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변호사, 김춘추를 불러 ‘통일 한국’ 방책을 묻다
소설 ‘춘추는 이렇게 말했다’ 펴내
"고대사 시기의 인물 김춘추를 현세로 불러온다면, 그것은 일종의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 기법이라 할 수 있다. 복거일의 ‘비명(碑銘)을 찾아서’나 ‘역사 속의 나그네’같은 소설이 이를 시현(示現)해 보였다.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서로 소통하게 하는 데 있어 ‘춘추(春秋)’라는 이름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여기서 답안의 성안(成案)을 위해 내세운 인물의 이름이면서 역사, 세월, 계절을 한꺼번에 뜻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경재 변호사가 펴낸 장편 소설 ‘춘추는 이렇게 말했다’(모아드림 발행)에 대한 김종회 문학평론가(한국디지털문인협회 회장)의 소개 글이다. 한국 문학을 오랫동안 궁구해 온 김 평론가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다"라고 했다. 법률가로서는 크게 이름이 났으나, 소설가로서는 초보자인 저자의 작품이 괄목상대할 만해서였다. 김 평론가는 그 놀라움의 이유를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
"우선 그 발화의 형식이 허구의 세계를 축조하는 소설에 근접해 있으면서, 작가 자신의 진솔한 내면적 의식을 담아내는 점은 에세이와 가까웠다. 동시에 우리 시대와 사회의 쟁점을 두고 그 가장 전방 지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사실적 보고서와도 같았다. 그래도 역사와 현실을 가공의 토대 위에 세운다는 측면에서는 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형국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의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형식의 차원이 아니라, 바로 그 내용의 혁신적인 접근 방법과 담론의 구조에 있었다. 우리가 눈앞에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의 총체적 난국을 제시하고, 이를 헤쳐나갈 지혜를 조달하는 방략에 있어 이제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상천외한 관점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의 인물 김춘추,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민첩한 지략과 외교적 역량으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태종무열왕을 지금 여기에 불러내어 조언을 듣는다는 것이다."
저자인 이 변호사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대란에 빠졌다고 본다. 초단기에 산업화·정보화 시대를 거쳐 선진국에 진입했으나 각 분야에서 혼란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국민의 분열과 적대를 부추기고 경제 활력은 떨어지고 있다. 저출생으로 인해 국가 소멸의 경고등이 켜졌다. 북쪽의 김정은이 핵으로 남을 위협하는 가운데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이 그 협박에 동조하고 있다.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내줄 지경이 되자 리더십의 혼돈을 겪는 형국이다. 이러한 때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과 통일의 염원을 구현할 방책이 없겠는가.
저자는 이런 목적을 갖고 역사에서 가르침을 찾았다. 신라의 김춘추, 조선의 이순신, 대한민국의 이승만을 떠올렸다. 세 인물 모두 천하 대란 시기의 영웅이었고, 탁월한 전략가였으며, 시대를 질서를 바꾸었고, 생전이나 사후에 걸쳐 논쟁적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세 명 중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통일을 기획하고 추진해 성공에 이른 전략가 김춘추가 최적이었다. "춘추공에게 후손으로서 꿈에서라도 오늘의 과제와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청하고 대화하고 싶었다."
저자는 오랫동안 김춘추에 관한 역사 자료와 평전을 두루 살펴보았다. 중국과 일본의 관련 기록, 김춘추와 동시대인인 당의 이세민, 고구려의 연개소문, 왜의 나카노오에에 관해서도 자료를 연구하며 2년에 걸쳐 소설 집필을 완성하였다.
"김춘추 시대인 7세기 동북아 정세와 21세기의 그것은 천 사백 년의 어마어마한 격차가 놓여있으나, 그럼에도 시공을 초월한 지혜는 있는 법이다. 그런 지혜를 가진 인물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Ubermensch), 초인(超人), 참 난사람일 것이다. 역사를 귀감이라고 하고 춘추라고도 한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이 소설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통일 한반도 담론에 마르지 않는 샘이 되길 기대한다."
책의 앞부분엔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이 열거돼 있다. 저자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동천 변호사, 김춘추 소환의 기능적 역할을 맡는 한통일 교수를 비롯해 송변(동천의 S대 벗·변호사), 안공(재야 정치인), 우기자(유튜버·C신문 전 기자), 이상군(동양그룹 회장), 도대승(해군제독), 김상용(국정원 전 국장), 김호(경주병원장), 이행장(U은행 전 행장), 김철(북한 로마대사관 전 공사·탈북민) 등이 나온다. 김춘추가 책 속에서 색목인(色目人)으로 부르는 John Haeley 미국 U.W대학 ALC 소장과 가네다 마사오(金田正夫) 일본 도쿄대 국제법 교수도 등장 인물이다.
