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니 앞길을 니가 정하니?"
[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주의 : 영화 '탈주'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럼, 니 앞길을 니가 정하니?”
모처럼 영화를 보다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참신한 대사를 만났다. 지난 3일 개봉한 이종필 감독의 신작 '탈주' 이야기다. 10년간의 군 생활을 마쳤지만 사회로 돌아가도 별다른 할 일이 없는 그저 그런 신분의 북한군 중사 규남(이제훈)에게, 타고난 금수저인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던진 말이다. 그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규남에게 고위급 간부의 운전사 일자리를 맡으라며 일방적인 통보를 하던 참이다. 타고난 계급 격차에 내내 주눅 들어 있던 규남이 욱하고 치고 올라오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왜 제 앞길을 소좌 동지가 정하느냐'고 따져 묻자, 현상은 의아하다는 듯 냉랭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럼 여태 니 인생 니가 정한다고 생각이라도 한 거냐고.
2024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개의 관객에게 이 대사가 상징하는 세계는 아주 낯설고도 생경한 것이다. 성인이 된 평범한 관객 대부분에게는 '내 인생을 내가 정했다'는 몇 가지 징표들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로 겨우 마련한 공부 값을 스스로 벌어 다 갚던 순간, 사회적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진로를 막연한 포부만으로 선택했던 일, 타인에 대한 책임과 양보를 내심 자신 없어 했으면서도 기어코 결혼을 선택하고 가정을 꾸린 일대의 '사건'까지… 운이 나쁘면 뼈아픈 실패를 맛볼 수도 있는 선택지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정답이 없는 삶의 지점마다 '결국 결정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진다'는 필연적인 훈련을 반복하며 그 선택을 최선의 결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을 테니까.
그런데,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응당 겪어내야 할 선택과 책임이라는 경험을 전혀 맛볼 수 없는 '정해진 인생'이 있다면? 그게 '탈주' 속 북한 중사 규남의 처지다. 좋은 수저라도 물고 태어나 자유세계의 공기라도 한 번 누려볼 기회가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그러나 고위급 간부의 운전사였던 아버지를 둔 그로서는 밥 굶지 않는 정도의 유년 시절 기억이 전부였고, 그런 부모님마저도 일찍 여읜 뒤로는 비빌 언덕 하나 없이 덩그러니 북한 사회에 남겨졌다.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탐험한 아문센을 동경해 온 그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이제 오직 하나, 북한을 탈출하는 것!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상은 제 아버지처럼 운전사 정도로나 살 수 있으면 그럭저럭 운 좋은 인생이라고 재차 되뇐다. 탈주에 실패하면 총살형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으며.
'주어진 숙명대로 살라'는 극 중 세계관을 극적으로 강요하는 인물은 보위부 소좌 현상이다. 운 좋게 유력한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 유학을 하며 수준급 클래식 피아노 실력까지 갖출 수 있는 특권을 누렸고, 대부분의 존재에게 명령하며 살고 군림하며 살 수 있는 정보기관의 간부가 됐다. 물론 그에게도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은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탈주자를 추격하는 '갑'이고 규남은 그에게 추격당하는 '을'이라는 계급상 차이가 실존한다. 이건 원치 않는 삶의 형태를 강요받는 북한이라는 체제 안에서도 러시안룰렛처럼 '살만한 인생'을 부여받은 자와 '못 버티고 도망칠 수밖에 없는 인생'을 배정받은 자의 운명이 갈리고, 그 삶 사이에 명확한 격차가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관객이 이런 모순을 인지할 때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한층 묵직하게 다가온다. 태생적 신분격차가 분명히 나누어진 폐쇄적인 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누군가는 숙명에 복종하겠지만 누군가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탈주를 감행한다. 물론 체제는 그런 시도를 적극적으로 회유할 것이다. '남한에 간다고 신분과 상관없는 낙원이 열리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세상은 없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을 종용하는 이 속삭임은 자유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의 은유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맥락을 지닌다. 무궁한 가능성을 꿈꿔야 할 청년 세대에게 불량한 패배주의를 부추기는 목소리들이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규남은, 맹렬하게 답한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라도 해보기 위해서 간다”고.
북한 사회의 '현재 진행형 계급 격차'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탈주'는 그간 공개된 남북 영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2000년대 개봉한 대부분 작품이 남북대치의 역사를 주요 골격으로 구축된 반면, '탈주'는 더는 체제 면에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남과 북의 격차로 인해 불거지는 북한 사회의 균열을 극영화 소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이 독특한 소재를 은유 삼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보편적인 관객까지 설득하는 힘을 갖췄고,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작품으로서 의미 있는 성취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목숨 건 치열한 탈주 끝에 만신창이가 된 규남이 가까스로 원하는 곳에 손끝을 딛는 액션과 서스펜스의 여정에 기꺼이 감화된 관객이라면, 그가 오래도록 마음 속에 간직해온 극 중 마지막 대사의 의미를 쉬이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BS, 시사교양국 폐지 추진 - 미디어오늘
- 1994년 7월13일, 세계일보 사장 ‘김일성 조문’ 평양 방문 - 미디어오늘
- 이준석 “尹 정부 언론 정책, 장악 말고 아무것도 없다” - 미디어오늘
- 한동훈 여론조성팀, 김건희 댓글팀? 뜻밖의 여론조작 폭로전 - 미디어오늘
- 경찰, 방문진 사무처 직원들 ‘감사 방해 혐의’ 출석 요구 - 미디어오늘
- 국회, ‘기자 단톡방 성희롱’ 재발방지 조치 나선다 - 미디어오늘
- 5년 만에 나온 조선일보 “TBS 정치방송” 정정보도문 - 미디어오늘
- 폐국 위기 TBS 내부 “대표 대행 즉각 사퇴” 요구 - 미디어오늘
- KBO 흥행 힘입은 티빙, 이용자 수 넷플릭스 맹추격 - 미디어오늘
- “탄핵이 필요한거죠” 尹풍자에 고소로 답한 KTV...“공공기관이 시민 협박”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