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서술형 확대? 'K-논술' 풀어보고 하는 말인가?
- 2024학년도 수능 응시자의 N수생(재수생 이상 응시자 및검정 고시 합격 후 응시자) 비율은 35.2%로 28년 만에 최고였다.
-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를 치료하는 데 쓰이는 약물은 '공부 잘 하는 약'이라 불리며 암암리에 팔려나가는데, 강남 3구에서 이 약물 처방은 근 5년 사이 2.5배가량 급증했다. 연 단위로 보면 9월부터 증가세를 보이다가 수능이 끝난 뒤인 11월 하순부터 감소한다고 한다.
- 갈수록 서울과 지역의 교육 격차가 커져 수학 1등급의 서울 대 지방 비율은 2024년 현재 3대 1이다.
현직 의사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가 쓴 <수능 해킹>(창비 펴냄)에서 소개된 입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들은 1994년 처음 실시된 수능이 30년 동안 사교육 기술자들에 의해 "해킹" 당해 "반교육적"이 됐다고 주장한다. 수능은 지식이 아니라 문제 푸는 요령을 습득해 정답을 짜맞추는 퍼즐 맞추기 게임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 입시가 최종 목표가 된 한국의 중·고등 교육은 한국 사회의 여러 기형적인 문제를 낳았다. 의대 광풍, N수생, 강남 집값, 왜곡된 공정의식, 저출생 등은 과도한 경쟁 교육과 연관이 있다.
오늘날 입시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방대한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학생들이 겪고 있는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킬러 문항'과 '일타 강사'를 문제 삼았던 것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학생·학부모들에게 혼란만 불러왔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과 대책은 보수, 진보 그 방향성을 떠나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수학 문제를 외워서 푸는 수능, 학생들은 무얼 배우나?
프레시안 : 인문계 고2 아이를 둔 엄마 입장에서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수능 해킹>이라는 제목은 무슨 의미인가요?
문호진 : 옥스포드 사전에 의하면, '해킹'이란 누군가의 시스템에 허가 없이 비정상적으로 접근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수능 해킹'이라는 제목에는 수능이 이런 비정상적인 '해킹 시도'에 노출되어, 원래의 취지를 상당 부분 잃었다는 문제제기가 담겨 있습니다.
프레시안 : 의사가 대학 입시, 교육 문제에 대한 책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문호진 :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공부법과 철학에 대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수학 영역을 기준으로 설명드리면,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수능 수학을 잘 보려면 교과서의 증명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수능에 출제될 만한 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서 문제를 푸는 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교육에서 워낙 많은 유사 문항을 만들어서 제공하니 학생과 학부모들은 스스로 풀이법을 고민하는 대신 주어진 문항을 최대한 많이 푸는 것을 더 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시 현실에서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요?
두 번째 갈래는 격차와 불평등에 대한 것입니다. 2020년 의사 진료거부 사태를 겪으면서, 저는 의사집단의 믿음이 보통 시민들의 상식과는 거리가 크다는 점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그 집단 내에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일까요? 의사집단의 인적 구성과 그 집단이 겪는 경험이 매우 동질적이기 때문입니다. 동질적일 수 있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대치동 사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어떤 분들은 수능은 그저 수험생들의 문제가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수능의 문제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문호진 : 입시는 부동산과 같은 실물경제나 인구 구조에 영향을 줍니다. 대학이 '학생 수준이 균질한' 학교를 선호하기 때문에 신도시나 사교육 특구 학교를 가려는 사람들이 늘고, 인터넷 강의의 보편화로 지역의 사교육과 입시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붕괴해 학생들이 주말이나 방학마다 서울로 유학을 오고, 그 과정에서 지역을 떠나고자 하는 바람을 갖게 됩니다.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의 공공병원은 높은 급여를 내걸어도 의사 구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편으로는 해당 지역 출신 학생이라 해도 성장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려는 마음을 먹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지역에 정착했을 때 '자녀를 교육시킬 환경이 나쁘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이 주거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교육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교육과 입시 문제는 사회의 다른 분야의 문제로 확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교육적" 수능, 의대 광풍·N수생 등 부작용 야기
프레시안 : 현재의 수능이 '반교육적 시험'이라고 주장하셨어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문호진 : 시험은 원래, 교육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원론적으로는 시험 성적을 잘 받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그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서 교육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험은 유용하고 가치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수능은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달성할 수 있는 '교육적 목표'가 상당 부분 흐려진 상태입니다. 난이도는 지나치게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선에서 조절해야 하고, 복수정답이나 교육과정에서 벗어난다는 시비를 피하기 위해, 'EBS 70% 연계' 정책을 관철시기 위해, 출제 가능한 소재의 범위는 극단적으로 좁아진 상황입니다. 이렇게 서로 충족시키는 것이 극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요구들이 동시에 평가원에 부과되니, 평가원은 예측 가능한 문항을 그저 풀이과정의 복잡도만을 조절해 가며 출제하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면 화학 I 과목에서 학생들은, 풀이시간을 몇 초라도 줄이기 위해 원래는 외울 필요가 없고 문제 지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는 특정 원자의 특정 물리량 등을 '요령'으로서 암기하게 됩니다. 그렇게 외운 사이비 지식은 시험이 끝나는 즉시 수능시험을 잘 보는 것 외의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과 자원의 낭비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시험을 대비하는 학생들이, 이 시험으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어갈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학생은 '정석대로 밀고 나가면 손해만 볼 뿐'이라는 잘못된 교훈을 얻어가기도 하겠지요.
