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로 변한 마을…또 비소식에 ‘노심초사’
하우스 무너지고 농작물 침수
“수해 대비 미뤄 큰 타격” 목소리
도로·하천 정비 등 근본 조치를
“다음주에도 비가 온다는데, 이젠 빗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비는 멎었지만 물이 빠지고 드러난 현장은 더 참혹하다. 7∼10일 충·남북과 전북·경북 곳곳에 내린 폭우로 수해를 입은 마을과 농경지는 말 그대로 폐허였다.
비가 그친 11일 드러난 충남 금산군 추부면 비례리에 있는 시설하우스는 폭격을 맞은 듯 엿가락처럼 휘고 주저앉아 있었다. 10일 오전 3시부터 3시간 동안 퍼부은 163㎜의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한 결과였다.
서호석씨(61)는 “지난해 9월 1억1000여만원을 들여 시설하우스 2동에 양액재배 시설을 갖추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깻잎 수확에 들어갔지만 남은 건 빚밖에 없게 됐다”며 가슴을 쳤다.
2년 연속 수해를 입은 전북 익산시 용동면은 비가 그친 지 하루가 지났어도 물이 빠지지 않아 침수된 상태로 놓여 있다. 용동면 들녘을 지나 금강으로 이어지는 산북천 물도 빠지지 않고 있어 시설하우스를 삼킨 물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고여 있다는 것이 농가들의 설명이다.
김득추 북익산농협 조합장은 “현재(11일) 용동면과 용안면에 차 있는 물이 빠지지 않는 것이 큰 문제다. 인근 대청댐 방류로 이곳에서 물을 내놓아도 다시 차올라 소용이 없다”며 “지난해엔 다시 잘해보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조차도 미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만 빠지면 겉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농작물도 2차 피해가 불가피하다. 물에 잠긴 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는 데다 바이러스 감염이나 병해충에도 취약해 정상적인 생육이 어렵기 때문이다.
경북 고령에서 오이를 재배하는 김정동씨(54·우곡면 답곡리)는 “한번 침수 피해를 입으면 뿌리가 약해지고 기형과 발생 비율이 높아진다. 열흘 정도밖에 수확을 못한 시설하우스에도 물이 들어찼기 때문에 앞으로는 수확을 제대로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친환경농사를 짓는 농가들은 인증 취소를 걱정한다. 양인호 금산 추부깻잎연합회장은 “시설을 철거하고 새로 시작한다고 해도 지역을 휩쓸고 간 물에 토양이 오염돼 무농약·농산물우수관리(GAP)·저탄소 인증 등 고품질 깻잎을 생산하기 위해 10년 넘게 쏟아부은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 같다”며 탄식했다.
농가들은 예산과 절차를 핑계로 수해 대비를 제때 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를 원망했다.
오이농가 김씨는 “폭우가 쏟아지기 전부터 도로 정비가 필요하다고 몇차례나 얘기했지만 면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해결을 차일피일 미뤄왔다”며 “자비로 사면에 시멘트를 발라보기도 하고 일부 수로 정비도 직접 했지만 호우로 흙이 대량으로 쏟아지자 소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익산시의 경우 지난해 수해를 입은 지역을 중심으로 배수 용량을 확충하는 하천정비사업을 시작했지만 완공까지 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비 오기 전부터 주민들의 우려가 컸다.
김 조합장은 “시는 대조천과 산북천이 이어지는 구간을 정비하고 배수 용량을 확충하기 위해 펌프장 1곳을 신설하는 정비사업을 하고 있지만 완공까지는 3∼4년이 걸리는 만큼 금강 주변 지역에 대한 정부의 신속하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5일을 전후로 다시 장마전선이 북상할 것으로 예보돼 있어 농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익산의 한 주민은 “다음주에 또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비가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라 기습적으로 쏟아져 내리니 농가로서는 손 쓸 방법이 없어 불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우기의 성격이 짙은 장마 탓에 당분간 맑은 하늘을 기대하기 어렵겠다.
기상청에 따르면 15일은 남부지방과 제주, 16일부터 19일까지는 제주를 제외한 전국, 20일부터 22일까지는 중부지방과 전북·경북권에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예보 기간의 최고 체감온도가 31℃ 이상으로 올라 무더운 날이 되겠고, 일부 지역은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나타날 수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번주 정체전선 영향으로 비가 오는 지역이 많겠으며, 특히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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