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불러봤자"…협상임금 된 최저임금[노동TALK]
[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한국 최고의 노동경제학자, 거시경제학자, 노사관계학자들을 부르면 뭐 합니까. 논의가 안 되는데요.”
최저임금 심의가 한창 진행 중인 지난 11일 밤. 최저임금위원회 한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제도에 불만을 토로하며 한 말입니다. 그는 “사용자위원이나 근로자위원이나 자기들 어렵다는 얘기만 한다. 자영업자 힘들다, 저임금 노동자 힘들다는 거다. 그걸 누가 모르나. 의미 있는 논의가 안 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최저임금은 시장적 요소(임금)와 규범적 요소(국가가 정한 하한선)가 결합된 가격입니다. 최저임금법이 최저임금을 정할 때 소득분배율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를 생각하라는, 규범적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올리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임금은 가격이기 때문에 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노동수요(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장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이렇게 복잡한 가격을 제대로 심의해 결정하고 있느냐입니다. 전문적인 논의가 필수적이지만, 실상은 노사가 원하는 가격을 최초에 제시하고 이후 줄다리기를 거듭하며 격차를 줄인 뒤 공익위원을 포함한 위원들이 투표로 결정합니다.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이원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미래세대 특별위원장은 12일 통화에서 “매년 사용자(위원)는 동결을 요구하고 노동자(근로자위원)는 두자릿수 인상률을 제시한 뒤 힘겨루기를 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최저임금은 경제 상황을 고려해 노동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인데 협상으로 결정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또 다른 공익위원 역시 “최저임금이 협상임금이 돼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통화에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결정할 땐 엄청나게 많은 것을 고려한다. 최저임금 역시 그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위 사무국을 확대해 전문 인력을 더 투입하고 최저임금위도 상설기구로 바꿔야 할 겁니다. 하지만 재정과 행정력 확대가 불가피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측에선 반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익위원을 노사정이 추천하자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하지만 노사가 각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를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갈등은 오히려 확대될 수 있습니다. 노동계는 이번 정부에서 위촉한 공익위원들이 사용자 편에 섰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노동계 말대로라면 도급제 최저임금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어야 하고, 업종별 구분(차등) 적용은 표결에서 의결로 결정돼야 했을 겁니다.
최저임금위는 정부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정부는 이제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엔 노사공 모두 동의하는 만큼 긴 호흡으로 개편안을 내놓길 기대합니다.
서대웅 (sdw61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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