프레시안 : 입시와 관련해 최근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현상은 '의대 광풍'과 'N수생' 입니다. 이 역시 반교육적 시험으로 진화한 수능이 야기한 결과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문호진 : 책에서 '각개격파'를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시험 부담을 줄이고 학교 수업 중심으로 입시를 운영하기 위해 수시 비율을 늘렸지만, 입시전형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게 되면서 각 전형에 전부 대응해야 하는 학생과 교사의 부담은 급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존 수능 대비 교과수업을 준비하기도 벅찬 교사에게, 인력충원 없이 탐구활동을 준비하고 세특/행특 등 생활기록부의 세부사항을 기록하는 부담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러니 돈만 지불하면 각각을 대응해줄 수 있는 사교육의 힘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능 대비 사교육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고, 내신 사교육, 생기부 컨설팅, 수능 사교육, 정시 원서 컨설팅 등 더욱 세분화되고 고도화된 사교육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장악력을 강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난이도 조절부터 EBS 연계까지 평가원에 여러 모순적인 요구들이 부과되며 수능이 반교육적인 시험이 된 상황에서, 신유형을 출제하든, '킬러문항을 핀셋 제거'하든, 범위와 과목 수를 갈아엎든 어차피 학교 생활을 충실하게 수행한 학생이 수능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가기는 힘든 형편입니다. 오히려 작년의 '킬러 문항 사태'때 보았던 것처럼, 정부의 무리한 개입은 그 자체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사교육 의존도를 더욱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TV 예능까지 등장하는 '일타 강사', 쇼 비즈니스가 된 사교육
프레시안 : 책에서 사교육이 과거처럼 수험생과 학원 강사라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입시 커뮤니티,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재와 강의, 다양한 층위의 조교와 강사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행위자와 구조를 갖춘 시스템으로 진화했다고 밝히셨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문호진 : 입시가 군대와 비슷한 속성이 있습니다. 군대 이야기는 큰 틀에서 보면 남성 다수가 공유하는 추억인 것처럼 보여도, 뜯어보면 복무한 시기나 군종, 부대에 따라 그 추억의 세부는 사람마다 많이 다릅니다. 때문에 누군가가 군대 이야기를 꺼내면, 공통점을 기반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입시 이야기 역시 비슷한 문제를 공유합니다. 각자가 입시를 치렀던 시절의 경험은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자녀가 입시를 치르게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입시를 치렀던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업데이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최근 입시를 둘러싸고 학종 도입, 수능의 퍼즐화, 사교육의 고도화 등 다양한 일이 벌어졌어도 입시를 둘러싼 대중의 담론은 자신이 입시를 치렀던 과거의 특정 시점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군 복무환경 개선이나 군인의 인권 관련 논의가 오랜 세월을 제자리걸음했던 것처럼, 입시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도 마찬가지 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프레시안 : 일부 '일타강사'는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 출연하는 셀럽이 됐습니다. 이런 현상 역시 사교육이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지, 사교육 강사들에게 갖는 일반 대중들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이런 예능물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문호진 : 이 역시 사교육 고도화를 드러내는 단면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쇼 비즈니스로서의 사교육 산업의 정교함이 엔터 산업의 그것에 필적할 정도가 됐기 때문에, 소위 '일타 강사'들이 예능에 진출해도 대중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입니다. 대중들이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빈틈없는 퍼포먼스와 비주얼, 뮤직비디오와 사운드의 짜임새에 열광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사교육 종사자들에게 투여하는 선망 내지는 존경의 감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소모되는 정력과 감정들 역시 비슷한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책에서 인터넷 강의의 보편화가 오히려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확대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기성 세대가 머리로만 생각했을 때와 정반대 결과를 가져온 것인데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문호진 : 당시 EBS는 강남에서 유명한 강사들로 강사진을 꾸리면서 교육 격차를 줄이고 있다고 홍보를 했는데, 실제로는 이게 사교육에 굴복하는 신호탄이었던 것입니다. 결국에는 강남 인강 강사들한테 EBS가 공짜로 광고판을 마련해 준 거나 마찬가지인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그전에는 잘 나갔다고 하더라도 강남의 사교육이었을 뿐인데 이제 인터넷 강의 붐을 타고 나서 전국적인 사교육으로 도약을 하게 된 것이죠. 강남이 타 지역 사교육까지 어떤 집어삼키면서 오히려 강남과 타 지역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그런 단초를 마련했습니다.