이들은 춘추공과 종횡무진대화를 나누며 난세를 헤쳐나갈 방책을 모색한다. 그 속에서 독자들은 역사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풍성한 교양과 상식을 두루 맛보며 지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고갱이는 춘추공이 후손에게 주는 네 가지 훈시이다. 이른바 춘추사훈(春秋四訓·131~151쪽).
제1훈: 납간배아(納諫排阿·간언을 받아들이고 아부를 배척하라).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언행 불일치하는 자들은 유해 식품이자, 해조(害鳥)다.
상품 광고도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인들의 구호·선전·발언이나 정책이 야바위 같더군. 선거 캠페인을 마치 백성 속이기 놀음으로 아는 자들이 많더구나. 하긴 대한민국의 IT 기술과 디지털화가 최첨단이라고 하니 백성들도 헷갈려 옥석 구분하기 어렵겠지. 그러니,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하지 않겠나. 그런데, 언론조차 보수네 진보네 하며 어느 한쪽으로 기우니 이거는 바로 잡아야 하네. 누가 하느냐, 우 기자 같은 참 언론인들이 해야겠지. 권력이나 힘 있는 자를 비판하지 않고 감싸는 언론인은 사이비 언론이다. 내가 왕일 때도 왕을 비판하도록 간관(諫官)을 두었고, 그의 간언을 배척하지 않았다."
제2훈: 화이불분(和而不分· 화합을 도모하고 분열하지 말라).
"분란과 분열에 능하고 모든 잘못과 실패는 상대방에게 돌려 비방하고, 쟁취한 권력에 똬리를 틀고 성역화하는 세력들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다툼은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나은 사회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있는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런데 분란과 다툼, 갈등과 분열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 이런 일들을 기회 삼아 경제적·정치적 이익이나 권리를 도모하려는 인간들이 더러 있다. 문제는 이런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망조가 들어 모두가 불행하게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는 삼한일통을 이룬 나로서 엄중히 경고하는 말을 하고 싶다."
제 3훈: 온과향래(溫過向來·과거를 익히되 미래를 향하라).
"청산보다는 건설, 과거보다는 미래를, 관행보다는 혁신을 앞세우는 세력과 정치인을 지지해야 미래가 있다. 거대 양당이 틀어쥐고 있는데 주눅이 들어 젊고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면 아예 무시하고 눈길도 주지 않는 행태는 과거 지향의 사람들이 하는 짓이니 이제는 벗어나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
제 4훈: 친민택정(親民擇正·백성을 사랑하되 정도를 지켜라).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백성들이 원하면 뭐든지 다해주겠다고 하는 자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21세기 대한민국 정치꾼들 가운데는 ‘백성들은 항상 옳다’고 사탕발림 언사를 입만 열면 읊어대는 자들이 더러 있구나. 이런 정치꾼들은 나랏돈 알기를 제 주머니 돈인 양하더구나. …재정관리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나 정파에게 나라를 맡겨서는 안된다. 든든한 곳간이 준비되어야 민심도 순후해지고 통일대업도 순조롭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뒷부분은 한국의 미래를 환하게 열기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도 폐지 등 행정구역 혁신, 통일헌법 초안 작성, 통일 수도 구상 논의, 남·북·중·러·일의 월드컵 공동 유치, 핵무장 잠재력 확보, 드론 의병 10만 육성 등이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대단히 무거운 주제를 갖고 있음에도 한달음에 읽힌다고. 그것은 소설이라는 외피를 빌려와 대한민국의 현실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인 이경재 변호사(법무법인 동북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정치적 범법행위로 세상의 비난을 받는 쪽을 변호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는 지금도 정치 진영 싸움에서 한 쪽에 서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이 책의 메시지도 그렇게 소비될 가능성이 크지만, 책을 찬찬히 읽으면 그런 패싸움의 현실을 훨씬 넘어서는 울림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 진영을 향한 손가락질과 악다구니가 아니라 깊고 넓은 담론으로 생각의 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스로 광전세대(光戰世代)라고 한다. 광복과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 시기까지를 다 경험한 한국인으로서 후세대를 위해 통일로 가는 방책을 함께 고민하고자 했다. 역사 속의 춘추공을 불러서 대화를 나누는 ‘기상천외한’ 상상은 그 고민의 진정성에서 나왔다. 독자는 그걸 그의 글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종회 평론가는 소개 글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글의 전제와 전재가 마치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를 보듯 재미있어서, 필자의 경우 이를 단숨에 독파할 수 밖에 없었다."
장재선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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