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어디로, 왜? 휴가철 챙겨갈 <여행의 기술> [책GPT]

심가현 2024. 7. 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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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GPT>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작 ·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스포일러에 예민한 분은 독서 후 읽기를 권장드립니다.

◇ 프롤로그

여행객으로 붐비는 공항 AI 생성 이미지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고은 <낯선 곳>

바야흐로 여름 휴가철입니다. 집에 머무르며 푹 쉴 수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훌쩍 떠나고 싶어합니다. 국내로, 해외로, 이미 가본 좋았던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어디든 여기 아닌 곳으로….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말했습니다. “삶이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 장치 앞에서 아프고 싶어하며, 또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여행에 대한 욕구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물리적 공간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현재의 권태에서 탈피하려는 욕구일 것입니다. 하지만 옮긴 자리라고 잘 빚어진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만 있을까요? 그런 냉소주의와 그래도 떠나고픈 이상주의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여행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시야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담겨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찰나 품어봤던 기대, 실망, 감동의 근원을 적확한 언어로 파고듭니다. 그리고 여러 철학자, 문학가, 화가의 지혜를 빌려 다시 떠날 여행에 도움이 될 영감을 제공합니다. 당신은 왜 떠나고 싶어하는가? 여기에 없고 거기엔 있기로 기대되는 건 무엇인가? 어떤 여행이 당신을 감동시키는가? 왜 모두가 찬탄해 마지않던 어떤 곳은 하품이 나오게 지루하고, 별것 없던 이름 모를 도시의 새벽 공기는 10년 후에도 코끝에 선한가? 그런 감동은…꼭 그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가?

◇여행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여행의 시작은 자가용, 기차,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에 우리 몸을 맡기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여행 그 자체만큼이나 우리를 고양시키기도 합니다. 특히 비행기가 그렇습니다.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안내들로 분주한 공항, 그리고 기체가 이륙하는 찰나…. 차가운 창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내려다보는 풍경에선 익숙하고 거대하던 건물들도 으리으리했던 산등성이도 장난감 같습니다.

보통은 그런 이동이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라고 정의합니다. 멍멍해진 귀로 느끼는 기체의 상승감은 대지에 발붙이고는 느낄 수 없던 탈출의 감각으로, 자신 역시 언젠가는 현재의 생활을 억누르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는 영감을 무의식 속에 불어넣는다는 분석입니다. 삶에서의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해 보는 일은 곧 내릴 목적지의 가치와는 무관한, 그 자체로 온전한 심리적 쾌감입니다. 몇 시간 후, 비행기는 일상적 습관이나 제약에서 벗어나 아무도 우리의 이름을 모르는 장소에 착륙합니다.

야외 테라스가 많고 건물이 대체로 낮은 프랑스 파리 (출처=본인)


어떤 여행지는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보통은 여행자를 열광시키는 건 '이국적' 요소로, 그건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합니다. 여행지와 고국 간의 차이, 더 자세히 말하면 고국에 대한 불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겁니다. 필자의 경우엔 프랑스 파리를 수년간 최애 여행지로 꼽아왔습니다. 1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낡고도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번지르르하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것들의 가치를,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는 연인들은 자유로운 가치관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거기에 낮은 건물 사이사이 숨은 노상 카페의 여유까지. 이방인의 눈으로 얼마간 미화된 형태겠지만 그건 아마 고국에서는 충분히 중요하다고 동의받지 못했다고 느껴온 삶의 요소들일 것입니다. 좋아하는 여행지를 거울삼아 스스로의 취향 등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셈입니다.

로마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의 현실이라고 떠도는 사진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하지만 어떤 여행지는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마음을 흔들었던 사진 한 장은 사실 '단순하고 어설픈 행복의 이미지'였음을 깨닫게 되고, 그 조차 몇 시간, 혹은 몇 분도 채 가지 않기 일쑤입니다. 여행 사진이 영화 포스터라면 눈앞의 여행지는 16시간짜리 무편집 촬영본. 떠들썩한 명성에 등떠밀려 의무감에 가까운 감정으로 들르고도 아무런 궁금증 없이 떠나게 되는 관광지들이 있습니다. 때론 '피상적인 지리적 논리'에 따라 맥락 없이 등장하는 오브제들이 호기심을 반감시키기도 합니다. 분명 보고 온 블로그나 여행 책자에 따르면 이쯤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만 할 것 같은데, 속으로 드는 생각은 '그래서 어쩌라고' 뿐일 때…. 거기다 동행과의 말다툼이나 폭우, 폭발적 인파로 인한 불쾌지수 상승이라도 찾아오면 어떤 장관과 절경도 마다하고 숙소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장소의 아름다움보다도 심리적 평안, 주관적 호기심의 크기가 여행의 기쁨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떠나오기 전에는 주목하지 않던 새삼스럽고도 진부한 진실입니다.

