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분유를 만든 ‘이 남자’…“죽어가는 아기를 구해야겠다”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4. 7. 1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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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61][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49] 앙리 네슬레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은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창업자의 스토리를 들려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고민에 빠진 화학자, 인류를 구원하다
1860년대 초 스위스의 작은 도시 브베(배우 찰리 채플린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죠). 이 곳에서 독일 태생의 한 화학자가 실험실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유아 사망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모유 수유가 불가능한 경우에 아기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화학지식을 활용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와 지식을 통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을 제공하는 대체 식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네슬레 초창기 광고 문구
연구는 실패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러 재료를 실험하고 조합했지만 연약한 아기들의 소화기관에 적합하지 않았죠. 그는 오트밀과 우유, 설탕을 조합해 결국 아기용 조제식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소화도 잘 되는 대체식. 바로 세계최초의 가루형 분유. ‘페린락테(Farine Lactee)’의 탄생입니다.
네슬레 분유
이를 개발한 사람은 앙리 네슬레. 국내에선 네스퀵, 네스프레소로 유명한 식품 기업 네슬레를 창업한 주인공입니다.

네슬레는 18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요한 네슬레와 안나 에헤만의 11번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형제만 14명에 달했던 그는 수백 년간 가업을 이어가던 유리가공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원래 본명은 하인리히 네슬레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사상을 따르는 루터교회의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로 인해 근면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몸에 익히며 10대를 보냈습니다.

앙리 네슬레
네슬레, 혁신의 힘을 보다
특히 그의 성장기에 프랑크푸르트는 기술의 도입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1828년부터 1834년 사이 상하수도 시스템이 설치됐고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스등 시설이 도입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네슬레에게 ‘혁신’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네슬레는 1833년, 19살의 나이에 프랑크푸르트 약국 ‘언더브룩’의 소유주 J.E 스테인 밑에서 견습으로 일하며 4년간 화학에 대한 지식을 쌓았습니다. 이후에도 4곳의 약국을 돌아가며 약국 보조로 1839년까지 일했습니다. 이후 스위스 브베에 건너간 그는 약사 자격증 시험을 통과해 약국을 운영하며 약을 제조하고 처방한 뒤 판매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약국서 일할 당시 네슬레
그리고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브베 지역에 적응하기 위해 그는 하인리히라는 자신의 이름을 프랑스식인 앙리로 바꾸어 스위스의 삶에 적응해 갑니다. 지역사회에 완전히 녹아든 그는 1843년 지역의 유채 생산농장을 인수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합니다.

램프를 켜는데 필요한 너트오일을 생산하고 식초, 탄산수, 레모네이드를 제조하는 등 자신의 전공인 화학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생활 밀착형 사업을 벌이며 사업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1850년대에는 돈이 되는 가스 조명 사업과 비료사업에 집중하며 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화학자 네슬레, 사업가 네슬레로 자리매김하다
앞서 10대 시절 기술의 혁신이 인류의 삶을 얼마나 바꾸는지 크게 영감을 받았던 네슬레는 영양 공급의 제약과 의료기술의 한계로 고통받는 아이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네슬레와 그의 부인 사이에 자녀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아 사망률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던 그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이를 해결할 조제 분유 개발에 집중했고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처음 네슬레는 젖소의 우유에 곡물, 설탕을 섞었습니다. 하지만 아기들이 소화하기 힘든 전분 성분과 산성 물질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영양학자이자 친구인 진 슈나이처의 도움으로 해당 성분을 제거하는데 성공했고 뜨거운 물만 타면 아이들이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가루 분유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네슬레 로고
분유의 탄생, 신생아를 구하다
그는 1867년 이 제품을 페린락테라고 이름 지어 출시하며 네슬레를 창업합니다. 회사 로고도 이 때 탄생했는데요. 네슬레를 대표하는 3마리의 새가 있는 새 둥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네슬레는 지역 방언으로 작은 새 둥지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3마리의 새는 그의 가문의 시조격인 네슬레 집안의 한스, 하인리히, 사뮤엘 3형제를 뜻합니다. 즉 가문을 상징하는 새 둥지와 3명의 옛 조상을 로고화한 것입니다.

초창기 네슬레 공장
사실 네슬레와 별개로 미국의 찰스 페이지와 조지 페이지 형제는 스위스에 ‘앵글로 스위스 연유’ 라는 회사를 1866년 창업합니다. 이 회사는 스위스의 신선한 우유를 이용한 유럽 최초의 연유 생산 기업인데요. 밀크메이드라는 브랜드로 신선하고 안전한 우유 등 유제품을 생산한 회사입니다.

두 회사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서로 치열한 경쟁을 펼친 당시 세기의 맞수였는데요. 1905년 네슬레 앵글로 스위스 연유회사로 합병한 뒤 1977년 네슬레란 이름으로 회사명을 아예 변경합니다. 그렇게 스위스 최대기업 네슬레가 탄생합니다.

혁신에서 시작된 분유, 네슬레의 유산
네슬레의 신생아 영양학 책
앙리 네슬레의 혁신적인 발명은 단순한 신제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부모들에게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네슬레의 열정과 헌신은 그의 회사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렇게, 작은 실험실에서 시작된 네슬레의 여정은 전 세계 아이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선사하는 위대한 여정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중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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