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좋지만 여름이라 더 좋은 '경기·인천 수제맥주'
“우리가 흔히 치킨과 함께 먹는 그런 맥주 말고도 다양한 맥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그걸 크래프트 맥주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D와 함께 맥주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유성관, ‘여름 맥주 영화’ 중에서)
■ 4캔에 1만원부터 수제맥주까지
모든 것에 취향이 뚜렷해지는 세상이다. 늘 마시던 맥주도 좋지만 안 먹어본, 좀 더 특별한 맥주를 경험하고 그 맛에 열광하는 사람들. 얼음처럼 차갑고 목이 따가울 정도로 탄산이 강한 맥주만이 아니라 개성 넘치는 맛에, 적절한 온도, 목 넘김도 부드러운 맥주의 세계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그 맛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우리는 맥덕(맥주 덕후)이라 부른다.
맥덕이라는 말이 나온 계기는 맥주 수입이 늘면서 생겨난 편의점의 마케팅 ‘4캔에 1만원’ 덕이 크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경험도 늘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늘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생성됐던 수제맥주 시장은 그렇게 다시 한번 조명받았다. 규모는 작지만 더 특별한 맥주를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는 양조장과 펍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국내 수제맥주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수제맥주(Craft Beer)는 개인 및 소규모 양조업자가 자체 개발한 제조법에 따라 만드는 맥주다. 특정 과일 향이나 홉의 쓴맛이 짙게 배어 나오는 등 각 양조장 맥주 제조자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풍미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국내 수제맥주의 역사는 소규모주류면허가 도입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우스맥주’로 불리던 소규모 맥주 양조장이 처음 등장했으나 생산된 맥주는 외부로 유통될 수 없어 양조장과 맥주 펍이 결합한 ‘브루펍(BrewPub)’ 형태로 자체 생산한 맥주를 자신들의 가게에서만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초창기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독일식 맥주 스타일이 주를 이뤘다. 당시 국내 기업에서 생산하는 맥주와 완전히 다른 맛인 데다 수입 맥주시장도 활발하지 않던 때였기에 브루펍에서 생산·판매되는 수제맥주는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소규모주류면허가 도입된 지 3년 만인 2005년 국내 수제맥주가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이와 관련해 (사)한국수제맥주협회 장명재 사무국장은 “대기업을 포함한 맥주제조면허가 118개에 이를 만큼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외부 유통이 금지된 제도적 환경과 전문 인력 부족 등이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10년 국내에 다양한 수입맥주가 소개되기 시작하며 국내 수제맥주 시장에도 새로운 활로가 열리기 시작한다. 벨기에의 수도원 맥주, 독일의 밀맥주, 미국의 페일 에일(Pale Ale)과 IPA(India Pale Ale) 등 대규모로 유통되는 크래프트 비어를 통해 국내 맥주시장의 다양성이 증가했고 이와 맞물려 2014년 주세법이 개정됨에 따라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장 사무국장은 “개성과 품질을 갖추면서도 전통적인 스타일과 최신 트렌드가 적절히 혼합된 각 양조장의 맥주 맛이 이미 세계 맥주를 경험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며 “미국의 월드비어컵, 독일의 유로피언 비어스타, 일본의 인터내셔널 비어컵 등 세계 맥주 대회에서 입상한 국내 브루어리들이 등장한 것도 성장의 계기”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월 30일부터 나흘간 서울 성수동 언더스탠드 에비뉴에서 ‘제1회 K-비어 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러브 크래프트, 드링크 로컬(Love Craft, Drink Local)’이라는 슬로건 아래 열린 축제에는 한국수제맥주협회 회원사 중 서울, 경기, 인천, 강원, 충청, 부산, 제주 등 각 지역의 22개 양조장이 참가해 총 130여종의 맥주를 소개했다.
