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고통 지운 그 찬연한 여름…7월에 생각나는 그림들

한겨레 2024. 7. 1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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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잇기
여름날
백영수, 피난지에서 그린 ‘여름’
전쟁 통에도 물러서지 않는 열정
이내, ‘기억-마음에 담은 별’
늦게 시작한 작가의 ‘희망’ 담겨
백영수의 ‘여름’(1953년 작, 2010년 재제작). 백영수미술관 제공

“갑자기 햇빛이 조용한 수면을 통해 호수의 깊은 밑바닥까지 비쳐들었다. 하나하나가 태양에 침범당한 모습이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여름밤 열 시 반’의 한 구절이다. 여름은 절제 없이 들이닥친다. 근대 작가 백영수의 ‘여름’과 현대 작가 이내의 ‘기억-마음에 담은 별’ 속 한여름을 만나본다.

외유내강의 ‘신사실파’

“우와, 태양 같아.” 혼잣말이었다. “오늘 날씨 같은 하늘이네.” 친구의 말이다. 어느새 땀이 식었다. 작년 여름 경기도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에서 ‘한국추상미술의 개척자들’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백영수의 ‘여름’(1953)을 만났다.

‘신사실파의 유일한 생존화가’, ‘김환기·이중섭의 친구’가 백영수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2018년 그가 96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는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산증인이었다.

‘여름’은 명랑하다. 화폭을 채운 하늘의 색이 알려준다. 구름 한점 없는 쨍한 날씨임을.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여인은 작아 보인다. 이목구비를 지워내서일까. 시선을 옮겨 해바라기를 보았다. 활짝 피어나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나무의 키가 드높다. 계속 자라고 있는 듯하다. 태양이 비춘다. 선명한 노란색은 뻗어 나온다. 보았을 뿐인데 햇살이 따갑다. 생명력이 넘쳐나고 여름이 요동친다.

1953년, 전쟁의 시기다. ‘여름’은 생동하고 있다. 어떤 고난의 흔적도 없다. 백영수는 어떻게 이처럼 평화로운 여름의 낮을 담았을까. 부산은 피난 수도였다. 남하한 유입화가들로 인해 미술문화가 꽃폈다. 그 중심에 김환기·장욱진·백영수·이중섭·유영국 등이 참여한 ‘신사실파’가 있었다. 자주 소란이 일었다. 서울과 부산 지역 화가들의 기싸움이었다.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 백영수는 일본 유학파로 이미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러번 개최했다. 나설 법도 했다. 그는 혈기를 내지르지 않고 그렸다.

“백 형을 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잔잔한 유리 같은 호수의 인상을 받으리라.” 1951년 부산 밀다원 다방에서 열린 ‘백영수 소품전’에 대한 전시 평이다. 소설가 박계주가 썼다. 담백한 색채에 대해 찬사와 함께. 화가의 성향과 그림은 닮는 법이다. 많은 이가 그의 작품세계를 ‘무해하다’고 평한다. 피난 시기에도 여러 다방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평론을 썼고 문인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추상을 하든 구상을 하든 각자 자기 생각과 개성을 갖고 작품을 만들었다.” 신사실파에 대한 백영수의 회고다. 어떤 이는 말한다. 과하게 유미적이라고. 다른 의견이다. 담백한 색채 속 의연함을 본다.

“하필이면 빌어먹을 그림쟁이란 말이냐.”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다. 백영수는 어머니와 단둘이 일본 오사카에서 자랐다. 홀로 도쿄로 가서 ‘다이헤이요(태평양)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맥주 공장에서 일하며 공부했다. 어머니가 백기를 들자 집으로 돌아와 ‘오사카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하루에 크로키를 200개씩 그려냈다. 누가 백영수를 ‘여리다’고 했는가. 식지 않는 열을 품었다.