절벽 이미지. AI 생성


한적한 시골이나 대자연으로의 여행을 좋아하시나요? '절벽께 있을 때는 왠지 품위 없게 느껴지는 근심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한 관점에만 머무는 일이 불행의 시작일 수 있다'고 경고하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의 시 세계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관점을 품은 자연의 가치를 경외하는 그는 떠들썩한 도시가 길러내는 '저열한 감정들'이 인간의 불행의 근원이며, 자연만이 그런 심리적 외상을 해결할 해독제라고 진단합니다.

내가 세상과 뒤섞이면서도 / 내가 가진 소박한 즐거움에 만족하며,
하찮은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 멀리하며 살아왔다면,
그것은 그대 덕분이다….
그대 바람과 요란한 폭포…그대 덕이다.
그대 산이여, 그대의 덕이다. 오, 자연이여!
-워즈워스 <서곡>

절벽에서 자라난 나무는 폭풍 속에서도 언짢아하지도, 자신이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골짜기로 건너가고 싶은 즉흥적인 욕망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 안에 머무르며 잠시나마 자연의 관점을 오가는 일은 해방감과 함께 우리를 넘어서는 가치를 내면화할 기회를 선물해 줍니다. 워즈워스는 그런 순간을 '시간의 점'이라고 표현했는데, 한 번 찾아온 이후엔 언제고 우리 안에서 다시 재생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새로운 눈을 뜨는 법

보통은 여행을 한층 풍요롭게 즐기기 위한 '나머지 운동'으로 (예술계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시각 예술을 배우고, (글)그림을 그릴 것을 제안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모든 작품은 작가가 현실 중 어떤 부분을 포함하고 배제할지를 부단히 고민해 선택한 결과물입니다. 그만의 개성을 담은 관점을 녹여낸 예술은 관객으로 하여금 혼자서는 흘려보냈을 장면들의 아름다움을 붙잡게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서라곤 이름밖에 모르는 이와, 고흐의 작품에 눈물을 흘려 본 이가 걷는 ‘프랑스 아를’의 작은 골목길은 결코 같지 않을 것입니다. 한 예술가의 세계에 반한다는 것은 그의 눈을 빌려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일 같기도 합니다. 한 시선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그 시선이 머물렀던 장소도, 그와 닮아 보이는 장소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속 찾아헤매던 눈표범 앞에서 셔터를 누르지 않는 주인공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바로 지금 여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매력적인 풍경은 종종 새삼스럽게 우리 언어의 한계를 실감케 합니다. 그럴 때 일단 찍고 보는 게 사진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여행의 기술의 일환으로 '카메라의 남용'을 경계하라고 제언합니다. 셔터 클릭 한 번으로 '할 일을 끝냈다'는 착각을 유발하게 하기 십상인 사진은 오히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생한 순간을 제대로 살피는 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대신 시도해 보라고 제안한 건 '스케치'. 단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림 데생뿐 아니라 '말그림' 즉 묘사하는 글쓰기를 포함합니다. 눈앞의 광경에 어울리는 색감과 언어적 표현을 고심하는 과정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이유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왜 다른 순간이 아니고 이 순간인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을 감동시킨 힘이 어디에 있는지 통찰하게 된다는 분석입니다. 그런 여행은 사진 찍고 이동하기를 반복하는 여행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며 고유할 것입니다.

그 곳(여행지)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때문에 짜증이 난다. 우리가 교통섬이나 좁은 도로에 서서 그 사람들에게는 눈여겨 볼 것이 없는 사소한 것들에 감탄을 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기술> 중

저자가 300여 페이지를 할애해 전하고 싶었던 건 결국 삶과 여행은 관찰이 8할이라는 것. 유명한 관광지에서 인생 사진만 찍어대다간 진짜 아름다움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것. 그보다 더 나은 여행이 분명 있다는 것. 다음 여정에 준비해야 할 건 어떤 화질 좋은 카메라나 근사한 절경보다도 '여행자의 마음'이라는 점입니다. 관습적인 무관심에서 벗어나 제대로 보려는 호기심 어린 눈과 함께라면 낯선 이국뿐 아니라 집 앞 골목도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할 것이고, 평생을 두고 봐왔던 주변 사람도 새로움으로 가득한 외국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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