특히 이번 축제 기간 이인기 수제맥주협회장은 국내 수제맥주의 새로운 활로로 ‘지역적 특색’을 강조했다. 지역마다 빚어낸 전통주의 맛과 향이 다르듯 전국 각지에 분포된 수제맥주 양조장들이 지역별 색깔을 갖는 것이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경쟁력이 된다는 취지다.
장 사무국장은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맥주뿐 아니라 그 지역 대표 음식과의 페어링을 고려해 맥주맛을 찾는 것도 차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브랜딩하면 또 다른 소구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최고급 이천쌀로 만든 쌀맥주, 더홋브루어리
2018년 이천에 자리 잡은 더홋브루어리(The WhotBrewery)는 이천 프리미엄 쌀을 활용한 쌀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더홋브루어리 김나래 대표는 “쌀맥주라고 하면 다소 생소하게 보는 시각도 있으나 칭다오, 버드와이저 맥주도 쌀이 함유돼 있어 쌀은 자주 쓰이는 맥주 재료”라고 소개한다. 더홋브루어리의 시그니처 제품은 이천 백미로 만든 라거 ‘스노이’. 더홋 직영펍에서는 컵 상단에 쌀가루를 페어링해 서빙하는데 달콤쌉싸름한 매력에 가장 많이 판매된다. 이뿐만 아니라 이천 흑미로 만든 포터 계열의 흑맥주 ‘블랙스노이’, 이천쌀과 양평의 동국(국화)을 이용해 만든 플라워에일 ‘겨울아이 동국맥주’, 이천현미를 발아해 만든 ‘브로이브라운’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개발·판매 중이다.
쌀 외에도 복숭아, 고구마 등 이천 특산물 활용에 적극적인 더홋브루어리는 산수유를 활용한 맥주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산수유 자체가 워낙 비싸고 소량 생산되지만 인근 농가와 협업해 안정적인 공급책을 구축할 예정이다.
■ 인천 개항로의 바이브를 맥주에 담은, 인천맥주
2017년 인천 개항장 부근에 양조장을 설립하며 시작된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는 3대째 인천에 살고 있는 인천 토박이다. 한때 인천의 중심지였던 신포동, 동인천 일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 대표는 개항로만이 갖고 있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 인천맥주를 브랜딩했다.
인천맥주는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수제맥주다. 시그니처 제품인 ‘개항로 맥주’는 지역 노포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며 보리의 풍미와 홉의 싱그러움이 강조돼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라거 계열 맥주다. 골든에일 계열의 ‘파도’는 레몬, 라임 껍질을 갈아 넣은 후 숙성시켜 싱그러운 맛이 도드라진다.
일반적인 IPA와는 달리 쓴맛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브작 IPA’는 2020년 코리아인터내셔널비어어워드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사브작 IPA의 2배 버전인 몽유별 DIPA’는 8%의 높은 도수와 홉에서 기인한 열대과일 향이 매력적인 맥주다.
■ 국내 최초 논알코올 수제맥주 브루어리, 부족한녀석들
㈜부족한녀석들은 2021년 논알코올 브랜드 ‘어프리데이(Afreeday)’를 론칭하고 2022년 남양주시에 양조장을 설립, 본격적인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황지혜 대표는 알코올 대체음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데 비해 소비자들의 맛과 다양성을 충족시킬 브랜드가 없다고 판단해 어프리데이를 개발했다. 논알코올 맥주를 만드는 방식은 다양하다. 맥주맛 향료를 섞어 탄산만 주입하거나 맥주를 만든 후 가열해 알코올을 증발시키는 방식 등 맥주맛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운 편. 어프리데이는 수제맥주에 쓰이는 독일산 맥아, 미국산 홉을 원재료로 사용하며 논알코올 맥주용 효모를 활용한 발효, 숙성 등 수제맥주와 동일한 양조 과정을 거친다.
부족한녀석들은 남양주에서 많이 나는 딸기, 오디를 활용한 계절 음료와 먹골배를 이용한 ‘마시면서 해장하는 음료’ 등 라인업을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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