이제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반추상화인 ‘여름’을. 단순한 선 마디마다 타오르고 있다. 선연하게 태양에 맞서고 있다. 고요하지만 담대하게. ‘여름’에는 갈급함이 담겼다. 붓을 놓지 않겠다는. 어떤 전쟁의 포화에도 지지 않으리라. 자라나겠다는 선언이다. 나무의 키에 손을 뻗는다. 닿을 수 있다. 존재를 과시하듯 드러난 해바라기를 향한 여인의 표정을 상상해본다. 눈을 뜨고 있으리라. 그 무엇에도 아랑곳 않는 맑음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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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봐도 울지 않게 된 날에 그려”

이내의 ‘기억-마음에 담은 별’(2022). 이내 제공

“환 공포가 있어 못 보겠네요.” “마음의 평안을 얻어가요.” 같은 작품에 대한 다른 반응이다. 동그라미 옆에 동그라미, 또 동그라미. 뜻 모를 현대 추상화인가? 클로즈업에서 벗어나 줌아웃을 해본다. 작품 전체가 드러난다. 풍경이 펼쳐진다.

2년 전 이내의 개인전을 찾았다. 해·나무·바다·풀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바짝 다가서면 무수한 원들이 빼곡하다. 이내의 ‘기억’ 시리즈다. 그 오묘함에 취해 있다 시선이 머문다. 별들이 쏟아진다. 2년 전 그의 개인전에서 ‘기억―마음에 담은 별’(2022)을 마주쳤다.

여름이 되면 이 작품이 떠올랐다. 뜨거워지는 날들에 어김없이. 왜 무더워지는 날이 되면 생각날까. 촘촘한 점들로 새겨진 별들을 쫓아가다 발견했다. 두 그루의 나무들을. 푸릇함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숨어 있듯 드러나 있다. 여름의 녹음처럼 짙게. 청량함의 이유였다.

밤이란 신비롭다. 새삼스럽게 새어 나온다. 굳게 잠가두었던 기억의 파편들이. 여름밤은 그 농도가 더하다. 엉킨 감정들이 삐져나온다. 며칠 전 무더위에 힘겹던 밤이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그거야 열대야 때문이지. 더워서 잠을 못 자잖아.” 명쾌하다. 복잡함이 달아났다. 후덥지근한 마음이 시원해진다.

‘기억―마음에 담은 별’은 분명 밤의 풍경을 그렸다. 전체적으로 가라앉는 색조이지만 우울함은 아니다. 이내 작가가 그려낸 여러 점의 밤하늘 작품에는 어둠보다 빛이 묻어난다. 알알이 아로새겨진 원들 사이에 넣어둔 그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작가 활동을 멈춰야 했던 힘든 기억들을 동그랗게 그리며 치유했다.” 작가 이력이 삭제된 시간을 지나왔다. 2007년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일반 회사에 취직했다. 여건상 전업 작가로 활동할 수 없었다고.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노트에 그렸다. 끊임없이. 열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2017년 첫 개인전을 연다. 10년을 돌아온 길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화답은 더디지 않았다. 국내외 갤러리와 컬렉터들의 러브콜이 이어진다. 작년 영국 사치갤러리의 초청을 받았고 올해에도 외국 전시가 계획돼 있다.

반복과 중첩. 이내의 작업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하얀 캔버스에 금색으로 수만개의 원을 그린다. 색점을 하나하나씩 다시 찍는다. 매일 12시간을 지속한다. 물감의 두께가 쌓여간다. 같은 크기였던 원들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희미했던 과거의 잔상들이 새로워진다. ‘기억’ 시리즈는 이토록 입체적이다. 가까이 다가서면 알 수 없는 동그라미들이 뒤로 물러서면 별이 된다. 신비롭다.

“밤하늘을 봐도 울지 않게 되었던 날에 그린 작품이다.” ‘기억―마음에 담은 별’에 대한 설명이다. 은하수를 수놓은 별들에 높은 마음이 담겼다. 여름은 뛰어드는 계절이다. ‘마음에 담은 별’이 계절의 밤을 닮았다. 까만 어둠이 걷혔다. 이내 여름밤의 빛을 모아 세상으로 나아가리라.

장맛비가 내린다. 줄기차게. 데인 듯했던 당신의 슬픈 기억이 함께 흘러가기를. 다시 해가 비춘다. 찬연스레. 여름날이다.

미술 칼럼니스트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기질만 있고 재능이 없단 걸 깨달았다. 모네와 피카소보다 김환기와 구본웅이 좋았기에 주저 없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 시대의 사연을 품고 있는 근대미술에 애정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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