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돌진해도 막아주도록 인도에 세워둔 기둥…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그거사전 - 26] 인도에 줄줄이 설치된 철제 기둥 ‘그거’
원래 볼라드는 배를 매어 두기 위해 부둣가나 잔교 등 계류 시설에 세워 놓은 말뚝, 계주(繫柱)·계선주(繫船柱)를 뜻하는 말이다. 영미권에서는 부둣가의 볼라드와 구분하기 위해 도로상의 볼라드를 트래픽 볼라드, 스트리트 볼라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볼라드는 차량과 보행자의 공간을 분리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통행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볼라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설치하는 장치이지만, 단단한 재질의 말뚝이 시야보다 낮게 설치돼 있다 보니 멍하니 길을 걷던 보행자에게 시퍼런 정강이 멍을 안겨주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에는 예상하지 못하게 튀어나와 보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특히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등에서 제시하고 있는 설치 기준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설치한 경우가 잦은 것도 문제다.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볼라드는 반사 도료·발광 테이프 등을 사용해 쉽게 식별할 수 있어야 하며,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해 높이 80~100㎝·지름 10~20㎝ 규격에 맞춰 제작해야 하고, 말뚝 30㎝ 앞쪽에 시각장애인용 점형(점자)블록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거리를 잘 관찰해보면,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2021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중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 마포구·서대문구·용산구·은평구·중구 등 서부도로사업소 관할 교차로 646개소에서 볼라드 584개 중 올바르게 설치된 사례는 66개, 11.3%에 그쳤다. 볼라드 전면의 점자블록이 설치된 경우도 28.3%에 불과했다. 점자블록이 파손된 채 방치되거나 횡단보도의 장소 변경 등으로 엉뚱한 곳에 설치된 사례도 있었다. 뭐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법이다.
반면 보행자용은 무단 횡단이나 자전거 전도(顚度) 사고를 막기 위한 용도다. 충돌 시험도 거치지 않아도 설치할 수 있다. ‘방호’ 울타리 혹은 ‘안전’ 펜스라고 부르고 있지만, 급발진이나 운전 미숙 등의 이유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할 경우 보행자를 방호할 수도 안전을 담보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명확한 교체 주기나 파손 시 보수에 관련한 법 기준도 미비하다. 현재로서는 인명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만 사후약방문 식으로 방호울타리 강도를 높이거나 차량용으로 교체·보강하는 조치에 그친다.
그렇다고 도심의 모든 인도에 차량용 방호울타리를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투박한 외관이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더라도, 설치 장소의 특성이나 비상식적인 사고의 발생 확률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안전성만 강화하는 방식은 예산과 실효성 측면에서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安心)의 영역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안전이 객관적·과학적·정량적이라면 안심은 주관적이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걱정을 떨치고 마음을 편히 먹는 것’을 의미하는 안심은 마음의 문제다. 밤에 선풍기를 틀고 자면 질식해 죽는다는 괴담은 과학적인 안전 상식과 대중이 느끼는 안심이 괴리된 대표적 사례다.
그럼 자동차는 어떨까. 2023년 기준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는 2551명이다. 1991년 1만3229명, 2013년 5092명에 비교해보면 많이 감소한 수치이지만,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고중량의 쇳덩어리, 자동차는 그 자체로 위험한 장치이며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그 위험성을 방증한다. 리스크는 분명히 높지만 현대 사회에서 차량의 보편성과 편의성·혜택이 그 위험성을 상회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기꺼이 이용’ 한다.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는 자동차에 대한 보편적 안심의 수준을 후퇴시킨다. 사람들은 횡단보도에서 좌우를 더 살피고, 찻길에서 멀리 떨어져 걷는다. 평소 학교를 마치고 걸어서 하교하던 아이에게 “데리러 갈 테니 혼자 오지 말고 기다리라”라고 몇 번이고 연락을 남긴다. 이 같은 상황에 이르면, 완전한 안전은 없다는 말은 현실에 가닿지 않는 수사에 불과하다. 객관적인 안전과 주관적인 안심을 어느 정도 합치시키기 위해서는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안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 방호울타리 취약 지역을 찾아 개선하고, 볼라드 등 보행 안전 시설물에 대한 기준도 더 명확하고 엄격하게 만들어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등 일상의 안전을 담보하는 공공 영역의 변화가 절실한 이유다.
- 다음 편 예고 : 운동화 끈 끝에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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