프레시안 : 고등학교를 간 아이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중 하나는 "공부는 학원 가서 해야지"라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두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공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정시를 준비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는 통계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한 데도 정작 교육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의 학교는 애초에 '공부하는 곳'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학업에 충실하면 수업과 시험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던 시절은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한편으로는 평가자인 교사에게 잘 보여가면서 자신을 어필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부모, 친구들의 자원을 끌어내서 생기부를 꾸며내야 그나마 대학의 눈에 들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에 대한 부담이 과거보다 줄어든 것도 아니니, 학교에서 못한 공부는 학원에 가서 수행해야 하는 역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의 공교육 불신과 자퇴 현상은, 학생 당사자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현장을 방치해온 결과일 뿐입니다.
대학이 고교·학생·학부모에게 부담 떠넘기는 구조 해체해야
프레시안 :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문호진 : 당연히 대학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대학이 멋대로 고교와 학생,학부모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마음대로 고교를 평가하며 줄세우는 구조부터 해체해야 합니다.
대학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왜 학생과 학부모들은 탐구활동을 준비하고, 교사는 백수십명 단위의 생기부를 밤잠을 줄여가며 기록해야 하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창의성' '공동체역량'과 같은 추상적인 목표를 내세워 대학들 스스로도 모르는 기준을 학생들에게 부과하는 일도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대학은 교육기관이지 선발기관이 아니며, 대학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고교 수준의 학습을 충실히 해 '대학수학능력'을 기르라는 요구 이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의 범위에서 대학이 학생에게 요구하고자 하는 역량이 있다면, 이는 대학 스스로가 입학한 학생을 교육하여 갖추도록 하면 됩니다. 우리는 대학이 지금과 같은 월권을 멈추도록 단호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중등교육은 대학에 끌려다니며 대학에서의 가르침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시도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예비 사회인으로서, 사회의 각종 민주적 의사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할 것입니다.
K-논술은 바칼로레아가 아니라 암기 문제, 학생들 공감 얻지 못해
프레시안 : 교육당국도 책임이 큽니다.
문호진 : 교육당국은 지금 상황을 편하게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막론하고 제도와 기제들이 파악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해진 탓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문제인지',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따져 묻기가 지극히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어놓은 시스템 안에서, 관료들은 시스템에 대한 어떤 문제제기든 '사교육이 문제다' '학생들을 줄세우는 구시대적 수능시험이 문제다'로 수렴시키면서 편리하게 회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능과 사교육에만 문제의 책임을 돌릴 수 없고, 실제로는 교육철학과 목표의 실종, 소통의 부재가 교육의 모든 영역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고 교육, 나아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교육 당국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논·서술형 문항 확대' 등 너무나 단선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문제들은 풀어보셨겠지만, K-교육의 학교 내신 시험에 출제된 K-논술 문제들을 풀어보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한 논·서술형 문제가 아니라 대본을 암기한 다음에 옮겨 쓰는 수준의 초 암기형 문제로 변질됐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객관식 문제에 비해 장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학생들의 공감을 얻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대안으로 작용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 : 책에서 결론적으로 우리 교육이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그리고 우리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말 잘 작동하고 있는지 두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정말 무엇을 요구하는 게 현재 수능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보시나요?
문호진 : 저희는 일부러 이 책에 구체적인 대안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책 전체에 걸쳐 입시 문제가 갖고 있는 복합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 것은, 아무리 대책을 잘 만들더라도 이 문제는 위에서 아래로 방침을 하달하고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는 '탑다운' 방식으로는 풀릴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렇게까지 복잡해진 문제, 그리고 사회가 내세우는 '사교육 대책'에 따라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는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 같은 건 애초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원론적이고 진부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시민 모두의 첨예한 문제의식, 민주적 소통과 의사결정 구조의 회복을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일이 장관도, 국회의원도, 관료도, 전문가도, 교사도, 어느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아닌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가, 끊임없이 해 나가야 할 과업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수능 해킹>을 단순히 입시를 둘러싸고 학생들이 겪는 현실을 드러내고 고발하기 위해서만 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복잡한 층위와 기전을 갖는 현대의 여러 사회문제의 양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문제상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자 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와 달리 '유신 철폐 독재 타도'라는 여덟 글자로 사회 운동이 명확하게 규정되는 사회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효능감의 부재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지 이야기해야만 할 것입니다.
미래세대인 학생들 스스로가 '기성 세대가 정말로 당사자인 우리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나의 참여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으며,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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