 수 있다. 그렇게 그 존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것, 같은 희생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 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아닐까 되새겨 본다.

ⓒCJ ENM

[이동윤 영화평론가(dongyunlee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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