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기관차에 완전히 질려버렸다”…전쟁 막바지 보이는 지금, ‘이 남자’에 시선집중 [지식人 지식in]

오수현 기자(so2218@mk.co.kr) 2024. 7. 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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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탈리 베네트 前이스라엘 총리
1년만에 총리 자리서 물러났지만
네타냐후 후임자로 유력해 주목
합리적 중도파…‘중동의 왕따’ 탈피
진보적 집안·비즈니스맨 경험 영향
좌우 정파 통합해 총리까지 오르기도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오는 9월 9~11일 인천 영종도에서 열리는 제25회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합니다. 베네트 전 총리는 2021년 6월부터 2022년 6월까지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총리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전임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재임하며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이후였습니다. 전임자의 그림자가 워낙 길게 드리운 탓인지 그는 1년만에 총리에서 물러났지만, 이스라엘과 국제사회는 현재 베네트 전 총리의 행보에 다시 한번 주목하고 있습니다. 연내 사임이 확실시 되는 현 네타나후 총리의 후임자로 베네트 총리가 유력하게 점쳐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선 전직 총리가 다시 한번 총리에 오르는 게 드문 일이 아닙니다. 첫 번째 임기의 경험을 살려 보다 더 능숙하게 나라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실제 현 네타냐후 총리는 2021년 물러난 이후 1년 6개월여 만에 다시 총리 직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앞서 1996년부터 1999년 사이 총리직을 맡기도 했었습니다.
합리적 중도파…사우디·UAE등과 관계 회복
베네트 전 총리는 강경일변도인 네타냐후 현 총리에 비해 훨씬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중도 우파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동의 외딴 섬 같은 처리였던 이스라엘의 우방국을 확보하는데 베네트 전 총리는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취임 3개월만에 이집트를 방문해 압델 파타 엘 시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경제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프로세스 문제를 놓고도 함께 머리를 맞댔습니다. 또 이스라엘 총리로선 사상 처음으로 UAE를 공식 방문해 셰이크 하메드 빈 타에드 알 나햔 왕세자와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들 중동 국가들이 베네트 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것은 사실 보통 큰 부담이 아닙니다. 같은 아랍계인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용인할 때까지 이스라엘과 수교해선 안된다”고 압박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수교하면 배신이라는 얘기죠.

또 베네트 전 총리는 비록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직접 찾진 못했지만 물밑에서 관계 개선을 이뤄내 이스라엘 항공기가 사우디 영공을 통과하도록 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중동의 왕따였던 이스라엘이 이들 국가들과 적어도 적대적 관계를 풀어내며 반(反) 이란 연대를 느슨하게 나마 엮어낸 것은 외교적으로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일부 중동 국가 간 관계 정상화 협약인 ‘아브라함 협정’의 결과이지만, 베네트 전 총리의 실용적인 외교행보가 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던 것은 분명합니다.

베네트 전 총리의 이같은 외교 성과는 현재 이스라엘이 하마스, 이란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등 주요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베네트 전 총리 정권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다양한 정당들이 참여한 것도 그의 유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베네트 전 총리는 우파 정당인 야미나(Yamina) 당의 대표였지만, 우파, 좌파, 중도파와 심지어 아랍 이슬람 계열의 소수당들을 통합해 외연을 넓혔고 총리에 오르는데 성공했습니다.

정치인 이전에 비즈니스맨
베네트 전 총리의 유연함과 실용성은 그의 부모의 영향이 컸습니다. 베네트는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하이파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베네트의 부모는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입니다. 그의 어머니의 가족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희생됐죠. 하지만 베네트 집안은 정통 유대인 집안은 아니었고, 그의 부모는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이파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명문 공과대학교인 테크니온 이스라엘 공과대학교 내 자금조달 부서에서 근무하다 부동산거래 중개에 눈을 뜨게 됐고, 이후 부동산투자업으로 전향했습니다. 베네트의 어린 시절은 이사의 연속이었습니다. 베네트의 가족은 베네트가 한살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이민을 갔지만, 같은해 10월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하자 그의 아버지는 참전하기 위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고, 전쟁이 끝난 이후 가족 모두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자리에 따라 베네트 나이 4살 때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다가, 2년 만에 이스라엘 하이파로 돌아오고, 또 다시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 뉴저지로 이주했다가 또다시 2년 만에 하이파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다양한 삶의 환경을 경험한 게 베네트 전 총리의 의식과 사고구조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베네트 전 총리는 성인이 되자 여느 이스라엘 남성들처럼 군 복무를 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인 사이렛매트칼(Sayeret Matkal)에서 병사로 복무하며 여러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사이렛매트칼은 인질 구출작전 등 최고난도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입니다. 의무복무를 마친 뒤 그는 장교로 전향해 사이렛매트칼에 복무하게 됩니다. 이후 또다른 특수부대엔 마글랜(Maglan)에서도 지휘관으로 복무합니다. 6년 여간의 군복무를 마친 뒤 베네트 전 총리는 히브리대 법대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비즈니스 맨으로 변신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소프트웨어 회사 사이오타를 설립했고, 이를 1억4500만달러에 매각해 베네트 전 총리는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업체인 솔루토의 최고경영자를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부를 축적해 나갑니다. 이후 베네트 전 총리는 투자자로도 큰 성공을 거듭니다. 미국의 핀테크기업인 페이오니어(Payoneer)에 투자했는데, 포브스지는 그가 관련 투자로만 500만달러를 번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강성 시오니즘 정치인과 베네트 전 총리가 차별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찾는 베네트 전 총리가 세계지식포럼 참가자들에게 어떤 중동 평화 방안을 제시할 지 관심이 갑니다. 이스라엘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는 “베네트 전 총리는 올 연말 네타냐후 총리가 물러나면 새 총리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며 “총리 또는 국방부 장관 등으로 내각에 참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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